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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 세계대전 경험 후... 기독교 현실주의 제시한 신학자

기독일보

입력 Jun 26, 2017 06:47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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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택 목사의 인문 고전 읽기 16] 사랑과 정의라는 딜레마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라인홀드 니버 | 이한우 역 | 문예출판사 | 294쪽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1892-1971)는 개신교 신학자로, 기독교 신앙을 현실적인 현대 정치와 외교에 접목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1892년 6월 21일 미국 미주리주 라이트 시에서 독일 선교사인 구스타브 니부어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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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동생인 리처드 니버(Richard Niebuhr)와 함께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기로 했다. 일리노이주 엘름허스트 대학에 입학해 1910년에 졸업했다(이 대학에는 그를 기리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후에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에덴신학교에서 공부하였고, 다시 예일대학교에서 1914년 신학학사 학위를 받고, 1915년 개신교 목사로 안수를 받았다.

독일 복음주의 선교 위원회는 그를 디트로이트로 보냈다. 도착 당시 신도의 수는 65명이었으나 1928년 그곳을 떠날 때에는 700명에 이르렀는데, 이런 증가는 당시 자동차 산업의 붐에 이끌린 새로운 인구의 유입에 힘입었다. 그는 산업화가 노동자들에게 끼친 비도덕화에 괴로워하여 헨리 포드를 비판했고, 설교를 통해 노조를 조직하도록 돕거나 공장의 조립 라인이 가져오는 비인간적인 노동조건과 잘못된 근로관행에 관한 글을 썼다.

그는 1923년 유럽을 방문하여 지식인들과 신학자들을 만났다. 프랑스 점령 하에 있던 독일의 상황에 실망했고, 제1차 세계대전 때 취했던 평화주의 입장이 더욱 확고해졌다. 1928년 디트로이트를 떠나 뉴욕에 있는 유니온신학교 교수가 됐고, 1960년까지 생의 나머지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다.

이곳에서 그는 많은 세대의 학생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나치의 유대인 박해에 대항해 고백교회를 세운 독일의 루터교회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도 그의 영향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의 자유주의적 사상의 뿌리인 평화주의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 자유주의적 동료로부터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전쟁을 옹호하게 됐다. 그는 결국 기독교 현실주의(Christian Realism)라고 불리는 운동을 일으켰다. 기독교 현실주의는 동시대 기독교인들의 이상주의보다 훨씬 강경한 정치적 태도를 보였다. 그의 정치, 사상적 활동은 두 번의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몸소 체험하는 힘든 시기에 이루어졌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Moral Man and Immoral Society, 1932)>는 라인홀드 니버가 쓴 최고의 책 가운데 하나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이 책이 지금도 주목을 받는 이유는, 니버가 기독교 윤리의 관점에서 정치 윤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전제는 개인윤리와 사회윤리 사이에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니버에 의하면, 개인의 도덕적 및 사회적 행동과 사회 집단의 행동 사이에는 명확한 구별이 있어야 한다. 니버부어의 고민은 예수에 의해 제시된 윤리적 표준과 현실 사회에서 경험되는 어둠의 권세 사이에서 겪어야 하는 갈등과 대립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집단이 크면 클수록 그 집단은 전체적 인간 집단에서 자신을 스스로 이기적으로 표현한다. 이런 집단은 더욱 강력하고 효율적이 되어 상상할 수 있는 어떠한 사회적 제재도 물리칠 수 있다. 집단이 크면 클수록 공동의 지성과 목적에 도달하기는 어려워진다. 불가피하게 순간적인 충동 및 직접적인 목적들과 연계를 맺게 된다. 개인은 도덕적일 수 있으나 사회 집단은 한 개인처럼 도덕적일 수 없다는 것이 니버의 생각이다.

라인홀드 니버
▲라인홀드 니버.

그에 의하면, 사회를 이루고 사는 인간은 그 집단 안에서 자기 이익을 추구하려 한다. 개인적으로는 도덕적인 사람들도, 집단이 되면 이기적으로 변모한다. 개인의 이해관계는 가장 이상적인 계획과 가장 보편적인 목적들까지도 파고든다. 집단이 크면 클수록 공동의 지성과 목적에 도달하기는 어려워진다.

집단 간의 윤리는 개인 간의 윤리와 전혀 다르다. 국제사회에서 국가 간의 윤리는 자국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자국의 이익을 다른 국가나 민족보다 더 중요하게 취급한다. 자기 민족과의 관계가 성립되는 다른 국가와의 이해관계가 자신의 민족적 태도 내지는 정치적 관점과 상충할 때, 그 민족의 국가는 자연히 이기적이 된다.

그래서 니부어는 국가공동체의 통일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폭력의 사용은 필연적이라고 말한다. 또한 강제적 수단을 장악하고 있는 집단은 자신의 이기적 목적을 위해 그 목적을 사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경제적 지배계급에 의한 국가의 이윤추구, 노동자 계급의 착취 및 원료와 시장의 획득에 전력을 기울이는 국가의 모습은 이를 입증해 준다.

니버에 의하면, 사회의 요구와 개인 내면의 요구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사회를 중심에 놓고 보면 가장 도덕적인 행위는 정의이고, 개인적인 처지에서 보면 가장 도덕적인 행위는 이타성이다. 도덕의 문제가 개인적 차원에서 집단들의 관계로 옮겨가면 갈수록, 이기적 충동은 사회적 충동을 누르고 득세하게 된다. 따라서 아무리 강한 내면적 억제도 이기적 충동을 완전히 억제할 수는 없다.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엄격해지는 잘못을 바로잡으려면,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이기주의에 비해 자기 자신의 이기주의를 더욱 가혹하게 억제하는 훈련이 꼭 필요하다. 니버는 이런 훈련을 통해 선의지의 감정과 상호 이해하는 태도가 생겨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공동체도 조화되거나 통일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니버는 더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원했다. 그는 사회주의자의 사상을 실험했고, 그것이 부족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또한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구속을 벗어난' 메커니즘에서 잔인하고 냉혹한 결점도 보았다. 그는 양 극단 사이에서 조정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사랑이 동기가 되는 개인과 정의가 동기가 되는 사회는 하나의 딜레마다. 니부어도 이 진퇴양난에 대해 포괄적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이 책에는 미래에 대해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분위기가 행간에 스며들어 있다. 그럼에도 이 책에는 놀라운 상상력과 통찰력이 있다. 그는 정치와 경제와 평등, 그리고 기독교 신앙에 관하여 본질적인 통찰을 하고 있다.

니버의 기독교 현실주의 사상은 복음서의 고상한 윤리를 현실적으로 추구할 방법을 찾는다. 하지만 몸에 밴 이해관계와 제도적 권력은 이 세상에 사랑과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제한한다.

윤리적으로 곤경에 처한 인간에 관한 그의 인식은 놀랄 만큼 정확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오늘의 현실을 위해서도 많은 것을 암시해주고 가르침을 준다.

-더 읽어볼 책

라인홀드 니버
▲왼쪽부터 <라인홀드 니버의 생애와 사상>, <라인홀드 니버의 사회윤리 구상과 인간이해>, <라인홀드 니버>.

고범서, <라인홀드 니버의 생애와 사상>, 대화문화아카데미
이장형, <라인홀드 니버의 사회윤리 구상과 인간이해>, 선학사.
이상원, <라인홀드 니버>, 살림.

송광택 목사
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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