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들은 어떤 부부 이야기이다. 누나만 하나 있고 외아들인 이 집 남편은 청년 때부터 '마마보이'라는 소리를 듣긴 했으나 그리 심한 모친의존형 인간은 아니었는데, 아내로부터 약 15년째 마마보이로 찍힌 상태이다. 남편 입장에서는 약간 억울할 만하지만 아무튼 아내는 그렇게 생각한다는데, 이 집의 고부갈등이 간단치 않은 이유도 아내의 남편에 대한 서운함이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

얼마 전 그 댁의 어머니가 빈혈 증세로 하루 입원해 검사를 받을 일이 있었다. 그런데 아내가 단호히 병원에 가서 1박 2일 동안 지키지는 못하겠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아들 혼자 어머니 옆을 지켰고, 아내는 다음날 아침 일찍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 병환의 경중이 행동의 변수가 될 수 있었지만, 아직 특정한 병의 진단을 받은 것도 아니니 하루 저녁쯤 혼자 주무시고 며느리가 아이 깨워 등교 준비시키고 바로 오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과, 그래도 어떻게 연로하신 어머니 혼자 주무시게 하느냐는 의견이 둘 다 일리가 있다. 어느 한 쪽이 양보하면 되는 문제이다.

 

그런데 마마보이는, 남자 혼자서 되는 것이 아니고 세 사람의 합작품이다.

우유부단한 남자는 단호한 아내와 기대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자기라도 병원에 가서 자고 출근하겠다고 한다. 아내는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며 못마땅해 한다. 어머니는 또 혼자 왔느냐 하시며, 바쁘고 피곤할텐데 하면서도 돌려보내지는 않는다.

남편은 중간에서 헤매는데, 어머니는 "네 마누라야, 나야?" 하시고, 아내는 "어머니야, 나야?" 하면서 매사에 둘 다 '답정너'의 질문을 던진 채 남편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결단을 못한 죄로, 그는 마마보이가 된다(물론 어머니는 공처가로 보심).

왜 중립을 지키는데 아내에게는 마마보이가 될까? 그것은 남자가 자기 위치를 이탈했다는 뜻이다. 자기 위치란 아내의 옆이다. 흔히 말하는 효자들과 마마보이 제조기 엄마가 좋아하는 레퍼토리가 이런 거다.

"아내는 또 얻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한 분뿐이다."

나도 어릴 때, 이 말이 참으로 효자의 명언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일리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말은 성경적이지 않다. 오산이라는 거다. 남편의 자리는 아내 옆이다. 아내가 악처라면 저렇게 말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자기가 선택한 여자라면 악처인지 아닌지는 일단 중요하지 않다. 몸이 안 따라줘도 우선 자기 자리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아내는 언제 남편을 마마보이로 찍을까?

아내에게는 남편이 병원에 가고 안 가고, 남편이 용돈을 얼마나 드리고, 어머니 이야기를 몇 번 하고 하는 단편적인 것은 심하지만 않다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아내는 남편의 삶이, 그리고 남편의 관점이 어디에서 출발하고 어디에 초점을 두고 있는지를 본다. 나와 결혼한 남자가 어머니의 아들이면서 내 남편이기도 한 사람인지, 내 남편이면서 어머니의 아들이기도 한 것인지 본다는 것이다.

먼저 어머니의 아들인 것은 시간 순서상 당연한 것인데 굳이 먼저 아내의 남편이어야 하는가 생각할 수 있지만, 가정의 최소 단위는 부부이다. 어머니에게 소홀히 하라는 것이 아니다. 아내에게 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드리면 안 된다는 게 아니다.

남편의 마음이 확고하면 자기가 먼저 나서서 어머니를 챙길 며느리도 꽤 있을 것이다. 말 한 마디라도 아내의 편에서 하고, 삶의 기준점을 아내에게 맞추면서 어머니도 챙기면 아내도 그 마음을 알아줄 것이다. 알아주지 않아도 그것이 옳은 것이다. 결혼은 부모를 '떠나' 한 몸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그들은 하나이다. 장가간 아들과 어머니는 하나가 아니다.

"이런 까닭에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결합하여 그들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엡 5:31)".

이것이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이며 신비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제대로 자기 있던 곳을 떠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이 구원이다. 그러므로 결혼의 원리는 떠남과 연합이다. 이것을 결혼을 통해 말씀하신 것을 보면, 남자가 제대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는 것부터 결혼은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인연을 끊다시피 하는 것이나 부모에게 소홀히 해도 되는 것으로 오해할 사람은 없을 것으로 믿는다.

어머니는 핏줄이기 때문에 팔이 저절로 굽는다. 누가 어머니를 욕하면 피가 솟구친다. 반면 다투었거나 미운 아내는 저절로 정이 뚝뚝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어머니보다 아내에게 의식적으로라도 더 애정을 쏟아야 하는 것이다.

부모를 떠나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에, 정확한 선을 긋고 살면 어머니도 미련을 버릴 수 있고 오히려 편하다. 며느리와의 관계도 개선된다. 제자리를 찾으면 무엇이든 편안해지는 것이다.

어머니의 역할은 어떤 의미에서 가장 중요할 수 있다. 어머니 역시 내 아들이기 전에 며느리의 남편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며느리의 마음이 풀릴 것이다. 어머니들은 자신의 시어머니를 생각한다면 이해가 갈 것이다.

마마보이를 방치하고 있는 세 사람이 알아둘 것은, 남편과 아내는 무촌이지만 어머니와 아들은 1촌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최소한 이혼하기 전까지는 어머니보다 한 마디(寸) 가까운 것이 아내이다. 자식이 1촌이고, 형제가 2촌이며, 삼촌이 3촌이다. '한 마디'의 차이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마마보이는, 미안하지만 아직 철이 약간 덜 든 사람이다. 마마맨(?)이라는 말은 없지 않은가? 그러니 세상의 모든 마마보이들이여, 어서 빨리 (효심이 깊고 지혜로운) '와이프 맨'으로 거듭날지어다!!

김재욱 작가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생명의말씀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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