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이후 이집트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한 테러와 최근 교황의 방문을 계기로 이집트 콥트 교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집트 콥트 정교회(the Coptic Orthodox Church)는 고대 기독교의 한 종파로 오늘까지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최근 영국 크리스천투데이는 이집트 콥트 교회에 관해 알아야 하는 6가지 사실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1. 성마가와 함께 시작했다. 

가톨릭교회가 베드로에 의해 세워졌다면, 콥트교회는 마가에 의해 세워졌다.

전통에 따르면, 콥트교회는 AD 42년 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방문했던 전도자로부터 시작됐다. 마가의 방문이 이뤄진 후 50년 동안 기독교는 전역으로 확산됐다.

콥트 교회의 수장인 콥트 교황은 성마가 성당의 알렉산드리아 대주교로 알려져 있다.

2. 이집트 배경 

콥트 교회의 본부는 이집트에 있으며 전 세계 지부에 약 1,800명의 교인들이 있다.

이집트는 기독교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에서 탈출했으며 신약에서는 요셉과 마리아가 헤롯 왕의 위협을 피해 이집트로 피난을 오기도 했다. 이로써 호세아 11장 1절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말씀이 이뤄졌다.

이사야서 19장 19절 "그 날에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 그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 말씀에는 이집트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땅으로 묘사돼 있다. 이집트 콥트 교회는 이 예언의 성취로 여겨질 수도 있다.

3. 고대 학교들

콥트 교회는 알렉산드리아 문답학교(Catechetical School)를 형성했다.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2~4세기에 크게 보급된 기독교의 초기 교육기관으로 마가가 설립했다.

이곳의 교사들은 세례를 받으려는 신도들에게 신자가 지켜야 할 사항들을 문답식으로 가르쳤으며 성직자도 양성했다. 당시 유명한 교리교사로 판타에누스, 글레멘스, 니오니시오, 오리게네스 등이 있다.

1893년 콥트 교회는 학교를 신학대학교로 재건립하고 콥트교 고위 성직자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활용했다.

4. 사막의 교부들 

콥트 교회의 또 다른 유산은 이집트 사막의 교부들의 수도사 운동이다. 2세기 기독교인들은 이집트의 사막에서 금욕적인 생활을 해왔다. 이들은 자신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며, 사회에서 벗어나 광야에서 고독과 명상을 추구하는 삶을 권장했다.

가장 유명한 교부는 대 안토니우스(Anthony the Great)로 수도 생활의 설립자로 불린다. 콥트 교회는 동방 기독교의 영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으며 서양의 베네딕티파 수도사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5. 교리의 위기 

콥트 교회는 교회의 근본 신조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수의 신성을 부인한 아리우스와 그를 반대 아타나시우스 모두 알렉산드리아 교회에서 나왔다. 논쟁은 AD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정리됐다.

콥트 정교회를 포함한 오리엔탈 정교회는 AD 541년 칼케돈 공의회 때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문제로 다른 정교회들과 갈라지게 됐다.

6. 극심한 박해

콥트 공동체의 또 다른 유산은 오랜 박해의 역사이다. 한 때 이집트를 지배했던 기독교는 AD 639년 무슬림들의 침략 이후 소수 종교가 되었으며, 현재 이집트 기독교 인구는 전체의 10% 가량이다. 

콥트 공동체는 최근에도 많은 박해를 받고 있다. 특히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이슬람국가(IS)의 박해가 심각하다. 

지난 2015년 21명의 젊은 콥트 기독교인들이 리비아에서 IS에 의해 참수됐으며, 작년 12월에는 카이로의 콥트 교회에 폭탄이 터져 27명이 목숨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