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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태 칼럼] 故 김영애 배우의 아름다운 죽음

기독일보

입력 Apr 17, 2017 11:34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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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그의 삶을 다 알지는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지 자신은 없다. 그러나 마지막 우리 곁을 떠나는 그의 흔적은 아름다웠다. 현대인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죽음이다. 바로 김영애 씨의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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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71년 M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데뷔 후 47년간 연기 인생을 쉼 없이 줄기차게 달려왔다. 때로는 푸근한 엄마나 할머니 역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녹였고, 때로는 표독스러운 역할을 소화해 사람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가져오게 했다.

온 국민의 사랑을 받던 국민 배우, 그는 고백했다.

"나는 19살 때부터 연기를 시작했다. '내가 연기를 안 했으면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한테는 대본에 몰입하는 일이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기도 하고. 단순한 직업 이상이다."

자신이 고백하듯이, 자기 직업에 대한 애착과 사명감은 남달랐다. "진흙탕에 빠지는 때도 있었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때도 있었다." "그래도 꽤 부리지 않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다음 생애에 태어나도 배우로 태어날 것이다."

자기 일과 직업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 채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짐승마냥 직업 전선으로 끌려가는 현대인들을 생각하면, 정말 멋지지 않은가? 목표의식을 잃은 채 갈팡질팡,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김영애 씨는 아름다운 귀감이 되고 있다.

그는 인생의 상처를 연기로 치유한 배우였다. 그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끝까지 붙들고 싶었던 연기, 그것도 결국 죽음 앞에서 손을 놓아야 했다. 움켜잡았던 손을 펴고 놓아줘야 하는 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움켜 잡으려고 발버둥 친다. 때로는 불의한 일을 저지르고, 불법과 편법을 감수하고서라도.

생각해 보면 실로 아담이 뿌려놓은 죄의 바이러스는 무섭다. 그에게도 죄의 참상은 다가왔다. 질병과 죽음이라는 악재가. 2012년 그는 췌장암 판정을 받았다. 다년간의 투병 끝에 지난 4월 9일 66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우리 곁을 떠났다. 결혼한 외동아들을 뒤로 한 채.

화려한 배우의 길을 걸었지만, 그의 삶은 결코 순탄치 만은 않았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돈을 벌기 위해 사업에 뛰어들기도 했다. 황토팩 사업이다. 연 매출 1500억원 이상 올릴 정도로 성공적인 사업가가 되었다. 그런데 위기가 다가왔다. 한 제보자의 고발 때문이다. "황토팩에 중금속이 발견되었다." 사업 동업자였던 남편과의 불화로 두 번째 이혼까지 하게 되었다. 이혼을 결심하고서도 언론보도와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두려워 한동안 숨기고 쇼윈도 부부로 살기도 했다.

<해를 품는 달>을 촬영할 당시, 그는 췌장암 투병 중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질병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쓰러질 때까지는 최선을 다하는 게 연기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촬영도중 황달 증세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드라마 촬영 동안 자신의 질병을 숨긴 채 병원을 다녔고, 고통을 참으려고 허리에 끈까지 조여 매고 연기를 했다. 드라마가 끝나고 수술을 받아 몸무게가 40kg까지 줄어들기도 했다.

그래서 그가 유작으로 남겼던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의 마지막 회에는 출연할 수 없었다. 치열한 투병 속에서 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맡은 작품을 끝까지 마치기를! 주변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는 투병 중에도 전혀 아픈 티를 내지 않았다. 목숨 다할 때까지 자기 일에 몰두했다. 결국 그는 꽃비가 내리는 봄날 배우 생활 47년의 여정을 마감했다.

현실적으로 감당이 안 되다 보니 약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수면제를 복용해야 잠을 잘 수 있었다. 4-5년 동안 신경 안정제를 복용해야만 견딜 수 있었다. 결국 알콜 중독 상태까지 갔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외롭기 그지없는 시간들이었을 게다. 그렇게 견디기조차 힘든 고통의 인생터널을 무난하게 건널 수 있는 비결이 있다.

"살아가면서 숨쉬기조차 힘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믿음이 있었다. 이 순간이 지나면 더 나은 시간, 더 좋은 시간이 올 것이다." 때로는 막연한 기대인지 모른다. 때로는 낙관에 속고 또 다시 울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희망의 끈이라도 없으면 어떻게 견딜 수 있으랴.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속 김영애 씨.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속 김영애 씨. ⓒKBS 캡처 

걷는 것조차 힘든 때에도 고통을 이겨내며 스스로 영정 사진을 준비하고, 수의까지 준비했다. 그는 아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본인이 죽은 후에 허례허식에 돈 쓰지 말라고. 연명치료 하지 말라고. 인공호흡기나 심폐소생술을 하지 말라고.

그는 죽음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끝난 셈이다. 그러니 담담하게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죽고 사는 것 때문에 억울한 것 하나도 없다."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게 은혜 아닐까?

그가 이 땅을 떠나면서 마지막 남겼던 말이 있다. "모두에게 감사하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감사한 일들이 얼마나 많고, 감사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정작 감사를 잃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게 감사할 것 없는 사람처럼 생각되는 그는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을 수 있게 되니, 멋진 인생이다. 그에게는 천국에 대한 확신과 부활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에 조용히 눈을 감고 하늘 아버지 품에 안길 수 있었다. 지치고 피곤한 이 땅에서의 사명을 마치고.

예수님은 김영애 씨보다 더 짧은 생애를 살고 하늘 아버지의 품으로 떠나셨다. 그러나 그의 삶은 아름다웠다. 가난한 자와 병든 자, 소외되고 상처 받은 자들의 친구가 되어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셨다. 하나님 나라 소식을 죄로 범벅이 된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으로서, 메시아로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맛보게 만들어 주셨다.

식사도 거르시고, 잠도 제대로 주무시지 못하시고, 가족들에게 '미쳤다'는 핀잔을 받으면서까지 하늘 아버지께서 세상에 보내신 목적에 충실한 삶을 사셨다. 자기 일에 집중하고, 사명에 전념했던 인생이다.

그는 마지막 십자가 위에서 온갖 조롱을 받고, 엄청난 고통과 잔인한 아픔을 참아내면서 말씀하셨다. "다 이루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은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저주를 한 몸에 받으셨다.

그러나 그는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무덤 문을 열고 사흘만에 부활하셨다. 부활의 첫 열매로. 우리의 부활의 보증으로.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가 갈 하늘나라에 처소를 예비하러 가셨다. 언젠가 다시 오실 것이다. 우리를 데리러. 새하늘과 새땅으로 우리를 초대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연합한 자들은 죽음이 두렵지 않다. 대신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과 일에 목숨 걸고 달려간다. 마지막 죽음의 현장에서 '나는 나의 달려갈 길과 믿음을 잘 지켰다'고 고백하기 위해. 그에게는 부활의 영광이 기다리고 있다. 비록 죽음에 이를지라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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