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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란 무엇인가? 오늘 날 전도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가?

기독일보 la@christianitydaily.com

입력 Jun 14, 2017 03:41 P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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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의 정의:  21세기를 사는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갖고있는 가장 잘못된 개념중 하나가 전도일 것이다.  내가 이 자리에서 "전도란 무엇입니까?" 라고 물어본다면 열명중 아홉명은 "사람들을 교회로 데려오는 것입니다"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성경이 증거하는 전도의 개념이 아니다.  성경은 전도라는 단어를 '사람을 교회로 데려오는 것'이라 정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도의 성서적 뜻은 무엇인가?  '전도'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선포하다'는 뜻이다.  전도란 사람을 교회로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선포하는 것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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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포의 내용:  그렇다면 무엇을 선포하는게 전도인가?  "전도"라는 단어는 헬라어 성경 60구절 속에서 28개의 다른 형태로 61번 등장한다.  이러한 단어의 쓰임새를 분석하여 선포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총체적으로 살펴보면 놀라운 사실이 발견된다.  "선포"라는 단어는 예수님의 복음 사역과 연결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역은 12가지의 내용으로 구체화된다:  (1) 회개의 침례, (2) 예수님의 심판, (3) 예수님의 성육신, (4) 예수님의 이름, (5) 예수님의 그리스도되심, (6) 예수님의 성자되심, (7) 예수님의 복음, (8) 예수님의 나라, (9) 예수님의 기적, (10) 예수님의 은혜, (11) 예수님의 부활, (12) 예수님의 말씀.  이 열두가지를 선포하는 것이 전도인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께 범죄한 죄인이기에 영원한 지옥형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당신을 심판하기 원치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당신의 죄를 담당케 하셨고, 당신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으며, 당신을 대신하여 지옥의 고통을 맛보게 하셨다.  그리고 이 예수님을 삼일만에 부활시키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게하심으로써 당신의 부활을 예비하셨다.  당신은 이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구원받는다.  그러니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라!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과, 주되심과, 성자되심을 믿으라!  은혜의 예수님께서 당신을 하나님의 나라로 초대하실 것이다!

이것이 선포의 내용인 것이다.

현재의 문제: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만난 21세기의 많은 전도자들은 이렇게 전도하지 않는다.  그대신

교회나가세요!  교회나가면 자녀가 잘될 것입니다!  교회나가면 만사가 형통하고 병이 낫고 문제가 풀릴 것입니다!  교회가면 친구들도 많이 사귈 수 있고, 공짜 점심도 먹을 수 있으며, 외로움을 달랠 수 도 있습니다!  저도 교회에 나갔더니 건강해 졌고, 사업이 번성해졌으며, 자녀도 좋은 대학 갔습니다.  그러니 교회에 나가십시오!

말하며 전도한다.  마치 낚시꾼이 냄새가 구수한 깻묵을 바늘에 걸고 물속의 물고기를 낚듯이, 스파게티 소스를 파는 장사꾼이 소스를 팔기위해 통에 각종 장식을 달아놓고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하듯이, 그렇게 사람들을 꼬시려고만 한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해주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그저 사람들을 구수한 말들로 꼬셔 무작정 교회로 데려오려고만 한다.  이것은 성경이 증거하는 전도가 아니다.  전도란 사람을 교회로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탕발림말로 사람을 꼬셔 교회로 나오게 하는것이 전도가 아니다.  전도란 진리를 가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선포함으로써 죄인을 예수님의 몸인 교회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역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케리그마적 사역인 죄, 심판, 지옥, 회개, 구원, 천국등을 선포함으로써만 이루어지는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사역이다.

이쯤에서 나에게 이렇게 묻고 싶은 분들도 있을 것이다.

질문 1: 초면에 만나는 사람에게 죄, 죄인, 심판, 지옥이야기를 하라는 것입니까?  그것은 상식적으로 좋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좋은이야기만 하다가 성장한 후에 다른 이야기를 하는게 효과적입니다.

그렇지 않다.  이러한 발상은 세상의 마케팅 전략에 물들어버린 인본주의적 전도방식이다.  고린도후서 4:1~2는 이러한 발상을 이렇게 공격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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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 직분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혼잡"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과일 장수들이 보기 좋은 과일을 맨 위에 놓고 아래에다가는 작은 과일들을 숨겨넣는 행위를 말한다.  이렇게 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것인지라, 그렇게 전도하지 말라는 것이다.  전도할 적에 남들이 듣기 좋아하는 복이나, 상급이나, 천국이야기만 위에다 죽~ 늘어놓고, 죄나 지옥이나 심판에 대한 이야기는 살짝 가리며 전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대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다 들려 주라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혼잡"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포도주에 물을 탐으로 원래의 농도를 줄이는 행위를 말하기도 한다.  포도주에 물을 타서는 안된다.  포도주는 포도주 자체로 있어야지 물을 타면 본래의 맛을 잃고 싱겁고 맛없게 된다.  전도도 마찬가지이다.  불신자들의 비유를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심판과 지옥을 이야기 하지 않고 축복에 대한 말을 하는 것은 복음을 희석시키는 행위라는 것이다.  절대로 이렇게 전도해서는 안된다.  말씀이 있는 그대로 전해질 수 있도록 있는 그대로 전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진리를 잊어버렸다.  그들은 인본주의에 찌들어 있는지라 불신자들의 심기를 건들지 않기 위하여 될 수 있으면 지옥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심판에 대해서 말하지 않으며 회개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오직 복이나 천국, 축복이나 형통등의 말로만 사람들을 꼬시려 한다.  이것은 전도가 아니다!  죄를 이야기 하지 않고 어떻게 십자가의 예수님을 설명할 수 있나?  심판을 이야기 하지 않고 어떻게 공의의 예수님을 설명할 수 있나?  지옥을 이야기 하지 않고 어떻게 천국의 예수님을 설명할 수 있나?  죄와 심판과 지옥이 없으면 예수님도, 십자가도, 부활도 필요없다!  죄와 심판과 지옥이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필요한 것이다.  고로 이 모든 것을 하나도 가감하지 않고 다 전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인 것이다.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도 있다.

질문 2:  그러다가 준비도 안된 사람들이 그러한 말을 듣다가 거부반응을 일으키면 어떡합니까?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이는 미련한 일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겠다.  이 세상에 준비된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이 어디에 있던가?  여러분들은 준비된채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구원에 이르렀나?  아니지 않나?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분의 말씀이 순식간에 바람처럼 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구원에 이른것이 아닌가?  그리고 죄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때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당연지사가 아니던가?  죄인이 죄성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때 어찌 편안하게 들을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진리앞에서 귀를 틀어막고 도망가고자 하는 것이 지극히도 당연하다.

게다가 죄인을 찔러 반응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 어찌 하나님의 말씀이란 말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검보다도 예리하여 듣는 사람들의 심령속으로 들어가 죄성을 비수처럼 찌른다고 했는데, 말씀의 칼날이 내 심령속에 사정없이 와서 꽃히는데 어찌 꿈틀대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예레미아가 전도할때 왜 사람들이 그를 구덩이에 던저넣었나?  에스겔이 전도할때 왜 사람들이 그를 핍박했던가?  사도 바울이 전도할때 왜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고 했던가?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께서 전도하실때 왜 사람들이 그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나?  복음을 들은 불신자들이 거부반응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어두움 속에 살고 있는 벌레에게 빛을 비추어봐라.  꿈틀대며 그 빛으로부터 도망가기위해 발버둥을 친다.  이처럼 어둠가운데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케리그마적 사역을 전했더니, 그들로부터 거부반응이 일어났던 것이다.  명심하라.  불신자들로 하여금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전하는 복음은 희석된 복음이요, 가감된 복음이라는 것을!

또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도 있다.

질문 3:  만약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너무 직설적이라서 불신자들의 심기를 건드려 마음의 문을 닫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으면 어떡합니까?

이 역시도 인본주의적인 발상이다.  위의 질문은 우리가 걱정할 부분이 아니라는 말이다.  왜?  우리의 사명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명이다.  우리는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  우리가 내 자신도 살리지 못하는데 어떻게 남을 살린단 말인가?  사람을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우리의 사명은 그러한 하나님이 역사할 수 있도록 말씀을 정확하게 전하는 것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는 말씀을 혼잡하지 않게 충실히 전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사용하사 예정된 자를 부르신다.  고로 우리가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이상, 듣는 자들이 구원으로 예정받은 자라면 그들은 반드시 돌아오고, 예정받지 못했다면 복음을 거절할 것이다.  고후 2:15-17를 들어보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보라.  우리가 복음을 정확하게 전할 때 두 가지의 일이 일어난다.  구원을 받기로 예정된 사람들은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르고, 망하는 자들은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른다.  이것이 참된 전도의 목적이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는 전도란 예정된 자로 하여금 복음을 받아 들여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르게 하는 것이고, 예정받지 못한 자로 하여금 복음을 거절하여 죽음에서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작업이다.  사도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며 하나님은 자라게 하셨다"고 말했다.  우리의 사명은 말씀을 심고 물을 주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명은 그 사람을 자라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처럼 행동하려고 하기 때문에 복음을 희석시키는 것이다.  고후 4:3도 보라.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이 얼마나 명확한 계시인가?  우리가 복음을 열심히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신자들이 그 복음을 받지 않는다면 그들은 망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남을 구원시킬 수 있다고 착각하니까 복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시 한 번더 말하지만 성경은 우리더러 죄인을 구원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일은 딤후 4:2의 말씀처럼 오로지 하나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여기에 "전파하라"고 번역된 헬라어도 케루쏘이다.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선포하는 것이다.

이렇게 묻고 싶은 분들도 있을 것이다.

질문 4:  불신자들이 일단은 교회에 와야 말씀을 듣고 구원받을 것 아닙니까?  불신자들을 교회로 데려오는 것이 뭐 그리 문제가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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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듯해 보이는 말이다.  그러나 이도 옳지 않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도는 교회 안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 밖에서 하는 것이다.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여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며 머리되신 예수님을 찬양하는 공동체이지, 불신자를 초대하여 전도하는 곳이 아니다.  초대교회의 역사를 보면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하지 않는 자를 절대로 교회당 안으로 데려오지 않았다.  함께 예배드리지도 않았다.  교회란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산자를 위한 공동체이지 죽은자를 살리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교회당 안에서 예배드렸고, 교회당 밖에서는 전도했다.  그래서 밖에서 구원을 얻은 성도들을 교회당으로 데려와 함께 예배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전도의 방법이다.

 

그러나 21세기의 많은 교회는 이러한 하나님의 방법을 무시한다.  '일단은 교회로 불러놓고서 교제를 통하여 친목을 다진후 마음이 열려있는 상태에서 복음을 전하자'고 말한다.  그래서 "열린 예배"따위나 "알파코스"등을 통하여 교회와 세상이 별 차이가 없다는 식의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나서 복음을 전하려 한다.  교회에서 가요를 부르고, 세상의 프로그램을 도입하며, 세상과 교회는 별로 다를 것이 없으니 너무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말라는 식으로 어필을 한다.  그리고 교회로 불러모은 불신자들의 비유를 맞추며 굽실댄다.  이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방법이 아니다.  도대체 성경 어디에 하나님의 말씀 하나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기에 부족하기에 "열린 예배"나 "알파 코스"와 같은 것을 사용하라고 되어있는가?  성경 어디에 불신자들을 끌어모아 그들의 비유를 맞추며 기독교는 그렇게 폐쇠적인 곳이 아니라고 거짓말하라고 되어있는가?  사람의 마음은 우리가 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케리그마적 사역을 선포함으로써만 열린다.  그리고 그 일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가장 확실하게 계시하는 구절이 있다.  행 2:14이하를 보면 교회 밖에서 이루어지는 베드로의 선포가 나와있다.  베드로의 선포를 보면 인간은 죄인이라는 사실과 죄로부터 자유하게 위해서는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이 필요하다는 사실과 그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여 구원이 시작된다는 사실이 계시되어 있다.  예수님의 케리그마적 사역을 선포한 것이다!  그는 사교적인 말을 하지 않았다.  인간적인 말을 하지 않았다.  운동이나 어떠한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을 교회로 모으지 않았다.  그는 밖에 나가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했다.  그랬더니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가?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여기에 "마음"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심령의 '중심'이라는 뜻이고 "찔리다"고 번역된 헬라어는 '뚫리다,' '꿰찔리다'는 뜻이다.  베드로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중심에 쉬지않고 뚫리고, 꿰찔렸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순수하게 역사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자들의 심령에 변화가 생겼다!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죄를 짓던 사람들이 갑자기 마음이 찔리기 시작한 것이다.  좌우에 날선 양날검보다도 더 예리한 하나님의 말씀이 베드로의 설교를 통하여 죄인들의 중심에 사정없이 꽃히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는가?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리라 하니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그들의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순서가 보이는가?  말씀이 먼저왔고, 그 다음에 구원이며, 그 후에 성도의 교제다.  이것이 성경적인 순서이다.  교제가 먼저 오지 않는다.  구원이 먼저 오지도 않는다.  말씀이 먼저요, 구원은 그 다음이며, 교제는 가장 나중이다!  그러나 현재 대다수의 교회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한다.  일단 불신자들을 교회로 불러 교제하게 한 후, 그 후에 구원을 선포하고, 그 다음에 말씀을 전한다. 이것은 인간이 고안해낸 인본주의적 순서이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순서가 아니다.  이렇게 인본주의적인 순서를 따르니까 교회에는 죽은자들로만 꽉 차서 바른 예배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질문하고 싶은 분들도 있을 것이다.

질문 5:  에이~  너무 원론적으로만 하지 맙시다.  그렇게 원론적으로만 하면 교회가 성장하지 않습니다.

아니다.  교회는 원론적으로만 해야 한다.  원론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교회가 망가지는 것이다.  교회는 사업터가 아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위에만 세워지며,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운행되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완성된다.  아무리 교회가 양적으로만 부흥하면 뭐하나?  그 안에는 죽은 시체들이 득실대는데?  참된  전도가 아닌 다른 것으로 그들을 모은 결과이다.  명심하자.  교회에서는 성경이 열려야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설교되어져야 하며, 그 분의 가르침이 가르쳐져야 한다.  바로 그럴 때 교회는 성장하는 것이다.

[출처: 이상환 목사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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