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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태 칼럼] ‘그래도’ 감사

기독일보

입력 Jul 03, 2017 06:22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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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얼마 전 평일에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사당동에 있는 식당을 간 적이 있다. 차례를 기다렸다가 먹어야 할 정도로 중년 부인들이 북새통을 이루었다. 지난 토요일에는 교역자들과 함께 광명에 있는 스시 뷔페를 갔다. 그곳은 아예 예약도 받지 않는다. 손님들이 얼마나 많은지 현장에 와서 기다렸다가 식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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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어렵고, 살기 힘들다 해도, '그래도' 너무 감사한 시절에 살고 있다. 어린 시절 먹을 간식이 없어 호주머니에 쌀을 넣어서 먹고, 세 끼 식사가 어려워 한 끼는 고구마나 감자로 때우던 시절을 생각하면 너무 행복한 일 아닌가?

생각해 보면 '불평할 것'보다 '감사할 게' 훨씬 더 많다. 따져 보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훨씬 더 많다. 비교해 보면 '최악의 상황'보다 '더 나은 상황'이 더 많다.

그런데도 구태여 '없는 것 한두 가지' 때문에 불평하고 속상해하고 있으니, 주님 보시면 뭐라고 하실까?

인생에 어떤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지만, 나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웃을 일이 생길 수도 있지만, 울 일이 생길 수도 있다. 행복한 환경이 주어질 수도 있지만, 불행한 환경이 주어질 수도 있다. "그래도 감사"해야 한다. 그게 인생이니까.

2017년의 가뭄은 100년 만에 있는 가뭄이라고 한다. 4-6월까지 농심을 타들어가게 만든 오랜 가뭄이었다. 논밭은 말할 것도 없고, 저수지 바닥까지 말라서 쩍쩍 벌어질 정도였으니 재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이제 장마가 시작된다는 게다. 얼마나 고대하던 비인가. 그래서 기다려졌다. 어제 주일 새벽 4시쯤 새벽기도 나가려는 시간에, 장대비가 쏟아져서 우산을 쓰고 갔다.

그런데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오는 길인데 우산이 필요 없었다. 비가 한 방울도 오지 않았던 게다. 월요일 새벽에도 교회를 갈 때는 비가 쏟아졌는데, 집으로 돌아올 때는 한 방울도 오지 않는 게다. 이게 바로 인생이다. 오락가락하는 인생.

구태여 '내가 원하는 것'으로만 규정지을 필요는 없다. 그렇게 규정지어둔다 해서 그런 상황만 다가오는 건 결코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틀이 얼마나 무색할 때가 많은가? 살다보면 이런 때도 있고, 저런 때도 있다. 오락가락하는 게 인생이다. 모든 상활과 순간에 신축성 있고 융통성 있게 살아가면 된다. 오락도 즐기고, 가락도 즐길 수 있는 여유 있는 마음의 야유가 필요하다.

감사할 수 없을 정도로 '절대적인 불행'은 없다. 감사만 나올 만큼 '절대적인 행복'도 없다. 다만 감사하지 않는 '병든 마음과 태도'가 있을 뿐이다. 최악의 상황과 사건 앞에서도 '그래도' 감사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7)."

조건과 환경에 상관없이 감사가 넘치게 하는 인생이나 공동체는 행복하다. 감사가 넘치게 하는 비결이 무엇일까? 믿음이다. 해석이다. 깨달음이다. 바른 비교이다.

감사를 생각하면서,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이야기 하나. 암으로 몇 년 동안 고생하는 어느 집사님이 있다. 몇 년간 암투병을 하고 있으니 지칠 만 하다. 온 몸에 암이 전이되었고, 방사선과 항암치료를 하고 있다.

그러나 지친 기색을 찾아볼 수 없다. 절망하고 낙심할 듯하다. 그러나 결코 낙담하지 않는다. 아니 걱정하는 이들보다 훨씬 더 의젓하고 당당하다. 밥을 먹을 때마다 '친구야, 밥 먹자'라고 하며 식사를 한단다. 아예 멀리 떼어버리기 힘들다면 친구처럼 지내겠다는 게다. 그는 건강한 나를 부끄럽게 한다.

이야기 둘. 어느 집사님이 사업장에서 실수로 다쳤다. 갈비뼈를 다쳐서 고생하고 있다. 벌써 한 달 보름이 넘었다. 교회를 오고 싶고, 산책이라도 좀 하고 싶은데 병원에서는 혹시나 해서 만류하고 있다. 사업을 하는 분이니 얼마나 답답할까. 이것저것 신경을 쓰는 부분도 많을 게다. 더구나 아내가 남편 건강 챙기랴, 사업장을 돌아보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얼마나 감사한가? 뇌를 다치지 않았으니, 허리를 다친 게 아니니. 손이나 다리가 부러진 게 아니니. 생각하기 나름이다. 비교하기 나름이다. 더 악조건과 비교하면 감사하다. 최악의 상황을 피한 걸 생각하면 천만 다행이요 은혜임에 분명하다.

이야기 셋. 어느 분이 기도를 받기 위해 목양실에 오셨다. 들어보니 가정에 어려운 일들이 있었다.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기도해 주었다. 그런데 그 분이 하는 말이 내 마음을 감동시켰다. "속에서 병든 게 아니라 밖에서 병들었으니, 얼마나 감사해요." 질병으로 인해 힘든 상황 속에서도 감사의 조건을 찾을 수 있는 마음, 이게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아닐까?

이야기 넷. 어느 목회자 사모님이 암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실로 들어갔다. 목사님은 대기실에서 초조함과 불안한 마음으로 아내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주님이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을 느꼈다. "네가 힘드냐?" "오 주님, 저 정말 힘들어요." "너 고통스러우냐?" "주님, 저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너 불행하니?"

그런데 '불행합니다'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고통스럽고 두렵지만, 그렇다고 불행하다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주님, 불행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너는 행복하냐?" 이번에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주님, 저 행복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 행복했다. 자신이 구원받았고, 지금까지 주님을 위해 목회했고, 무엇보다 아내가 암 수술을 받을 때 기도하며 그 곁을 지킬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했다. 그래서 행복했다. "주님, 제가 정말 행복해요." 이렇게 고백하는 순간, 목사님의 마음 속에 두려움과 고통이 다 떠나갔다. 주님이 함께 함을 믿는다면 모든 게 감사하고 행복할 수밖에 없다.

우리 주변에는 자그마한 일이 있어도 힘들어하고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사람들을 본다. 따져보면 그 정도의 고민과 힘겨움은 우리 모두 함께 짊어지고 가는 것인데, 끙끙거리고 힘들어한다. 아니 어떤 때는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기야 남의 문제에는 큰일도 별 것 아니지만, 내 문제가 되면 큰 일로 느껴지는 건 사실이니까.

여튼 삶의 태도가 차이가 있는 건 분명하다. 어떤 사람은 큰 일 앞에서도 담대하고, 어떤 사람은 작은 일 앞에서도 호들갑이다. 이들이 갖고 있는 차이는 '그래도 감사'의 유무이다.

감사는 깨달음에서 온다. 어떤 상황과 일 앞에서도 깨닫는 지혜가 있다면, 오히려 감사할 수 있다. 감사는 발견이다. 감사의 눈이 열리면 감사한 게 한두 가지인가?

죄 사함의 은총을 받아 의인으로 천국을 소유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하나님의 아들 되어 하늘 아버지께 구할 수 있고, 그 분 앞으로 나아가 예배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부족한 나를 사용하시니 얼마나 감사한가?

베드로처럼 실수와 실패한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외면하거나 저버리지 않고 용납하시고 가까이 찾아오시고, 다시 회복시켜 사명을 맡겨주셔서 기회를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가? 알고 보면 감사투성이다. 그런데 왜 불평으로 인생을 그르치나?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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