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 벽두, 영어교육계에 '펀글리시'(Fun+English)라는 새로운 모형을 제시한 국민 영어 강사 문단열(53)의 등장은 파격이었다. 그의 에너지 넘치는 제스처, 익살스러운 표정, 자유로운 진행은 당시 영어 강사들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영어에 대한 "지식의 전달보다는 경험의 공유"를 강조하고 싶었다는 그의 강의는 영어가 재밌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한동안 방송 활동이 뜸했던 문단열 대표는 최근 EBS 라디오 방송을 통해 활동을 재개했고, 영상 제작회사의 CEO로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한 교회를 담임하는 전도사이기도 한 문 대표의 '일과 신앙'에 대해 들어보았다.

30년 영어교육 인생... '잉글리시 클리닉'으로 재기

영상 제작회사 '어썸플레이' 론칭 성공... 하나님이 허락하신 기회

-영어교육자로서 어떤 길을 걸어왔나.

"1987년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학원 강사를 시작했으니 이제 영어교육계에 몸담은 지 30년이 되었다. 2000년부터 케이블에서 방송을 시작했고, 2002년 EBS에서 잉글리시 카페를 진행하면서 유명해졌다. 당시 잉글리시 카페의 시청률이 3%였는데, 교육방송 분야에서 그 정도의 시청률은 가히 폭발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가장 실력 있는 영어 강사라거나 아니면 가장 강의를 잘하는 강사여서 유명세를 탄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 시대적으로 권위주의가 해체되고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이 한국에서 태동하던 시기였는데, 기존의 경직된 영어 강의가 아니라 조금 삐딱하고 자유로운 것을 좋아하는 내 강의 방식과 우연히 타이밍이 맞은 것이다. 지난 30년을 돌이켜보면, 내가 운이 좋았다기보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그렇게 영어 강사로서 2012년까지 왕성하게 활동했다.

그런데 그 이후 내 나이 48세부터 52세 때까지 이상할 정도로 방송에서 나를 부르지 않았다. 그 전에는 방송 스케줄이 많아서 못 갈 정도였는데, 그 무렵 방송에서 나를 찾는 연락이 갑자기 뚝 끊겼다. 특히, 요즘은 젊은 여자 강사들이 영어교육계에서 인기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이니 동년배들의 강의에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라는 말처럼, 영어 실력이 죽는 것이 아닌데 나이가 드니 세대에 밀려 사라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영어교육계에서 퇴출됐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최근 EBS 라디오 '잉글리시 클리닉'(월~토 저녁 7시~9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제 방송은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 재기시켜 주셨다. 잉글리시 클리닉에 조혜련 씨와 함께 진행을 하는데, 조혜련 씨는 내가 평생 원했던 샘플 학생이다. 내가 정신없이 방송 끌고 가면 조혜련 씨가 딴지도 걸어주고 도전도 주곤 한다. 조혜련 씨는 일본어, 중국어도 독학으로 공부한 사람이어서 열심히 있고, 요즘 성경을 매일 몇 시간씩 읽을 정도로 신앙이 좋고 뜨겁다. 그래서 라디오 진행이 아주 즐거운 요즘이다.

지난 1년은 내게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적적인 회복의 기간이었다. 그중 하나가 5년 만에 방송을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상 제작회사인 어썸플레이(Awesome Play)를 개업한 것이다. 상업 영상 시장에 뛰어들겠다고 했을 때 다들 말렸는데, 지금 일거리가 밀릴 정도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지금은 이게 본업이다."

지난달 21일 어메이징 그레이스 교회에서 설교를 전하고 있는 문단열 대표. ⓒ이지희 기자
지난달 21일 어메이징 그레이스 교회에서 설교를 전하고 있는 문단열 대표. ⓒ이지희 기자

-평생 영어교육 분야에 있었는데, 영상 제작회사는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나.

"영어 강사로 활약할 때 내 별명이 '문 PD'였다. 방송에 나가면 잘하지만, 사실 나는 카메라 뒤에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 지난 5년 동안 '메가스터디'나 '야나두' 같은 곳에 교육 영상컨텐츠를 만드는 일도 해왔다. 지난 5년 동안 영상공부하고 작년 9월에 어썸플레이를 시작했다. 이 시장에는 고가의 광고를 제작하는 대형 광고기획사와 저가 광고 제작 프리렌서가 대다수다. 우리 회사는 그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데 고품질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광고를 제작해 주니까 다들 놀란다. 광고주가 전문 스튜디오에서 하는 것 맞느냐고 되묻는다. 광고를 제작하려면 다양한 단계가 있는데, 우리 회사는 외주 주는 것 없이 직접 다한다. 아마존 제프 베조스 회장이 브랜드를 구축하려면 '어려운 일을 탁월하게 하고, 그것을 계속 반복하라'고 했다. 우리 회사는 그것을 실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썸플레이는 지난달에 디디비(DDB)라는 세계적인 광고회사와도 정식 제작사 계약을 맺었다. 지금까지 TV CF도 제작하고, 헬스기구 홍보영상, 연세대학교 홈커밍 행사 영상 등도 만들었다. 우리가 회사를 따로 홍보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전도사인데 술 마시며 영업을 할 수도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길을 이끌어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잘 시작할 수 있게 해 주셨다."

주 4일 근무 원칙 고수...고객에게 품질로 보답
직장 일이 곧 사역, 복음적인 삶을 통해 전도

-'어썸플레이'의 기업문화가 궁금하다.

"우리 회사의 사훈은 '띵까띵까', 달리 말하면 '안단테 칸타빌레'(andante cantabile)다. '안단테 칸타빌레'라는 것은 '느리게 노래하듯이'라는 뜻이다. 우리 회사는 주 4일만 근무한다. 내가 옛날에 미친 듯이 일했고 그러다가 5년 전 암에 걸렸다. 그런 죽을 고비를 경험하며 예수님의 복음을 정통으로 통과해 보고 나니까, 복음이라는 것이 느리게 노래하듯이 하는 것이지 욕심을 부려서 나를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많은 시간을 하는 것보다 효율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우리 회사가 '척척 돌아가지 않는 회사'였으면 좋겠다. 사장은 직원들을 위해주는 '척' 하고, 사원들은 회사에 충성하는 '척' 하는 그런 회사가 아니었으면 한다. '척' 하느라고 연기하는 데 에너지를 쓰면 실제 일에는 별로 집중하지 못한다. 각자의 일만 책임감 있게 잘하면 된다. 우리는 회사에서 호칭을 부르지 않고 대신 별명을 부른다. 직원들은 나를 댄디라고 부른다. '대니얼 대디'를 줄여서 부르는 것이다. 아르바이트생들이 현장에 와서 이런 수평적 문화를 보면 눈이 동그래진다.

주 4일 근무제는 우리 회사의 DNA로 정착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계속 추진하고 있다. 그렇게 하려면 고객에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 돈을 적게 받는 대신 기간을 길게 가지고 보라는 스케줄 동의를 계약서에 넣고 시작한다. 이렇게 하면 품질도 잘 나온다. 몇몇 유명 맛집은 준비한 재료가 다 떨어지면 문을 닫는다. 우리 가게는 조리하는 데 20분이 걸리니 빨리 달라고 하지 말라고 써놓은 음식점도 있다. 진짜로 맛이 좋고, 불친절한 게 아니라 문화로 인식하면 그 다음부터 고객들이 양해해 준다.

그래서 우리는 원칙을 꺾지 않는다. 직원들을 압박하지 않는다. 근무시간 태도를 보지 않는다. 주 4일 근무를 해도 우리 회사는 자기 성과가 다 드러나는 구조다. 일하는 척 할 수 없다.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미래의 사장으로 보고, 성장해서 독립하라고 내놓고 독려한다. 회사를 운영하는데 법을 지키고 세금도 잘 내면서 직원들을 쥐어짜지 않는다. 영업할 때 비굴한 모습도 보이지 않고 주일을 지켜가면서 신뢰가 쌓였을 때 복음을 전하면 나는 무조건 전도가 된다고 생각한다."

문단열 대표를 5월 21일 주일예배 후 어메이징 그레이스 교회 근처 합정역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지희 기자
문단열 대표를 5월 21일 주일예배 후 어메이징 그레이스 교회 근처 합정역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지희 기자

-일과 신앙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사업이 사역이다. 내가 촬영현장에 나가서 일일이 다 감독하는데, 안 하는 것이 있다. '소리 지르는 것'이다. 촬영은 언제나 시간과의 싸움이다. 스튜디오 대여비, 모델 섭외 비용 등 때문에 예산 안에서 다 찍으려면 소리를 안 지르기 어렵다. 그래서 촬영 PD들이 '그렇게밖에 못 하냐'고 소리 지르기 일쑤다. 나는 NG가 나도 성질을 부리지 말자고 기도한다. 그러면 부르르 떨면서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을 주신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미리 소통하고 이해해 주고 들어 주며 목회하는 것처럼 한다. 그래서 누구든지 우리 촬영현장에 오면 웃음꽃이 핀다. 아무리 긴박해도 웃으면서 하니까 결과물이 좋다. 한 번은 러닝머신 홍보영상을 촬영하는데 러시아 모델이 12시간 찍었다. 아무리 젊고 체력이 좋은 모델도 12시간 동안 웃는 얼굴로 촬영하려면 힘들다. 러시아 모델이 영어를 잘 못 하니까 내가 러시아어 몇 마디를 배워 가서 중간 중간에 해주었다. 그러면 연기를 더 잘한다. 지금 직장에서의 일도 사역이고 전도가 되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일할 때 남들과 차별된 모습만으로 전도까지 이어지긴 어렵지 않나.

"그래서 삶을 통한 전도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다. 내가 있는 곳에서 영향력을 가지려면 첫 번째 '경건의 습관'이 중요하다. 이것은 우선순위의 문제다. '주일날은 교회에 가야 하니 일할 수 없다', '큐티하는 시간은 전화 안 받는다', 이렇게 용감하게 말한다. 이런 신앙의 원칙을 지키는 모습이 일관되게 드러났을 때 사람들은 핍박하면서 존경한다. 반면, 그들이 말하는 세상의 원칙에 넘어가 주면 환영하면서 경멸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영향력이 없어진다. 습관으로서의 경건이 중요한 이유다.

둘째, 가치관의 문제로서 '정의'(정대한 행동)의 문제이다. 정의가 우선이고, 이익은 차선이다. 이익이 우선이고 정의가 차선이면 세상과 다를 바 없다. 셋째, 삶의 낙에 대한 문제로서 '일방적인 희생'이다.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잘해주면 투자이고,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잘해주는 것은 사역이고 봉사다. 일방적인 희생은 기쁠 때만 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이 삶의 낙이 되는 것이다. 넷째, 염치에 대한 문제로서 예수님에 대한 '증언'이다. 앞서 세 가지를 잘 지키고 나서, '내가 예수님 때문에 이렇게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사랑과 은혜, 평안과 기쁨은 나만 받아서는 안 된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셨다는 고백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을 증언해야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면 안 되는 것이다. 경건의 습관을 보여주고, 정의에 대한 원칙을 고수하고, 돌려받지도 못할 것을 일방적으로 주는 삶의 모습을 보고 그들이 '나하고 좀 다르다'고 생각할 때,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내가 목회하고 있는 어메이징 그레이스 교회도 원래 교회 다니던 사람은 20% 정도이고, 대부분 안티이거나 불신자였다. 그들이 변화되어서 지금 교회에 나오고 있다. 복음의 가치를 삶으로 보여주려고 노력한 결실이다. 교회 구성원 중 몇몇은 현재 나와 함께 어썸플레이에서 일하고 있기도 하다."

문 대표는 인터뷰를 마치며 "사실 내 삶이 말이나 글을 등을 통해 대중에게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그는 "간증집회를 해 달라는 요청이 많이 있는데 대부분 거절한다. 내가 교만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말로 하는 간증보다는 그 시간을 청년들의 삶에 투자하고 싶고, 삶으로 신앙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30년 동안 영어 관련 회사를 경영하다 3번이나 망하고 그 빚을 청산하느라 길고 험난한 터널을 지나왔다는 그에게 지난 1년은 기적적인 회복의 기간이었다. 그는 이것을 '하나님의 시나리오'라고 부른다. "만일 어떤 기적이 반복되면 뒤에 누군가의 시나리오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어요. 구조의 기적이 2~3번 반복되면 '아! 하나님이 나를 건지시려 하는구나'라고 얼른 깨달아야 합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내 인생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우리에게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꿰뚫어 보는 영안을 가지면 고난 가운데서도 찬양이 넘칠 수 있습니다."

◈문단열 대표는
1964년 서울에서 출생하고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했다. 1987년부터 영어 강사로 활동했고, 2002∼2008년 EBS '잉글리시 카페' 진행을 하며 '국민 영어 강사'로 유명세를 탔다. 현재 영상 제작회사 어썸플레이(Awesome Play) 대표, 성신여대 교양교육원 교수, 어메이징 그레이스교회 전도사이며, EBS 라디오에서 '잉글리시 클리닉'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