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찬 목사(람원교회)가 전날에 이어 30일 '남녀 사이는 하나님도 못 말린다' 그 두 번째로 크리스천들의 성(性)에 대해 이야기했다.

'네 눈을 빼어 내버리라'는 제목으로 손 목사는 남성들을 향해 "성에 대한 담론의 첫 출발점은 이성에 대한 욕구, 나아가 성욕에 대한 분명한 인정으로, 식욕이나 수면욕처럼 인간이 본래 갖고 있는 욕구이고, 이 역시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라며 "부끄러워할 부분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인데, 다만 비틀려진 것이 문제이다. 면피하려고만 했지,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특정 욕구에 대해 지나치게 폄하하게 되고 말았다"고 진단했다.

손 목사는 "사랑은 그 사람의 있는 그 모습 그대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수용하지만, 음욕은 상대를 은연중에 내 욕구를 위한 대상으로 여기며, 내 기준에 맞추어 상대를 바꿔놓으려 한다"며 "예수께서 말씀하신 '음욕'은 복음서에 지독히도 반복해서 등장하는 '사랑'이라는 말의 정반대의 개념으로, 성경적 사랑이란 오직 상대를 향한 궁극적인 책임과 절대적인 희생"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눈을 빼어버리라'는 말씀은, 그렇게 해서 해결된다면 정말 한 번 뽑아보라는 당대에 흔히 쓰이던 과장법의 활용이고, 오히려 역설적으로 이 문제가 신체 부위를 도려낸다고 해소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며 "그렇게 오른손을 자르고 오른눈을 뺀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여전히 내 마음에 음욕이 가득차 있다면, 아직 남아있는 왼손과 왼눈이 흡사 '초사이언급'으로 더 활발히 움직일 것"이라고 전했다.

또 "남성들이 시각적 음욕에 보다 취약하다면, 여성들은 정서적 음욕에 보다 취약하다. 여성들은 초현실적 '남주(남자 주인공)'가 등장하는 드라마나 영화에 열광한다"며 "송중기가 선글라스 끼고, 공유가 라이트 켜고 걸어나오면 정신 못 차린다. '백마 탄 왕자님'에 대한 열망. 누군가 그랬다. '이것들이 여자를 위한 야동일 수 있다'고. 결국 우리의 정상적인 욕구를 인정해야 하고, 다만 그것이 뒤틀렸음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목사는 "그저 우리의 이 약한 부분을 인정하고 고백하면서, 무엇보다 우리를 사랑하사 끝까지 사랑하시며, 그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게 누리자"며 "그 사랑으로 풍성해질 때 비틀린 욕구가 절제되고, 나아가 이성을 소유물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라보게 된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손 목사의 글 전문.

연애는 다큐다
▲남성들만의 구조적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 ⓒ사진 박민호

네 눈을 빼어 내버리라
#오늘은남자
#부제: 남녀사이는하나님도못말린다2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백화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중, 반대쪽 에스컬레이터로 내려가는 엄청난 미인을 보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길이 갔더군요. 그렇게 정신줄 놓고 쳐다보다가 문득 생명이 단축되는 듯한 섬뜩한 기운에 옆을 쳐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사각지대에서 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아내를 봐 버렸네요. 자기도 너무 이뻐서 쳐다봤는데, 혹시나 해서 저를 보니, 제가 거의 '관심법' 수준으로 쳐다보고 있었다고....

예수께서 이런 저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마 5:28-29)'. "주님! 숟가락으로 살살 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꼭 '빠루'를 갖고 와야 할까요?"

고등학교 때 일입니다. 한창 이성에 관심이 생기고, 성적으로 관심이 많아질 때이지요. 하필 그 때 회개에 꽂혔을 때라, 뭇내 여자들 보기가 겁났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제가 너무 악한 것 같아서, 이러다가 언젠가는 하나님께 벼락 맞아 죽을 것 같다는 쫄림 앞에 결심했습니다. '아예 사람들을 보지 말자!'

버스를 타고 있을 때는 눈을 감아버렸고, 피치 못하게 걸어다닐 때는 바닥만 보고 하염없이 걸었습니다. 정확히 3일 동안 그리 살았습니다. 바르게 살기 위해 이 정도는 몸부림쳐 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찌 되었을까요? 바닥만 보고 다니니까, 번개 모양의 보도블록 무늬 패턴이 눈에 뱅뱅 돌아 토나올 것 같더군요. 꼭 그리 살아야 할까요? 감고 살라고, 땅이나 보고 살라고 눈을 주신 것은 분명 아닌데요.

교회는 줄곧 침묵했습니다. 아니면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수도원 생활을 장려함으로 유혹으로부터 도피할 것을 주문하기도 하였지요. 때문에 동서고금을 망라하고,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합니다. 이런 침묵의 배경 아래, 한국의 유교 문화는 이 침묵을 더 공고히 만들어 놓았지요.

하지만 침묵은 늘 혼란을 야기합니다. 침묵의 결과를 보십시요. 뒤로 호박씨 깠던 이들의 뉴스가 빵빵 터지지 않습니까? 더 이상 쉬쉬 하다가는 쉬 나오겠습니다. 교회가 오물통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어찌해야 합니까? 그런데 이 와중에 눈을 빼라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 뭇 남성들은 '두둠칫' 합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이는 처음부터 예수님의 가르침을 무시합니다. 자기 꿀리는 대로 살아가지요. 걔중에는 이 말씀 앞에 강한 도전을 받고 몸을 떨며 고민하다, 여전히 변함없는 자기 모습을 보고 시간이 흐를수록 지치고, 때로는 떠나기도 합니다.

간혹 신앙적 결단을 하고 초절제하며 살아가는 소수의 무리들이 있습니다. 무서운 종자들이지요. 허나 동시에 남들을 예술적으로 정죄하곤 합니다. 그러다가 늦바람 나서 나중에 골로 가는 인생들 꽤 많이 보았습니다. 이처럼 외면은 일탈을 낳고, 일탈은 해결의 기회를 빼앗아갑니다.

우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눈길 가는 뭇 남성들이여. 너무 스스로를 자책하지 마십시요. 아무리 제 아내가 예뻐도, 저도 남자인 이상 지나가는 화려한 외모의 소유자에게는 자연스레 눈길이 가기 마련입니다. 다만, 안들키고 쳐다보는 것 뿐이지요. 아름다운 풍광에 자연스레 눈길 가듯, '미(美)'에 동경과 그 대상에 대한 시선강탈은 남녀를 불문하고 꽤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특히나 남성들이 시각적 자극에 취약하다는 것은 더이상 신박하지도 않은 사실이지요.

그리고 오히려 기뻐하십시오. 당신이 아직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어차피 나이 들어 힘 빠지면 눈도 안 갑니다. 다만 여자친구나 아내에게 절대 들키지 마십시오. 인정과 발각은 전혀 다른 테마입니다. 보더라도 목을 절대 10도 이상 돌리지 마십시요. 눈알만 돌리십시오. 조금만이라도 틈을 줬다간 눈 한쪽이 아니라, 뺨 한쪽이 떨어지는 수가 있습니다. 최소한 등짝에 장풍 맞습니다.

성에 대한 담론의 첫 출발점은 이처럼 이성에 대한 욕구, 나아가 성욕에 대한 분명한 인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식욕이나 수면욕처럼 인간이 본래 갖고 있는 욕구이고, 이 역시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즉 부끄러워할 부분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다만 비틀려진 것이 문제이지요. 면피하려고만 했지,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다보니 특정 욕구에 대해 지나치게 폄하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언급하신 '음욕'은 어떤 의미입니까? 우선 여성을 수단화하는 당대의 성차별과 억압 문화, 그리고 겉으로만 경건해 보이는 척하는 종교주의에 대한 일갈이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등장한 '음욕'이라는 말, 즉 '에피투미아'라는 헬라어 역시 단순히 이성의 매력에 끌려 바라봄이 아니라, 상대를 수단화, 도구화한 욕구를 의미합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한 번 쳐다보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여러 번 쳐다보는 것을 가리키지요.

음욕은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신체 부위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사랑은 눈을 쳐다보지만, 음욕은 눈 아래 신체 부위들을 쳐다봅니다. 사랑은 그 사람의 있는 그 모습 그대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수용하지만, 음욕은 상대를 은연중에 내 욕구를 위한 대상으로 여기며, 내 기준에 맞추어 상대를 바꿔 놓으려고 합니다.

즉, 예수께서 말씀하신 '음욕'은 복음서에 지독히도 반복해서 등장하는 '사랑'이라는 말의 정반대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자신을 위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적 사랑이란 오직 상대를 향한 궁극적인 책임과 절대적인 희생임을 기억하십시오.

손성찬 음욕

그리고 눈을 빼어버리라는 말씀은 그렇게 해서 해결된다면, 정말 한번 뽑아보라는 당대에 흔히 쓰이던 과장법의 활용입니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이 문제가 신체 부위를 도려낸다고 해소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그렇게 오른손을 자르고 오른눈을 뺀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여전히 내 마음에 음욕이 가득차 있다면, 아직 남아있는 왼손과 왼눈이 흡사 '초사이언급'으로 더 활발히 움직입니다.

그렇다면 여성들에게는 음욕이 존재하지 않을까요? 아니요. 남자들이 시각적 음욕에 보다 취약하다면, 여성들은 정서적 음욕에 보다 취약합니다. 여성들은 초현실적인 남주가 등장하는 드라마나 영화에 열광합니다. 송중기가 선글라스 끼고, 공유가 라이트 켜고 걸어나오면 정신 못 차립니다. '백마 탄 왕자님'에 대한 열망. 누군가 그러더군요. 이것들이 '여자를 위한 야동'일 수 있다고요.

결국 우리의 정상적인 욕구를 인정해야 하고, 다만 그것이 뒤틀렸음도 인정해야 합니다. 또한 마치 '지방이'가 우리 배에 늘 들러붙어 있는 것처럼, 만약 당신이 건강한 젊은 남성이라면 '음란마귀'가 늘 동행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남자가 모두 잠재적 성범죄자는 아니지만, 분명히 약한 부분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폴 트루니에는 <죄책감과 은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각된 죄책은 없애 버리시지만 억압된 죄책은 일깨우신다."

신학교 다닐 때 들었던 두 건의 충격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어느날 불 받아 타오르는 구령의 열정을 주체하지 못해, 그 때 가장 악하다고 여겨지는 사창가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겠다며 그곳으로 들어간 신학생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훗날 그가 그만 포주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성욕이 가장 왕성한 나이에, 성욕을 가장 자극시키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은 미련한 짓입니다. 자기 욕구와 실존을 냉철히 자각하지 못한 이들은 결국 사고를 치고 맙니다.

또 다른 하나는 어떤 분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어감이 이상하지만 그 때 워딩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자기가 교회에서 리더로 섬기면서 마음에 찔림이 있어 어떻게든 담배는 끊었는데, 차마 여자는 못 끊겠다는 말입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속으로 엄청 정죄했으나, 지나고 보니 정말 솔직한 워딩입니다. 오히려 이렇게 인정하는 데에 변화의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우리 이제 그만 좀 경건한 척 합시다. 그리고 작은 조언 드립니다. 자신을 자극할 만한 것들을 주변에서 삭제해 나가십시오. 식욕이 넘쳐나면 집에 간식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빵집 이런 데서 알바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쩌자는 것인가요? 싸우자는 겁니까?

그렇다고 수도원이나 기도원에 들어가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잠시 들어가 정돈하는 것은 좋으나, 결국 이 맴이 바뀌지 않으면, 잠깐 마취주사 놓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실 스스로 해결하기 지극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댓글사건 이후에도 국정원은 개혁되지 않았고, 검찰은 결국 우병우씨 못잡았습니다. 셀프구속과 셀프개혁이 가당키나 합니까?

그저 우리의 이 약한 부분을 인정하고 고백합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사랑하사 끝까지 사랑하시며, 그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게 누리십시오. 그 사랑으로 풍성해질 때 비틀린 욕구가 절제되며, 나아가 이성을 소유물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라보게됩니다.

물론 다이어트가 단번에 되지 않듯, 또 한 번 성공했다고 되는 것이 아니듯, 이 문제는 결코 단번에 해결되지 않습니다. 절대 자신하지 마십시오.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며 지난한 여정이 필요합니다. 답이 없지요. 다만, 삼위 하나님의 물샐틈 없는 '카바(?)'를 믿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