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21:-17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이장렬 교수(미드웨스턴침례신학대학원 신약학)
이장렬 교수(미드웨스턴침례신학대학원 신약학)

부활하신 주님이 친히 차려 주신 디베랴 바닷가에서의 잊지 못할 아침 식사 후에 예수님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베드로에게 거듭 던지신다. 같은 질문을 세 번째로 하실 때, 베드로는 자신이 주님을 세 번 부인했던 사건을 처절하게 직면하게 된다. 그로 인해 심한 내적 진통을 느낀다. 그런 진통 가운데 베드로는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고백한다 (21:17). 앞선 주님의 질문에 “주께서 아시나이다”(21:15, 16)로 거듭 대답했다. 그러나 세 번째 질문에 답할 때는 특별히 예수님이 모든 것을 다 아신다는 점을 강조한다(21:17).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요21:17)

베드로에게는 지금 이 순간 감히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기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다. 얼마 전 주님을 세 번 부인하지 않았던가? (요18:15-27 [13:38 참조]). 그것도 한 치의 주저함 없이 말이다.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한 자가 인제 와서 어찌 감히 주를 사랑한다고 감히 고백할 수 있을까? 전에도 말로는 주를 위해 목숨을 내놓겠다고 당당히 선포하지 않았던가(요13:37)?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떠했던가? 주님에 대한 거듭된 부인뿐이었다. 처절한 실패였다.

우리도 실존적으로 비슷한 상황을 경험한다.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지겠다고 선언했고, 또 지금도 그렇게 외치지만 우리의 삶은 너무나 자주 타협으로 얼룩져 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고 또 지금도 주님을 사랑한다고 선포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의 삶이 세상을 향해 아주 굽어 있음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세상과 타협하지 말라고, 절대 세상을 좇지 말라고 남들에게 외치지만, 종종 우리 자신의 삶 가운데 세상이 너무나 깊이 들어와 뿌리 박혀 있음을 인식한다. 넘어진 목회자와 성도들을 향해 손가락질하지만, 우리 삶 가운데 그런 타협이 (적어도 그런 타협이 큰 씨앗들이) 존재함을 완전히 숨길 수는 없다. 때때로 용과 싸우다 용과 같이 되어버린 것 같은 자기 모습에 자괴감마저 들기도 한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감히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주님이 내 헌신과 충성의 궁극적 대상이라고 감히 고백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베드로의 사랑 고백을 비웃을지 모른다. 사실 이 날 아침 디베랴 바닷가의 사랑 고백이 가진 진정성을 의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베드로 청문회”가 열린다면, 베드로가 살아남기 위해서 말 바꾸기를 하고 있다는 판단이 주류의견이 될 것이다. 말로는 무엇을 이야기 못 하겠는가? 얼마 전에도 순교를 불사하겠다는 이야기를 해 놓았지만, 그 결과는 주님에 대한 배반 아니었는가(13:37)?

그러나 자신의 실패를 있는 그대로 직면하는 고통의 한복판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이 모든 것을 다 아신다는 점에 주목한다.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21:17)

그렇다.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베드로가 어떻게 주님을 배반하고 부인했는지 모두 다 아신다. 지금 처절한 실패를 직면하는 가운데 베드로가 느끼는 내적 진통도 그리고 실패의 무게도 모두 친히 헤아리신다. 베드로의 인생 실존의 한복판에 존재하는 많은 모순과 긴장을 다 이해하신다. 베드로가 그간 얼마나 많은 죄와 실수를 범했는지 다 아신다. 앞으로도 베드로의 연약함이 완전히 제거되지는 않을 것 또한 아신다. 그가 위선에 빠져 복음의 진리대로 행하지 않는 우를 범할 것 역시 아신다 (갈 2:11 이하 참조). 하지만 동시에 지금 이 순간 주님을 사랑한다 말하는 베드로의 고백 속에 담긴 진정성 역시 깊이 헤아리신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신다!

베드로의 사랑 고백을 보면서 좀 뻔뻔하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리고 주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 고백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이 스친다. 삶의 실존 한복판에서 우리 자신의 삶과 신앙고백이 스스로에게조차 모순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럴 때라도 우리 안에 주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이 존재한다면, 이 실패한 제자와 같이 감히 사랑을 고백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아신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헤아리신다. 내 처절한 실패도 그리고 내 진정한 사랑도…… 주님께 숨겨진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모순과 긴장으로 가득 차 있는 우리 실존의 한복판 가운데서 우리 모습 이대로 그리고 우리 사랑 그대로 주님께 올려 드려야 한다.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2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