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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과 불신지옥

기독일보 la@christianitydaily.com

입력 Mar 05, 2017 07:56 AM P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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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어느 한 기독교인 학생이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에 찾아가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것이 너무 싫다! 어떻게 기독교인으로써 다른 종교인들을 사랑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했었습니다. 그러자 법륜 스님이 그 학생에게 준 답변 중 하나가 마태복음 25장의 예를 들며 다른 사람을 도우며 선하게 살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며) 여기 작은 자 하나를 보고 어떤 마음을 내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 이것이 구원의 기준이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마태복음 25장의 예를 들며) '너희가 여기 내 형제중에 지극히 작은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니라!' 이게 구원의 기준이에요. .. (중략) 예수의 육신은 십자가에 매달고 죽일 수 있었어도 그의 영혼은 아무 상처도 줄 수가 없었습니다. 이게 부활입니다. 몸은 죽어도 그 마음은 죽일 수 없는... 뭐 몸둥이가 3일 만에 살아나고 어쩌고 그런 건 제가 볼 때는 핵심이 아니에요."

기독교의 진리를 왜곡하고 있는 법륜 스님

 

(Photo : )

물론 다른 종교를 가진 스님에게 올바른 성경 해석을 들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이 무리가 될 수 있겠지만, 이는 기독교의 진리를 너무나도 크게 왜곡 하는 것이기에 많은 우려가 되었습니다. 또 많은 기독교인들이 스님의 말씀에 크게 공감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참 안타까웠습니다. 법륜 스님께서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말씀셨더라도 이는 분명 왜곡된 복음입니다.

 

법륜 스님은 인본주의에 사로잡힌 불신자들에게는 공감이 가는 말씀을 하신것이지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복음을 말씀하신게 아닙니다.

법륜 스님의 말씀을 자세히 들으면 마태복음 25장의 맥락, 더나아가 성경 전체의 맥락과 전혀 상관 없이, 스님께서 해석하고 싶으신 부분들만을 잘라서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고 계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이 글에서는 법륜 스님께서 마태복음 25장의 어떤 중요한 메세지를 무시하셨는지! 또 어떤 부분을 끼워 넣으셨는지를 설명드리며, 저의 개인적인 묵상을 나누고자 합니다.

마태복음 25장은 마지막 때에 대한 내용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를 나누는 비유는 24장의 예수님의 재림의 징조, 혹은 마지막 때의 징조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24장 후반부터 나오는 주인으로부터 집안 사람들을 넘겨 받아 제 때에 양식을 나눠주는 신실한 종, 25장 초반의 열 처녀의 비유, 25장 중반의 달란트 비유에 이어 마지막으로 나오는 양과 염소의 비유 혹은 Great divide의 비유는 모두 예수님의 재림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를 예수님의 재림과 연결시키지 않는다면! 또 비유 전체를 연결시키지 않는다면! 필연적으로 잘못된 해석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법륜 스님의 해석처럼 말이죠.

마태복음 24장과 25장에 흐르는 이야기에는 주목할 공통점이 있습니다.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혹은 주인을 주님이라고 인정한다는 것 입니다.

그러나 그 악한 종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내 주인이 오는 것을 늦추시는구나. 하며 <마태복음 24:48>

그 뒤에 다른 처녀들도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하나 <마태복음 25:11>

그 뒤에 일 달란트 받은 자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엄한 사람이라 뿌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내가 알았으므로. <마태복음 25:24>

이에 그들도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느 때에 우리가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주를 섬기지 아니하더이까? 하리라. <마태복음 25:44>

즉 위 마태복음 24~25절 말씀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시말해 이 이야기는 무신론자나, 불교인이나, 법륜 스님과 같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자들에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라고 전부 다 구원을 얻는게 아니며, 마지막 때 어떻게 이들을 나누실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태복음 7장을 통해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하며, 거짓 선지자를 조심하고,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며, 이는 그를 열매를 통해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열매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내게,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다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오직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21>

성경은 분명하게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음을 얘기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얻습니다. 자기 스스로의 의로움으로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교리는 기독교인이 거절할 수 없는 분명한 진리이며,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조엘 오스틴 같은 사람처럼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착각하고 선함을 배풀며 매주 교회에 참석을 한들,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그들은 가짜 복음을 믿고있을 뿐입니다.

열 처녀의 비유를 보시면, 열처녀는 모두 신랑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등불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등불을 밝히기 위한 기름을 준비했고,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등불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105>

그 명령은 등불이요, 그 법은 빛이며 훈계하는 책망들은 생명의 길이니라. <잠언 6:23>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더라. 그 빛이 어둠 속에 비치되 어둠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복음 1:1~5>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나를 살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뿐입니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분별할 수 있게, 또 누가 우리의 구원자인지를 알 수 있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어두운 우리를 밝힐 수 있는 것은 빛 입니다. 요한복음은 말씀이 하나님이셨으며 그 분안에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은 빛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말씀을 받더라도, 사람들은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그 빛이 어둠 속에 비쳤지만 사람들이 깨닫지 못했다고 얘기합니다.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말씀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을 깨닫도록 우리를 도와주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진리의 성령님 입니다. 법륜 스님처럼 성령님의 도움이 없이 성경을 깨달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다섯 처녀와 같이 기름 없이 등불을 밝히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 다음에는 달란트의 비유가 나옵니다. 많은 분들이 잘 아시지만, 달란트의 비유는 주인이 먼길을 떠나면서 세명의 종에게 능력에 따라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주셨는데,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이 자신의 달란트를 사용해서 장사를 하지 않고, 땅에 묻어 두었다가 돌아온 주인에게 책망을 듣고 쫓겨나는 이야기 입니다.

그 무익한 종은 주인이 준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가져다 주며 이렇게 얘기합니다.

"나는 주인님이 엄한 사람이기에 뿌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기에 주인님을 두려워 해서 이 달란트를 땅에다 숨겼습니다!"

즉 다시 얘기하면 아무 노력을 하지 않고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분이라고 알았기에 무서워서 그냥 달란트를 감춰 놨다는 것입니다. 이 무익한 종은 두 가지를 잘못했는데, 첫번째로 이 주인을 오해한 것 입니다. 가끔씩 우리는 성경을 잘못 이해해서 이렇게 얘기할 때가 있습니다. "어차피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하실텐데..." "하나님이 전능하신데 내가 할 일이 뭐가 있나?"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일하고 싶어하시는 분 입니다. 우리와 함께 구원의 역사를 완성해 나가고 싶어하시는 분 입니다.

달란트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과연 이 비유에서 '달란트'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성경은 항상 우리에게 이 세상의 어떤 것 보다 영생을 더 중요히 강조합니다. 반면 우리는 이 세상의 삶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에 이를 잘못 해석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즉 하늘나라의 일을 이 세상의 일로 잘못 적용하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추수할 때가 가까워 왔다는 말씀은, 많은 이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의 '달란트' 역시 사람을 구원하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아무렇게나 사람을 구원하시는 분이 아니며,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신 분 입니다. 무익한 종이 생각한 것과 다르게 하나님은 구원을 위해서 계속해서 우리를 통해서 씨를 뿌리는 분 이십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들은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귀중한 씨를 가지고 나가서 우는 자는 반드시 기뻐하며 자기의 곡식 단들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편 126:5~6>

무익한 종의 두번째 잘못은 달란트를 땅에 숨긴 것 입니다. 그리고 이 역시 주인을 오해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누구든지 등잔불을 켠 뒤에 그릇으로 그것을 덮거나 침상 밑에 그것을 두지 아니하고 등잔대 위에 두나니 이것은 들어가는 자들이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누가복음 8:16>

하나님은 나의 구원을 숨기거나 하나님을 부끄러워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의 빛을 받아 빛을 얻었다면 그것을 드러내기를 원하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것을 피할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빼앗길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8장 18절에서도 동일하게 있는자는 받을 것이며 없는 자는 자기가 갖고 있는 것도 빼앗길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왜 무익한 종은 열심히 일하지 않고 땅에다 그것을 감춰 놨을까요? 왜냐하면 그 모든 수익이 자기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일견 정확한 생각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하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하나님의 것이며 모든 공로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기쁘지 않은 무익한 종, 자신의 삶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던 무익한 종은 나에게 이득이 없는 노력에 관심이 없었을 것 입니다.

자 그런 맥락에서 마지막 비유를 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의 진의

마태 복음 25장 양과 염소마태복음 25장 마지막 양과 염소의 비유는 예수님께서 양과 염소를 갈라 놓고는 내가 주릴 때, 목말랐을 때, 나그네 되었을 때, 헐 벗었을 때, 감옥에 갇혔을 때 나를 도왔기 때문에, 혹은 돕지 않았기 때문에, 천국에 가거나 지옥에 가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비유를 보시면 특이한 말들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아버지께 복 받은 자들에게 창세로 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왕국을 상속 받는다는 것!

두번째는 그 복받은 자들이 자기들이 언제 왕이 얘기한 선행을 했냐고 되물었을 때, 왕은 분명하게 내 형제들 중에서 가장 작은자에게 선행을 했기에 나에게 한 것과 같다고 얘기하는 것 입니다.

왕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이들 내 형제들 중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그것을 하였은즉 내게 하였느니라. 하고 <마태복음 25:40>

법륜 스님은 이 구절을 불교인의 관점에서 보기에 이런 작은 단어들의 참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 입니다. 성경에서는 친형제를 지칭하는 말, 혹은 가짜 그리스도인을 지칭하는 거짓 형제 같은 단어들을 제외하고는 '형제'라는 단어를 믿지않거나 구원받지 못할 자에게 사용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 곧 그가 내 형제요 내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3:35>

기독교인에게 행하는 선행만을 인정한다는 의미일까?

그러므로 본문의 말씀을 법륜 스님처럼 해석한다면 기독교인들에게 행한 도움만이 천국, 지옥을 가는 기준이 된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독교인에게 선행을 하면 구원을 받고 다른 사람들에게 선행을 하면 지옥에 간다고 설명하고 싶으셨던 것일까요? 혹은 이 전부를 행해야 한다는 것일까요? 아니면 하나만 해도 된다는 것일까요? 어떤 일을 해도 한번만 도와주면 천국에 간다는 걸까요? 염소들은 모두 다른 사람을 어떻게든 도와준 적이 한번도 없는걸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천국이 양들을 위해 창세 전부터 즉 그 들이 선행을 하기는 커녕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들을 위해 예비 되어 있었다고 하는 것 입니다. 이는 두 가지를 의미하는데, 첫번째는 내가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 나의 노력이나 선행에 의해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두번째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미리 준비하신 것이라는 것 이며, 창세 전에 누가 양이 될지는 정해져 있다는 즉 누가 예수님의 형제일지는 정해져 있었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렸던, 하지만 창세전부터 계획했던 양들, 바로 그리스도의 형제들을 우리가 찾아서 주님께로 인도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형제들 중 가장 작은 이에게 행한 여섯가지 선행은 무엇일까요? 왜 하필, 주릴 때, 목 마를 때, 나그네 되었을 때, 헐 벗었을 때, 병들었을 때, 감옥에 갇혔을 때 일까요?

배고픈 자...

이것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그 빵이니라. 너희 조상들이 만나를 먹고도 죽은 것과 달리 이 빵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6:58>

또 그분께서 빵을 집으사 감사를 드리시고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준 내 몸이라.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라. 하시고 <누가복음 22:19>

목마른 자...

누구든지 내가 줄 물을 마시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줄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솟아나는 우물이 되어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4:14>

마지막 날 곧 명절의 그 큰 날에 예수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 기록이 말한 것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7:37~38>

또 내게 이르시되, 다 이루어졌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라. 내가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의 샘에서 값없이 주리라. <요한계시록 21:6>

나그네...

이 사람들은 다 믿음 안에서 죽었으며 약속하신 것들을 받지 못하였으되 멀리서 그것들을 보고 확신하며 받아들였고 또 땅에서는 자기들이 나그네요 순례자라고 고백하였으니 그런 것들을 말하는 자들은 자기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나타내느니라. <히브리서 11:13~14>

극진히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순례자인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혼을 대적하여 싸우는 육체의 정욕들을 삼가라. <베드로전서 2:11>

헐 벗었을 때...

오직 너희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육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육신에게 기회를 주지 말라. <로마서 13:14>

너희 가운데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자는 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라디아서 3:27>

감옥에 갇힌 자...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열어 주며 갇힌 자들을 감옥에서 데리고 나오고 어둠 속에 앉은 자들을 감옥 집에서 나오게 하리라. 나는 주니라. 그것은 내 이름이니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며 내 찬양을 새긴 형상들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42:7~8>

주 하나님의 영께서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온유한 자들에게 좋은 소식을 선포하게 하셨기 때문이라.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마음이 상한 자들을 싸매고 포로 된 자들에게 자유를, 결박된 자들에게 감옥에서 놓임을 선포하게 하려 함이요. <이사야 61:1>

내 혼을 감옥에서 데리고 나오사 내가 주의 이름을 찬양하게 하소서. 주께서 나를 후대하시리니 의로운 자들이 나를 에워싸리이다. <시편 142:7>

병든 자

그분의 명성이 온 시리아에 두루 퍼지니라. 그들이 모든 병든 사람 곧 갖가지 질병과 고통에 사로잡혀 앓는 자, 마귀 들린 자, 미친 증세가 있는 자, 마비 병 환자들을 그분께 데려오니 그분께서 그들을 고치시매. <마태복음 4:24>

예수님께서 그것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온전한 자들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으나 병든 자들에게는 필요하니라. 오직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희생물을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우라. 나는 의로운 자들을 부르러 오지 아니하고 죄인들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 왔노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9:12~13>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그가 죄들을 범하였을지라도 그것들을 용서받으리라. 너희 잘못들을 서로 고백하고 너희가 병 고침을 받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 의로운 자의 효력 있고 뜨거운 기도는 많은 유익이 있느니라. <마태복음 5:15~16>

양들이 했던 모든 선행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

저는 마태복음 25장에 나온 모든 선행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달란트를 땅에 묻지 않고, 이익을 남긴 신실한 종들이 한 일이며, 그 주인이 가장 크게 관심을 갖고 기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24장 후반에 나온 자기 주인으로부터 집안 사람을 다 넘겨 받아 다스리며, 제때에 그들에게 양식을 나눠 줄 신실하고 지혜로운 종을 얘기하는 바라고 생각합니다. 그 신실한 종이 무엇을 양식으로 주는 것일까요? 돈 일까요? 행복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이며 복음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구원에 필요한 양식, 예수 그리스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제 우린 마지막 질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예수님을 전하면 구원을 받는 것일까? 이는 행위를 통한 구원을 얘기하는 것이 아닐까?

아닙니다. 저는 아직도 구원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얻는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예수님을 전하는 행위를 통해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전도는 믿음에서 나올 수 밖에 없는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전도야말로 진짜 믿는 것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선한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정말로 영원히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었던 죄인이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값 없는 보혈을 통해서 은혜로 영원히 하나님 나라의 모든 것을 상속 받을 의인이 되었다면, 그리고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가서 영원히 고통 받으리라는 것을 확신한다면, 우리는 전도할 수 밖에 없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마지막 때입니다. 예수님은 곧 다시 오십니다. 지금 이 시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게 무엇일까요? 잃어버렸던 하지만 창세전부터 계획했던 양들, 형제들을 찾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일 겁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땅에 묻지 말고, 내 주인이 늦게 오는 구나라고 생각하며 자기 동료 종들을 때리고 술취한 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지 말며,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등불과 함께 기름을 준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기름 즉 성령님을 어떻게 구하는가?

마지막으로 기름을 어떻게 준비할 수 있는지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을 남깁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너희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자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자는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이니라.

그런즉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들에게 좋은 선물들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구하는 자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하시니라. <누가복음 1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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