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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목회자의 영향으로 성도 다수의 개성이 말살당한다면

기독일보

입력 May 01, 2017 07:21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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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에도 색깔이 있다

게리 토마스 | 윤종석 | CUP | 304쪽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회에서는 '영성'이라는 단어를 꺼려왔다. 그래서 그 대용의 의미로 '경건'이라는 단어를 선호했다. 좀 더 살펴봐야 할 문제이지만, 결국 로마가톨릭의 '영성'과 개신교의 '경건'이라는 단어는 비슷한 전철을 밟으면서 '형식', '제도', '방식(방법)'의 의미들로 전락하면서, 20세기 개신교회에서는 '경건'이라는 단어보다 다시 '영성'이라는 단어를 더 선호하는 듯 하다. 물론 여기에는 수면 아래의 복잡한 신학적 변화들이 잠재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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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성'이라는 단어는 개신교회뿐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사용해 오고 있는 로마가톨릭에서조차 그 정의를 명료하게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필자도 영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검토하며 글을 쓰고 있는 중이지만, 영성의 범위가 매우 광범위하기 때문에 그 의미를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상당히 무리가 있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영성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떤 관점에서 출발하느냐,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 이해의 방향이 결정된다. 본서의 저자는 영성을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 맺는 방식"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영성을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서 영성을 '기능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성에 관한 이러한 책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이 된다.

은사에서 영성으로

미국과 한국 개신교회는 국적과 언어만 다를 뿐, 신학적으로나 목회 방식, 신앙생활 방식, 메시지 등 거의 모든 것이 흡사하다고 보여진다(물론 미국이 한국보다 신학적 스펙트럼은 훨씬 넓지만, 목회 방식은 거의 유사한 것 같다). 물론 분명한 입장 차이를 보이는 대목들이 한국이나 미국 안에 존재하지만, 소수의 의견일 뿐이라는 것도 거의 일치한다(미국으로 유학을 많이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50년 전만해도 '은사', '능력', '권능' 등의 단어들이 목회와 신앙의 현장에서 주류를 이루었다. 그리고 대안적 방안으로 '제자훈련', '성경공부' 프로그램들이 등장했고, 이제는 '영성'이라는 단어가 붐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과거 '은사'는 성령(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강조하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제자훈련이 등장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관계에 대한 추구들이 일어났지만, 그것도 잠시 파라처치에서 반짝이다 제도권 교회의 성장주의 목회(목양이 아니다)에 흡수되면서 다시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은 목회의 도구와 기능으로 전락됐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선시했던 은사를 달란트로 변용하여 교회와 목회를 돕는 기능으로 다시 전환되는 아픈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물론 기능적 측면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부정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가운데, '은사'라는 단어가 가라앉고 '영성'이라는 단어가 현재 개신교회에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벌써부터 '영성'이 기능적으로 설명되고, 이해된다는 것이 매우 안타깝고 조심스럽다. 물론 본서의 저자는 '하나님과의 관계 방법'이라는 '관계'에 방점을 두면서, 하나님과 관계 맺는 9가지 방식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부분은 분명 과거의 은사적(기능과 능력) 관점에서 진일보한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영성의 9가지 기능과 특징'들을 설명하고 있다.

목적이 아니라 수단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곳까지 도달하기 위한 '방법'과 '수단'들이 반드시 중요하다. 그래서 방법과 기능을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절차적 단계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서의 저자 또한 여기서 소개되는 특징과 방법들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을 향하여 더욱 가까이 나아가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돼야 함을 여러 곳에서 반복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목적이란 '자신의 영성'을 개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수단으로 여기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목적이 되어야지, 자기의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수단이 되는 것은 분명 경계를 해야 할 대목이다.

어쩌면 본서는 기독교적 MBTI, 혹은 애니어그램과 유사하다고 여겨진다. 물론 MBTI나 애니어그램을 가지고 기독교적으로 접목하는 시도들이 꾸준히 일어나고 있지만, MBTI는 칼 융의 분석심리학적 4가지 성품 구조에 근거하고 있고, 애니어그램이 아무리 기독교적 영성의 입장을 취한다고 할지라도 고대의 점성술적 뿌리를 바꿀 수는 없다(그렇다고 거부하거나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인본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이 둘은 개인의 성품과 은사를 발견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본서는 기독교 신앙의 역사적 근거를 두고 분류하고 있기에 자신의 성품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주님의 일에 동참함에 있어 훨씬 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이해와 적용점을 제시해 주고 있다. 다만, 본서의 저자 또한 강조하고 있듯이 본서에 나오는 내용들은 수단이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양한 신앙의 방식

본서는 자연주의 영성, 감각주의 영성, 전통주의 영성, 금욕주의 영성, 행동주의 영성, 박애주의 영성, 열정주의 영성, 묵상주의 영성, 지성주의 영성 등 9가지 인간의 성향에 근거한 신앙생활의 주된 방식들과 각각의 차이들을 설명하고 있다. 물론 위 분류 방식은 정통적인 기능적 영성 분류방식은 아니다. 일부분에서는 서로 중첩되거나 좀 더 다르게 분류할 필요가 있는 부분들이 있지만, 그러나 자신의 신앙생활의 특징과 성향들을 살피는 데에는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한국교회의 상황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면, 성도들 각각의 신앙생활에서 개성이 말살당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익히 알고 있듯 사람들의 얼굴, 모양, 키, 성격, 성품, 성향 등에서 동일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이처럼 하나님은 획일적이시라기보다는 다양하고 풍성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나타내신다. 즉, 다수의 성도들에게 획일적인 신앙생활 방식과 획일적인 신앙 훈련의 방식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그 성향이 맞는 일부의 성도들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성도들의 신앙성장을 저해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교회(조직과 제도)가 가지고 있는 한계가 분명 존재한다. 그럼에도 오늘날 교회가 필요한 것은 성도들의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토양이다. 이 말은 성도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라는 말이 아니다.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개성과 특징들을 존중하여 그들에게 맞는 신앙의 방식과 지침들을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완벽한 것은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의 목회자 성향에 의해 다수의 성도들의 개성이 말살당하는 것은 건강하지 않으며, 각각의 성도들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켜 줄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개성을 서로 존중은 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그런 의미에서 본서는 자신의 신앙생활 방식을 발견하고 찾아가는 첫 발판으로 충분하며, 다른 사람들의 신앙생활 방식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협력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어지기를 기대한다.

강도헌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운영자, 제자삼는교회 담임, 프쉬케치유상담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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