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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시대의 현상: 목사와 광대 / 양과 염소

기독일보

입력 May 13, 2017 02:14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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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하은교회 정윤영 목사 칼럼

애틀랜타 하은교회 정윤영 담임목사
(Photo : 기독일보) 애틀랜타 하은교회 정윤영 담임목사

우리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전 세계적으로 혼돈의 시대에 살고 있다. 사회적,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아주 혼탁한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은 조금만 깨어서 기도하는 목사 또는 성도라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사회가 무질서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것은 결과적으로 교회가 영적전쟁에서 패배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그 패배의 원인들 중에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목사들에게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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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가 중요한 것은 목사의 생각과 영적상태가 교회와 성도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고, 그것이 악한 영향을 미칠 때 교회는 더 이상 하나님의 교회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동성결혼을 먼저 합법화 시킨 것은 세상이 아니고 바로 교회였다는 사실이 아주 충격적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교회가 없어서도 아니고, 목사가 없어서도 아니다. 오히려 목사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펄전 목사님이 오래전에 정학하게 이런 예언의 말씀을 하셨다: “이제 때가 이르면 교회에서는 강단에서 광대가 염소들의 귀를 즐겁게 할 때가 올 것이다.” 이 말은 마지막 시대가 되면 사람들의 귀만 즐겁게 하는 광대와 같은 목사와 진리의 말씀보다는 자신의 귀를 즐겁게 하는 말만 듣기를 좋아하는 염소들이 교회당을 메울것이라는 예언적이 말씀이다.

성경에도 예언되어 있지 않은가? 딤후 4장 3-4절에서: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마지막 시대가 되면 바른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을 받지 않고 자신의 귀를 즐겁게 하는 허탄한 이야기를 좇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의 귀를 만족시키는 광대들이 세상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목사인가, 아니면 광대인가? 물론 나 역시도 목사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참 목사라면 다음과 같은 점들을 갖추어 된다고 생각한다.

첫째, 목사는 성경을 읽고 성경을 알아야하고 성경적이어야 한다. 요즘 목회자들은 성경을 읽지 않고 세상적인 책을 좋아하고, 참고서적은 읽는데 성경을 읽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또 목사들이 TV나 미디어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목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세상적이고, 생각하는 것도 세상적이고 목회하는 방식도 세상적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목사는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또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생각하는 것도 성경적이고 목회도 성경적으로 할 수 있다고 본다.

둘째, 목사는 시대적 상황을 깨닫고 깨우쳐 줘야 할 의무가 있다. 목사는 정치적이면 안된다고 정치적인 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정치적인 것은 분명히 좋지 않다. 예를 들면 목사가 정치에 참여하거나 정치를 하면 안될 것이다. 그러나 정치가 바르지 못하면 목사는 바르지 못한 정치를 바르게 잡을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시대적인 상황을 깨닫고 성도들에게 말씀을 통해서 시대적으로 바르게 깨달을 수 있도록 가르치고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모세가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듯이 목사라면 정치가들이나 권력자들에 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냥 성경말씀만 전하고 가르치는 것으로 목사의 직분을 다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잘못이다. 신학교 교수는 그렇게 해도 괜찮다. 그러나 목사는 신학적으로 가르치는 직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적인 사명으로 시대적인 지팡이의 역할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정부가 악을 행하는데, 악에 대해서 침묵하는 것은 자신의 목사로서의 직무를 유기하는 것이다. 시대를 바르게 깨닫고 분별하기 위해서는 목사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어야 하고 성경 66권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주의 신학을 공부한 믿음이 없는 목사들은 시대를 바로 볼수도 없고 따라서 성도들을 바르게 인도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목사가 성경을 가르치는 것 외에 시대적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참 목사라면 다음과 같은 면에서 절대 타협해서는 안된다

하나,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용납하거나 그들과 타협해서는 안된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이념 자체가 기독교와 상반되는 것이다. 잘못된 민중신학이나 해방신학은 마치 예수님이 혁명가라는 식으로 이단적인 사상을 가르치기 때문에 심지어는 목사들이 사회주의에 빠지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자는 참 목자라고 볼 수 없다. 예수님은 혁명가나 사회 개혁주의자가 아니고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구세주' 하나님이시다.

특히 공산주의는 일당 독재를 위해서 결코 기독교와 같은 종교를 용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크리스천들을 강제수용소에 보내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따라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적인 이념을 가진자는 바른 목사라고 볼 수 없다. 이런 이념을 용납하는 것은 이단을 용납하는 것만큼 나쁜 것이다. 오직 민주주의 체제안에서만 기독교의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

둘, 동성결혼과 같은 성경에서 죄로 여기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된다. 성경에서 죄라고 하는 것을 허용하거나 죄를 죄가 아닌 것으로 용납할 때, 이미 그 교회나 목사는 하나님을 떠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이 죄로 정한 것을 어느 누가 뒤집을 수 있는가? 우리가 동성애자들도 차별없이 사랑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죄를 사랑해서는 안된다. 우리 모두도 다 죄인이지만, 그 죄를 회개할 때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되듯이, 우리 모두는 동성애의 죄는 미워하되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기에 그들을 사랑하고 회개에 이르도록 기도해야 한다.

셋, 차별금지법과 같은 반 기독교적인 법을 용납해서는 안된다. 차별 금지법이 통과되면 성으로 차별할 수 없다는 이유로 동성결혼을 반대하거나 거기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면 교회나 목사들은 불이익을 당하거나 벌금을 내야한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와 교회가 역으로 차별을 당해서 핍박을 받게 된다. 차별 금지법은 성경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단의 악한 수법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이런 것을 알면서도 목사나 교회가 묵인하거나 용납한다면 바른 목회자나 교회라고 말할 수 없다.

넷, WCC와 같은 종교혼합주의나 종교통합에 참여해서는 안된다. 사단은 화합과 평화라는 그럴듯한 단어를 사용해서 모든 종교를 하나로 만들어 자신이 하나님 대신 영광을 받으려고 한다. 진정한 평화는 종교가 하나가 되는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진정한 평화는 오직 주님 안에서 살아갈 때 존재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 왜냐면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오직 한분 뿐이신 유일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코 다른 신에게 절하거나 다른 신을 허용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보시지 않으시고 반드시 심판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종교와 하나가 되려고 하는 노력이나 다른 종교와 함께 예배를 드리는 행위는 배교적인 행위이고 아주 큰 죄악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다섯, 마지막으로 인본주의와 세속주의를 멀리해야 한다. 특히 일부 큰 교회 목사들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지 못하고 적당히 타협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행위가 아니다.이것은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인본주의적인 목회다. 목회자는 사람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또한 세상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세상 것들을 교회로 끌어 듷이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교회가 세속화 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예를 들면 구도자의 예배와 같은 것은 결국 세속적인 문화를 끌어 들여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변질된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원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기보다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찬양과 예배를 드리려고 하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다. 참 목사라면 인본주의가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가 되어야 하고, 세속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말씀 중심의 목회를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마지막을 향해가고 있는 혼돈의 시대고 어두움의 시대이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사단에게 미혹되고 속아 넘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바울사도는 고전 11장 14-15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사단이 악한 마귀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광명의 천사로 나타나고 사단의 일군들이 악한 마귀의 종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주의 종 처럼 나타난다는 것을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깨어있어야 하고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 모두는 부족한 죄인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연약해서 언제든지 미혹당하고 실족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 모두가 마지막 시대에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악한 영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광대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목사들이 목회하는 교회, 자신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듣는 염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훈을 즐겨 듣기를 좋아하는 진실된 양들로 이루어진 교회가 될 때에 이 나라에 참 부흥과 회복이 일어나게 되리라 믿는다.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면서…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하박국 3장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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