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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길 목사의 영성으로 가는 성지순례 이야기(29)

기독일보 news@christianitydaily.com

입력 Apr 13, 2017 10:58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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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왕국의 우두머리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

북방의 수비수 하솔

여호수아서에 의하면 가나안 하솔 왕 야빈의 수도였던 이곳은 당시에 북쪽에서 가장 강력한 가나안 성읍이었다.

여호수아의 정복 전쟁 시 가나안 북부의 주요 도시로 게데스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남동쪽으로 약 11km 떨어진 오늘날의 Tel Hazor를 성경에 나오는 하솔로 생각할 수 있다. 하솔의 뜻은 뜰, 정착촌이라는 의미로 북쪽 메소포타미아에서 남쪽 가나안으로 내려오는 주요 대로의 통로에 놓여있어 고대에도 군사로 대상로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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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솔 왕 야빈은 이스라엘의 진격소식을 듣고 가나안 북부 지역의 연합군을 이끌고 이스라엘을 물리치고자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그의 성은 불타버렸다.(수11:1-12)

언덕 위에 세워진 그 지역의 도시 중 불태워진 도시는 하솔뿐이다. 후에 여호수아에 의하여 납달리 지파에게 분배되었으나(수19:32, 35, 36) 납달리 지파가 점령을 못하였다. 사사 시대에 이르러 야빈이라는 또 다른 강력한 가나안 왕의 왕권 중심도시였으나 여사사 드보라와 바락 장군에 의하여 점령되었다.(삿4: 2) 왕국 시대에는 게셀이나 므깃도와 같이 솔로몬의 병거성이 웅장하게 건립되었다. 이곳에서 솔로몬의 마병대가 훈련을 하고 유사시에 출동하여 근처에 있는 가나안을 제압하고 북방의 적들의 침입을 방어하였다.

하솔에 있는 다윗왕 시대의 건물 유적
하솔에 있는 다윗왕 시대의 건물 유적

그러나 디글랏 빌레셋에 의해 성이 함락되었으며 성안의 백성들은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가는 신세가 되었다.(왕상9:15, 왕하15:29) 바벨론 포로 귀환 후 베냐민 자손 중 일부가 거주하기도 하였다.

하솔은 고대 시대에 중요한 무역로(Via Maris)였으며 군대 이동 통로이기도 하였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군대와 이집트의 강력한 군대의 충돌 장소이기도 하였다. 가나안의 입장에서는 가장 북쪽의 병거 성으로 북방에서 밀려오는 이 민족 침입을 저지해야 하는 막대한 책임이 부여된 곳이다.

하솔의 고고학적 발굴

1875년 아랍어로 “엘쿠다시”라 불리웠던 이 유적지는 영국의 고고학자에 의하여 알려지고 1928년에 가스팅이라는 영국의 고고학자에 의하여 부분적인 발굴이 이루어졌다.

1948년 이스라엘 독립 이후에는 1955년부터 1958년까지 그리고 1968년부터 1969년까지 이스라엘 고고학자 이갈 야딘에 의하여 구체적인 발굴이 이루어져 도시 역사에 대하여 상세하게 알게 되었다. 해발225m-230m에 위치한 하솔은 야빈이 통치할 때 2만 명에서 3만 명에 이르는 주민이 있었고 전체 크기는 80 헥타르나 된다.

야딘이 발굴할 때 성문의 흔적이 므깃도의 솔로몬 성문과 기초가 똑 같은 것을 보고 이 두 성문이 솔로몬에 의하여 세워진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솔로몬 시대 및 북이스라엘 시대 유적지
솔로몬 시대 및 북이스라엘 시대 유적지

상부 도시와 하부 도시 그리고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성문과 성벽 등이 발굴되어지고, 아합의 물 저장고(총 깊이 38m- 이 저수지는 19m의 수직 수갱으로, 넓고 경사진 터널 형태로 25m를 더 파내려 갔다. 위층 계단에서 바닥까지는 총 123개의 계단이 있다.)가 발견된다. 1990년 미국의 컴풀텐스 대학교와 히브리 대학교가 공동으로 록펠러 재단의 도움을 받아 이갈 야딘에 이어 발굴을 하게 된다. 전체적으로 Area A부터 Area P까지 다양한 유적층이 나타나고 있다.

청동기 시절(주전 18세기-14세기)까지의 하솔 유적지가 최근에 발굴을 통하여 모습을 드러냈다. 주전 19세기-18세기에는 이집트의 침입으로 이집트의 지배를 받은 역사가 있었고, 도시의 이름은 “엘 아마나“라 불렸다.

요즘은 하솔 왕 야빈의 궁전이 벤토르 교수에 의해 발굴되고 있다. 아직도 발굴이 진행 중인데 궁전의 동쪽 입구 길이만 39m이고 벽의 높이도 2.4m가 넘는 것으로 궁전이 상당히 컸을 것이라 짐작된다. 이곳에서 상아 유물과 신의 형상으로 보이는 청동상이 발견되기도 했다. 또한 발견된 문서는 하솔이 가나안의 강력한 왕권도시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 궁전은 주전 1230년 경에 화재로 파괴되고 1m에 가까운 잿더미에 덮였다. 그리고 그 위에 새로운 도시가 건설되었다.

당시 올리브 기름 짜는 장소
당시 올리브 기름 짜는 장소

도시의 서쪽에서 주전 9세기에 지어진 성채가 발견되었는데 이 성채는 주전 734-732년에 앗시리아에 의하여 파괴된 성채이다. 이곳에서 현무암으로 만든 정방형의 기초석이 발굴되었고, 동물들의 뼈들과 용기들이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희생 제사를 드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도시의 역사는 이후 솔로몬의 병거 성(솔로몬 사후 200년 지나 북이스라엘 왕 베가의 통치 때 앗시리아 왕 디글랏 빌레셋 3세가 점령하였다. 왕상6:15, 왕하15:29)을 거쳐 아합의 도시가 되었던 것이 발굴을 통하여 세상에 알려졌다. 주전 732년 앗시리아에 의해 점령이 되고 주전 7세기에서 주후 2세기까지 상부 도시가 건설되는데 주전 147년 마카비 정권의 도시 재건 프로그램이 진행되기도 했다.

로마 시대와 비잔틴 시대를 거치면서 도시는 점점 흙으로 뒤덮이게 되었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하솔은 사라졌다.

하솔의 교훈

갈릴리 바다와 북쪽 국경지대를 이어주는 중간지대에 위치한 하솔은 지금도 90번 도로의 주 통행로 선상에 있어서 순례객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우기인 겨울에 이곳에서 보는 헤르몬 산의 설경은 일품이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 국립공원 중의 하나로 국립공원 티켓으로 방문할 수 있는 고대 유적지다. 이스라엘에는 총 70군데의 국립공원이 있다. 국립공원은 자연 경관과 역사적 유적지, 성경적 배경이 되는 유적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대 이스라엘 왕국 시대의 역사의 현장을 보시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한번쯤 둘러 볼만한 곳이다.

모든 왕국의 우두머리(수11:10)라는 거대도시 하솔의 파괴는 가나안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위대한 승리 장면이다. “사람이 아무리 성을 지키려 하나 여호와께서 지키지 아니하시면 허사로다” 하는 말씀이 새삼 생각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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