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효 목사
장재효 목사(서울 성은교회)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택하시고 세우심을 받은 모세가 애굽에서 200여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내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직접 역사하시고 이적기사를 나타내 보이셔서 모든 해방의 역사가 가능케 하셨습니다.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게 하신 일과 사막에서 여러 가지 초자연적인 이적기사로 하나님이 구원시킬 자에게는 구원의 가능성을 더욱 확증하셨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어서 멸망을 고집하고 자청하는 사람들에게는 광야에 다 엎어져 멸망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본문은 남아있는 이스라엘에게 모세가 목자의 심정에서 호소하고 권면한 내용입니다. 애굽을 떠나면서부터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는 오늘날 교회생활과 같다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 자신들의 신앙에 바른 중생과 성장, 결실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본문 1절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전제조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하나님 말씀에 절대로 복종할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영원한 구원의 보장과 기대가 확실한 사람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적으로 하나님 앞에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마음이 열린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더 많은 것을 기대하는 목적일 것입니다. 이것은 회개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회개함으로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가로막힌 장벽이 허물어지고 개통되어진 다음에 하나님의 필요성을 내가 절감하는 만큼 내 마음을 하나님을 향하여 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는 갖가지 구원을 위한 은혜체험이 가능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고,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를 의식하게 되면서부터 우리는 철부지 신앙의 자리에서 철든 의리와 인격과 예절을 목적으로 하는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로 하나님을 향하게 되어집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철부지 신앙에 머물러 하나님을 향하여 기대만 걸고 하나님이 기대거시지 못하도록 하는 입장은 오히려 자신이 하나님을 향한 기대마저도 무산되는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부담을 가지라고 주시는 명령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6:63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하셨습니다. 우리의 더 나은 결실과 소망을 위하여 주시는 복된 말씀으로 듣는 귀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범한 인생은 다 멸망하고 실패했지만 하나님이 명령하신 말씀에 기대와 의지를 가지고 복종하며 순종한 사람들은 영생을 보장받은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시면서 애굽에서 행하신 이적과 기사들, 그리고 홍해를 갈라 이스라엘을 건너게 하신 후 뒤따르던 모든 애굽인들을 그 물로 덮어 멸하신 일은 구원의 대상과 멸망의 대상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무서운 엄격하신 위력을 언제든지 잊지 않는 지혜가 있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은 징계를 쉬지 않습니다. 이 징계라는 말은 교육을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2:5~6에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이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했지만 징계를 통하여 영원히 멸망시키는 대상도 있습니다. 이것은 교훈의 성과, 회복의 모습을 보시기 위해 여러 차례 징계를 하셨으나 끝내 그 징계의 결과가 하나님 기대에 어긋났다고 생각이 드실 때 마지막 징계는 유기하심으로 나타났음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보여지고 들려지는 모든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은 우리 신앙의 소망적인 발전을 위한 교훈의 목적으로 엮어져가는 일들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민수기 16장을 보면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광야에 모세와 아론의 인도를 받고 있는 이스라엘 교회 가운데서 따로 패당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 중 총회에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에 유명한 어떤 족장 이백오십 인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렸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라고 하면서 모세와 아론의 지도자적 위치를 질투하고 시기하며 원망하고 불평하는 일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수기 16:13-14에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과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한다며 모세의 말에 순종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애굽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가나안 땅을 향해 가고 있음에도 가나안 땅을 소망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저 대열에 끼여 행보는 같이 하고 있었지만 애굽에서의 삶을 추억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고 하나님이 세우신 모세를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의 명령을 따르지 않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 하십니다. 그러나,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이여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여 한 사람이 범죄하였거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나이까” 했고 하나님은 온 이스라엘 회중으로 하여금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의 주변에서 떠나라 하셨고 모세는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이 모든 일을 행케 하신 것이요 나의 임의로 함이 아닌 줄을 이 일로 인하여 알리라 곧 이 사람들의 죽음이 모든 사람과 일반이요 그들의 당하는 벌이 모든 사람의 당하는 벌과 일반이면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심이 아니어니와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으로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속을 삼켜 산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했습니다. 모세가 이 모든 말을 마치는 동시에 그들의 밑의 땅이 갈라지고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 가속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 물건을 삼켰고 그들과 그 모든 소속이 산채로 음부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합하니 그들이 총회 중에서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선동된 250명도 하나님으로부터 불이 나와 소멸하였습니다.

한 울타리 안에 거하지만 영적으로 그들은 하나님께 속하지 못했고 하나님이 세워 앞장 세우신 모세와는 상관없이 지난 날 애굽에서의 생활과 그곳으로 돌아가려는 꿈으로만 가득 차 있었기에 가나안에 대한 기대는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가나안에 다가갈수록 그들의 불만은 커져갔고 스스로 멸망을 자초한 것입니다.

“또 너희가 이곳에 이르기까지 광야에서 너희에게 행하신 일과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에게 하신 일 곧 온 이스라엘의 한가운데서 땅으로 입을 열어서 그들과 그 가족과 그 장막과 그를 따르는 모든 생물을 삼키게 하신 일이라 너희가 여호와의 행하신 이 모든 큰 일을 목도”하게 하신 이유는 살아남은 자들이 하나님 말씀을 의지하고 내세의 신령한 소망을 목적으로 신실된 믿음으로 살기를 기대하시어 다른 사람들을 징계하시고 형벌을 내려 백성들 중에서 제거하심으로 경고하시는 교훈의 본을 세워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명령을 다 지키면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을 것이며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그와 그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요한복음 14:21에도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하나님이 주시려고 준비하신 땅은 그동안 살아왔던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애굽은 기름진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어갈 가나안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다고 하십니다. 그곳에서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만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조건으로 보면 애굽은 참으로 살기 좋은 조건이고 가나안은 메마르고 어려운 형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가나안의 조건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은 언제나 이른 비(9~10월에 내리는 비)와 늦은 비(3~4월에 내리는 비)를 하나님 앞에 간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애타게 믿고 기도하며 믿음으로만 살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영적인 소망의 온전한 결실을 위하여 육신의 생계조건을 가지고 조절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로 깨달을 수 있기 바랍니다.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조건을 좇아 살아가지 말고 항상 지켜 살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은혜 가운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