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21:15-17
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이장렬 교수(미드웨스턴침례신학대학원 신약학)
이장렬 교수(미드웨스턴침례신학대학원 신약학)

오병이어의 기적을 연상시키는 잊지 못할 아침 식사 후, 예수님은 베드로와의 대화를 시작하신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반복하심으로써 이 실패한 제자가 자신의 과거를 있는 그대로 직면케 하신다. 이를 통해 그를 재활, 복구의 길로 이끄신다. 세 번에 걸친 예수님과 베드로 간의 반복 질문과 대답은 각각 (1)“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 (2) 그에 대한 긍정적 답변, 그리고 (3) 목양 사역에의 위임이라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베드로를 회복시키심에 있어 예수님께서 거듭 물으시는 단 한 가지 질문은 그가 주님을 진정 사랑하는지 아닌지다(21:15, 16, 17). 주님의 양을 먹이고 돌보는 사역을 베드로에게 위임하심에 있어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님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랑이다. 물론 여기서 “사랑”이란 그저 감정적 반향이나 이끌림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주님의 반복 질문은 요한복음 18장에서 나와 있는 베드로의 반복 부인과 연결해 이해되어야만 한다.

요한복음 18장에 주님께서 재판받으시는 과정에서 이 갈릴리 어부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스승과의 관계를 전면 부인했다. 스승과 함께 처형을 받을 수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는 예수님을 절대 모른다고 잡아뗐다. 십자가를 면하고자 주님을 주저없이 배반했다.

베드로가 주님을 거듭 부인한 사건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예수님의 반복 질문을 서로 연결 지어볼 때,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21:15-17에서 고작 “네가 나에게 대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느냐?” 정도를 물어보신 게 아니다. 도리어 “이제는 네 모든 것 다하고 네 생명까지 다해 나를 진정 사랑하는가?”라는 가장 엄숙한 질문을 하신 것이다. 베드로가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쉐마(Shema)적 사랑을 소유하고 있는지를 물어보신 게다. 실패한 제자에게 지금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주님께 헌신하는지를 물어보신 것이다 (신6:4-5; 막12:28-34 및 마태/누가 병행구). 사실 십자가를 지기 전에도 예수님께서 이러한 “사랑”에 대해 가르치셨다. 주님에 대한 사랑은 단순히 감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순종을 통해 가시화됨을 말씀하지 않으셨던가?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요 14:21, 23, 24)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은 주님이 이 갈릴리 어부의 생사에 있어 궁극적 헌신의 대상인지 아닌지를 묻는 장엄한 질문이다. 이 질문이 실패한 제자 베드로를 회복시키고 그에게 목양사역을 위임하심에 있어 주께서 물으시는 유일한 질문이다.

“목양”이란 본디 주님의 사역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에 위탁하시는 양들을 자신의 소유로 언급하실 뿐 아니라 (“내 어린 양” [21:15]; “어린 양” [21:16, 17]), 자기 자신을 “선한 목자”로 묘사하셨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 10:11 [시23:1 참조])

베드로 자신도 그의 첫 번째 편지에서 그리스도를 “목자장”으로 묘사했다 (벧전 5:4). 실패한 제자 베드로를 회복시켜 예수님 자신의 양을 먹이고 돌보는 사역자로 세우시기에 앞서 주께서 물으시는 단 한 가지 질문은 이 갈릴리 어부가 자신의 생존보다 예수님을 더 존귀하게 여기는지 아닌지다. 만일 베드로가 자기 생명보다 주님을 더 사랑한다면, 그는 주님의 양무리를 분명 충성되이 먹이고 돌볼 것이며, 또 그 양무리를 위해 자기 목숨까지도 내려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21:18-19 [10:11 참조]).

밀레니엄이 두 번 지났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주님의 양을 먹이고 돌보기 원하는 자들이 답해야 할 질문은 바로 쉐마적 사랑에 관한 것이다. 인생의 궁극적 헌신 대상이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 말이다. 자신의 생존보다 예수님이 더 소중한지에 관한 질문 말이다. 자기 생명보다 주님이 더 우선인지에 대한 그 질문 말이다 (눅 14:2-33참조). 바로 그 엄숙하고 본질적인 질문을 이날 아침 디베랴 바닷가에서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직접 물으셨다. 거듭 그리고 또 거듭 물으셨다.

“네가 … 나를 … 사랑하느냐?” (21:15)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21:16)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2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