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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수 목사의 한국교회사] 교회의 사회개혁 활동 (VII)

기독일보 news@christianitydaily.com

입력 Mar 03, 2017 10:03 AM P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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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장신대 김인수 총장
김인수 목사(전 미주장신대 총장)

초기 선교사들이 한글 전용을 추진한 결과 시골 아낙네들도 쉽게 한글을 깨우쳐 성경을 읽고 기독교 서적을 읽게 됨으로써 전도와 민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 견인차 역할을 했다. 초기 한국 교회는 원칙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한글을 읽을 수 있도록 계몽하였다. 따라서 서른 살 미만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성경을 읽을 수 있을 때까지 세례를 받을 수 없었고, 남편들은 자기 아내가 한글을 깨우칠 때까지 역시 세례를 받을 수 없게 함으로써 소수의 노인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읽고 찬송가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김구(金九)는 자기의 종형(從兄)이 낫 놓고 기역자도 몰랐으나 자기를 따라 장연에 와서 예수를 믿은 뒤로는 국문에 능통하여 종교서적을 보고 강단에서 설교까지 하게 되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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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교회는 전도만 하는 것을 능사로 여기지 아니하고 민족교화의 차원에서 한글교육에 열성을 다하였다. 따라서 “……[문맹자들에게] 교육을 주지 안코 전도만을 하겟다는 것은 무지의 큰 자이다. 앎이 업는 자에게는 암만 전도를 흔대야 소득은 기형아의 신자뿐일 것이다.”라고 쓴 것에서 보는 것 같이 문자 해득 없이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는 것을 기형아를 만드는 것으로 인식하고 한글 보급에 전력하였다.

그리스도 신문 보도에 따르면 제중원 의사 필 부인이 경기도 남부 죽산 둠벙이라는 곳에 가 보니 인가가 12호 있는데, 두 집 외에는 모두 믿는 자들로서 매 주일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데, 그 곳 여인들이 국문을 알지 못하는 자가 별로 없고 혹 국문을 알지 못하는 여인이 있으면 그 남편이 가르쳐 준다고 하였다.

한글학자 최현배는 후에 “기독교가 한글에 끼친 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하였다. 1. 한글을 민중 사이에 전파했다. 2. 신도들은 사상 표현의 말씨를 배우며, 글 읽고 글 쓰는 방법까지 깨치게 되었다. 3. 한글에 대한 존중심을 일으키고 한글을 지키는 마음을 길렀다. 4. 한글의 과학적 가치를 인정했다. 5. 배달의 말글을 널리 세계에 전파하였다. 6. ‘한글만 쓰기’(한글전용)의 기운을 조성하였다.

선교사들은 한글 공부에 절대 필요한 사전을 편찬하는 일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언더우드는 처음 한국어 공부를 하는데 사전이 없어서 큰 불편을 겪었던 것을 생각하고 5년간 노력으로「한어자전」(A Concise Dictionary of the Korean Language)을 1890년 요코하마에서 간행하였다. 그가 이 작업을 하는 동안에 겪은 최대의 어려움은 한글에 통일된 철자법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한글 통일 철자법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1904년 9월에 모인 제4차 장로회공의회에서는 “國文(국문)을 사용하는 데 同一(동일)한 規模(규모)를 세우고, 今者(금자) 作定(작정)업시 各人(각인)의 心(심)대로 紊亂(문란)하게 사용하는 거슬 업시하고 始何(시하)케 하던지 容易(용이)한 法(법)으로 改正(개정)”하도록 결정하였다.

한국인들에 의해 천대받던 우리의 글을 선교사들이 그 가치를 인정하고 폭넓게 사용함으로써 우리의 글을 실용화하였다. 또한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하였고, 우리 민족의 동질성을 자각시키는 데 큰 몫을 감당하였다.

한글학자 최현배가 기독교가 한글을 전용하는 정책을 세운 결과에 대해 쓴 글은 다음과 같다. “기독교는 한글만으로 된 성경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리하여 그 교회가 전파되는 곳에 반드시 한글이 전파되며, 한글이 전파되는 곳에 그 교리가 또한 전파되는 서로 인과하는 결과가 되었다. 민중 사이에 한글이 널리 전파되어 사회적으로 미천의 처지에 있던 서민 대중이, 새로운 교훈인 기독교의 성경을 배움으로 말미암아 심령의 구원을 받는 기쁨을 누리는 동시에, 유학자, 한학자들이 천시하던 한글을 깨치어, 처음으로 글눈을 뜨고서 지식과 교리에 점하는 신생의 기쁨을 체험하게 되니, 여기에 비로소 어리석은 백성들이 날로 쓰기에 편하게 하고자 한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의 거룩한 뜻이 실현되게 된 것이다.”

일제는 한국을 영구 식민지화하기 위해 초기부터 줄기차게 일본어 상용을 강조하면서 한글 사용을 억압하고 한글 말살 정책을 폈지만 한글 성경과 찬송가 사용만은 용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선교사들이 제기한 문제였고 세계적인 종교인 기독교를 탄압한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취해진 어쩔 수 없는 정책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기독교가 성경과 찬송을 통해서 한글을 유지했다는 또 다른 성과라고 하겠다. 한글전용 정책이 한국교회 성장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는 선교사 게일이 언급한 것같이 하나님께서 ‘복음을 위해 준비해 두신’(praeparatio evangelica) 귀한 선물이었다.

오늘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문맹률이 적은 이유는 두말 할 필요 없이 배우기 쉽고, 읽기 쉽고, 쓰기 쉬운 한글 덕이다. 그런데 이 귀한 한글을 일반화, 보편화, 대중화 하는데 초기 한국 교회가 이룬 공로는 그 어느 기관이나 집단보다 크다. 소위 식자층이라는 사대부들은 한문만을 숭상하고, 한글을 무시, 천대했지만, 선교사들의 생각은 달랐다. 한자에 비해 쉬운 한글을 적극 보급함으로써 한글 일반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 공헌이야말로 한국 근대화에 초석이 된 요인 중 하나다. 따라서 선교사들의 한글 보편화 작업은 아무리 칭찬해도 과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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