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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의 교회’로 묶을 수 있는 ‘공동서신의 새 관점’

기독일보

입력 May 14, 2017 07:00 P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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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북뉴스 서평] 규범이 아니라 행동

공동서신의 신학

채영삼 | 이레서원 | 800쪽 | 45,000원

각 시대마다 강조되고 부각되는 성경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시대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사회적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적절히 응답한다. 성경의 저자들도 기계적으로 글을 쓴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그리고 공동체의 가족으로 같은 시대 배경 아래 글을 썼다. 그래서 역사비평학적 방법론을 비롯한 여러 도구들을 활용하면, 그 성경이 쓰여졌던 시대의 문제와 저자가 제시하는 해결점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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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경제성장과 산업화라는 성장지향적 가치관이 주도했던 시대엔, 교회도 그 물결에 휩쓸려 크게 성장했고 사회의 주류가 되었다. 그러나 요즘 교회는 고등 종교로서의 역할도 못할 뿐 아니라 진리를 담지하여 구원의 길을 보여주는 영적 기관의 역할도 못하고 있다. 기독교와 교회가 보여주는 윤리적 타락과 도덕적 부패와 정교유착은 성도가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이다.

지난 대선에서 자칭 교계를 이끌어간다는 목사들이 낡은 정권과 손을 잡고 그 후보를 지지하는 공개선언을 한 것을 보노라면, 우리 기독교가 얼마나 일그러져 있고 교회는 탈선했으며 진리가 왜곡됐는지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우리가 어떻게 교회를 회복할 수 있고 바른 진리를 전할 수 있을까? 교회는 지금껏 '오직 믿음과 오직 은혜'를 잘못 적용해 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본서의 저자는 이런 우리의 역사적 현실 속에서 '공동서신의 신학'이라는 주제로 한국교회의 문제들을 신학적이고 신앙적이며 교회적으로 풀어간다. 그리고 그동안 각 권으로 연구되고 설교되던 공동서신을 그 정경화 과정과 사도행전이 보여주는 사도들 간의 관계와 신앙의 합의를 통해, 이것이 우발적으로 묶인 게 아니라 일관된 신학적 주제로 묶였음을 논증한다. 그리고 그 주제로 무너진 교회와 진리를 역전시키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 공동서신의 합창이 바울신학과 대칭되고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 바울신학과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하여 기독교의 진리를 더욱 풍성하게 하고 교회와 믿음을 더 온전하게 만들어간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바울서신은 교회 설립과 관련되기에 이신칭의 믿음이 강조됐고, 공동서신은 유대교를 배경으로 하지만 교회가 세워져 가는 시점이고 로마를 배경으로 한다는 차이점이 있기에 우리의 현실은 후자와 가깝다고 한다.

◈세상과 짝하지 않는 전심의 교회: 야고보서

필자는 본 서평에서 각 권이 어떤 위기를 겪고 있고 그에 대한 해결책이 무엇인지 적어봄으로써 본서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소개하겠다. 먼저 야고보서는 교회와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나뉜 것이 근본 문제이다. 교회 안에 가난한 자들도 부자들의 가치관과 세상의 정신을 따라 살며 하나님의 부르심과 구원을 놓치고 있다. 성도로서의 거룩함과 지혜는 없고 세상의 더러움과 간사함으로 교회를 어지럽힌다.

이런 위기 속에 야고보는 '말씀의 신학'을 강조하며 너희 속에 심겨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아 순종함으로 구원을 이루고 교회를 세워가라고 권면한다. 그래서 야고보서는 서로 연결되지 않는 다양한 교훈을 모아 놓은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모든 나뉘어진 것을 회복하는 치유 서신이다. 또한 말의 파괴력은 인간과 사회를 붕괴시키지만 말씀은 인간과 사회를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나그네와 행인으로서 제사장적 사명을 다하는 교회: 베드로전서

베드로전서는 로마라는 사회 속에서 교회는 무엇이고 교회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다룬다. 황제의 논리 아래서도 교회는 십자가의 도리를 따라가야 한다. 교회는 삼위 하나님으로부터 탄생했고 그 운명 또한 삼위 하나님에 근거한다. 그리고 교회의 사명은 기독론적인데,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신 그 길을 선한 양심을 가지고 걸어가는 것이다. 세상의 핍박과 조롱과 고난이 있어도 더럽지 않고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광의 나라를 향하여 주님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의 여정처럼 걸어야한다.

그리고 베드로는 세례를 긴 여정으로 제시하는데, 노아의 방주가 물 위를 지나 마른 땅으로 나온 것처럼 세례도 그와 같이 죄로 얼룩진 세상을 지나 더럽지 않은 영원한 나라로 가는 것이다. 여기서도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까지의 여정을 비교하는데, 이 길이 교회의 길이고 성도는 고난 속에서도 선한 양심을 가지고 주님의 보호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참된 은혜는 성도로 하여금 영광 가운데 기쁨으로 이 길을 걷게 도와준다.

◈신적 성품에 참여하여 성장하는 교회: 베드로후서

베드로전서가 세상 한가운데를 선한 양심으로 십자가의 길을 가는 제사장 공동체인 세상 속의 교회로 그린다면, 베드로후서는 그런 세상이 교회로 밀려들어와 교회의 본질과 영적 생명을 위협하는 교회 속의 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거짓 교사의 가르침과 부패한 삶에 대해 강력히 경고한다. 그들은 말씀을 사사로이 해석하여 바울의 율법을 폐기하고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방종으로 변질시킨다.

그래서 베드로는 교회와 성도에게 구원의 확실성을 기초로 하나님을 앎으로 신적 성품에 참여하여 성장하고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한다. 단순히 거짓 교사의 가르침과 방법과 문제를 드러내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알아감으로 존재적이고 영적이며 인격적인 변화를 이루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썩어지고 더러워지고 쇠하여지는 것을 멀리하여 거룩과 의와 영원에 대한 표징이 되어야한다.

◈삼위 하나님과의 사귐으로 세상을 이기는 교회: 요한서신

세상의 특징은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마귀의 특징인 거짓과 불의와 증오와 살인이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이 세상 가운데로 보내셨다. 그리고 그 아들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거하는 것이고 이 하나님과의 사귐은 세상을 이기고 사망의 두려움도 이기는 담대함을 준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사랑은 그 아들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 교회 속에서 형제 사랑을 통해 온전해진다.

흥미로운 것은 요한일서는 신론적이고 기독론적인 선포에 집중한다면 요한이서와 삼서는 교회론적 차원을 강조한다. 여기에는 기독교와 진리의 특징이 담겨 있는데,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그 아들을 받는 공동체와 깊이 관련이 있다. 즉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교리적인 것을 넘어 교회적인 것이고, 그 유일한 사랑은 이 공동체를 통해 적용되고 보전된다. 그러므로 사랑과 진리는 추상적이지 않고 교회적으로 존재하고 이것이 형제 사랑으로 나타날 때 온전한 사랑이라 부를 수 있다.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는 교회: 유다서

유다서에 나오는 거짓 교사들은 성경계시와 사도들의 가르침을 떠났을 뿐 아니라 베드로후서보다 더 강력한 이단성을 지닌다. 그들은 스스로 천상의 계시의 중매자로 여기며 그리스도의 주권을 부인하며 스스로 이단의 자리에 앉는다. 즉 이들은 계시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독자적 계시의 통로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유다는 말하길 이들은 처음부터 육에 속한 자고 성령이 없는 자라고 판단한다.

그래서 유다는 교회에게 이들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에 정해주신 자리를 이탈하여 타락한 것처럼 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 안에서 자리를 지키라고 권면한다. 또한 유다서에 등장하는 가인과 발람과 고라와 타락한 천사들은 모두 자기 지위와 자리를 떠나 미끄러져 심판을 받았으니, 교회와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믿음 위에서 자신을 건축하며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의의 열매를 맺으라고 한다.

◈정경성의 회복

필자의 책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을 두 가지로 설명하겠다. 하나는 정경성의 회복이다. 그동안 학계와 교회에서는 공동서신이 배치되어 있는 것에 대해 큰 의미를 찾지 못했는데, 저자는 공동서신이 '세상 속의 교회'라는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이것을 성경의 정경성이 지지한다고 설명한다.

즉 인내라는 주제의 야고보서부터 시작해 유다서가 거짓과 싸우고 믿음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고 마무리하는 수미상관의 구조라는 것이다. 야고보서의 여러가지 시험으로 시작하여, 서신서마다 그 시험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위치적 특징을 갖는다. 책의 저자도 주의 형제 야고보로 시작돼 주의 형제 유다로 마무리되면서, 바울서신의 권위만큼이나 공동서신의 권위도 중요하다는 것이 제시된다.

또 각 서신서는 인간의 고난과 기독론과 종말론에 있어서도 동일한 주제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각 서신은 구별되지만 일관되고 점진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어, 세상과 죄라는 주제의 거짓됨과 파괴됨이 더 강력하게 나타나고 믿음과 행위의 관계도 더 구체적이고 공동체적으로 확장된다. 아울러 죄는 더 세력을 넓혀가지만, 그것을 능히 이기고 보호하는 삼위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은 더 위대하게 드러난다.

이렇듯 지금까지 공동서신은 서로 관련 없는 서신들의 집합이라는 인식이 강해 바울의 시각으로 접근을 많이 했는데, 저자의 '공동서신의 신학'이라는 접근은 독창적이고 균형적이며 발전적이다. 또한 성경 속에 있지만 의미 없는 묶음 정도로 평가 절하되었던 공동서신의 정경성을 회복하는 고무적인 것이다.

◈말씀-구원론

그리고 공동서신에서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은 말씀-구원론이다. 야고보서는 마음에 심기어진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의 마음을 갈라놓지 않고 구원에 이르도록 한다. 또 야고보서와 베드로전서는 이사야 40장의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오직 주의 말씀만이 영원히 선다'는 말씀을 인용하며, 전자는 시험 가운데서도 말씀이 백성을 승리하게 하고 후자는 썩어질 것으로 심고 열매 맺는 세상에서 썩지 않는 씨앗이 성도를 구원한다.

베드로후서에서도 거짓 교사들은 말씀을 사사로이 해석하고 억지로 풀어 교리적 혼란과 윤리적 타락으로 망하게 되지만 주의 성도들은 주의 교훈을 받아 신의 성품에 참여하고 말씀을 기다림으로 인격의 변화와 함께 구원을 이루어간다. 또한 요한서신에서는 말씀으로 소개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악한 자와 그의 지배 아래 놓여 있는 세상과 대조된다. 후자는 거짓과 증오와 살인이고 전자는 진실과 사랑과 살림인데, 요한은 말씀이 거한다는 개념으로 구원론을 펼치기도 한다.

유다서는 꿈꾸는 자들이 교회를 더럽히고 성도를 유혹하니 하나님의 사랑과 지키심과 부르심이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구원에 이르게 한다. 특히 공동서신은 흩어진 나그네요 외인이며 이방인이며 로마로 대변되는 시민종교와 황제숭배와 세속의 가치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구원하는데, 사람의 신분과 성과 직분과 상관없이 오직 말씀을 생명처럼 여기고 순종하는 자들을 영생에 이르게 한다.

개인적으로 은혜가 되었던 건, 베드로전서는 주인보다 재산과 노동력으로 여겨졌던 노예에게 더 많은 권면을 하고 또한 남편보다 열등하고 종속적으로 여겨졌던 아내에게 더 많은 권면이 주어지는데, 이는 단순히 노예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여성을 인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이것은 바로 당시의 가치관을 뒤엎는 혁명적인 말씀인데,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내가 속한 곳에 도덕적 영적 변화를 이루어 구원을 회복해가는 주체가 그러한 사람들, 썩지 않는 말씀의 씨앗을 받아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자라도 그에게 심겨진 말씀을 통해 영혼의 구원을 허락하신다. 또한 그 사회에서 가장 약한 자라도 순결한 꽃을 피우는 말씀의 씨앗을 가진 자들을 통해 회복을 이루어 가신다. 그 영원한 말씀을 가진 자가 믿음 위에 거룩한 인생을 지을 수 있고 제사장적 삶을 살 수 있으며 고난의 길도 영광을 보며 기쁨으로 걸어갈 수 있다. 그 생명의 말씀을 품은 자가 어둠속에서도 여호와의 빛과 구원을 볼 수 있다.

◈결론

필자는 공동서신이 온전함이라는 특징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바울서신과 오직 믿음으로 치우쳐 있는 성경과 믿음을 교회의 기둥과 같이 여겨지는 사도들의 서신들을 통해 균형과 조화의 성경과 성경적 믿음의 온전함을 이루어 성경과 신학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또한 이 땅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교회가 여러 가지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이 서신을 통해 각 상황에 맞는 믿음과 말씀으로 이겨나가 교회의 회복과 온전함을 이룰 수 있다.

그리고 필자는 공동서신이 저자의 주장처럼 오늘날 우리 시대의 교회에게 교회로서의 정체성과 사명을 회복하는 길을 보여준다는 것에 동의한다. 바울서신이 거대한 유대교와 다른 복음에 저항하며 기록된 것에 비해, 로마와 황제라는 폭력적인 우상숭배와 정사와 권세 아래서 적혀진 공동서신이 지금 한국교회에게 더 적시성을 갖는다. 세상을 닮아가고 세상처럼 변하는 교회에게 공동서신은 적절한 말씀과 대안을 제시한다.

그래서 요즘 맹렬한 비난을 받는 한국교회와 기독교는 이 공동서신에서 말하는 적절한 분석과 지침을 들어야 한다. 바울도 인정하고 교회의 기초였던 사도들의 근본적인 말씀을 새겨야 한다. 여러가지 윤리적 문제와 행함의 결핍과 왜곡된 구원과 부족한 복음으로 세상의 수치와 걱정거리가 된 교회는 '바울신학의 새 관점'보다 '공동서신의 새 관점'이 더 필요해 보인다. 공동서신의 합창도 듣고, 바울과 구약과도 마주치는 오케스트라도 들어야 한다.

끝으로 본서는 신학논문이라 여러 학자들의 주장과 비교와 검증이 들어있어 딱딱한 면이 있지만, 그것이 무색할 만큼 굉장히 은혜로운 책이다. 왜냐하면 저자는 본문과 공동서신 내에서 기록된 말씀을 논리적으로 연결하여, 그것으로 풍성하게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인위적이고 문학적인 묘사보다 기록된 말씀 자체로 신학을 이어가니 본문과 공동서신이 더 빛과 감동이 되었다. 그래서 필자는 말씀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이 귀한 합창을 직접 들어보길 주저 없이 권하는 바이다.

방영민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열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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