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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일런스>, 하나님의 침묵과 우리의 응답

기독일보 이대웅 기자

입력 Feb 27, 2017 09:03 AM P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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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가 구원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일본인 신도 모키치(오른쪽)를 격려하는 로드리게스 신부.

일본인 신도 모키치(오른쪽)를 격려하는 로드리게스 신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2년 전 여름, 일본 규슈 나가사키 일대를 방문한 적이 있다. 짧은 시간 둘러봤지만, 나가사키는 말 그대로 '순교의 땅'이었다. 1597년 외국인 6명과 일본인 20명이 교토에서 33일간 630km를 끌려와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던 곳에 세워진 26성인 순교지를 비롯해, 나가사키 땅 곳곳에 순교지 터와 당시 순교자들의 묘지가 산재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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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운젠(雲仙) 지역은 일본에서 유명한 화산지대이자 온천 지역이었다. 특히 '운젠 지옥'이라 불리는 온천 지대에서는 지금도 검게 달궈진 땅에서 펄펄 끓는 온천물이 흘러나오고 있다.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르고, 수증기 때문에 안개로 자욱해서 정말 '지옥'에 온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곳에는 420년 전 가톨릭 신자들이 끓는 온천물로 고문을 받았던 흔적들도 남아 있다.

기치지로(오른쪽)와 로드리게스 신부.
기치지로(오른쪽)와 로드리게스 신부.

한때 성도가 30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부흥했던 일본에서의 가톨릭 선교는, 끓는 온천물에 녹아내리듯 사무라이 정권의 혹독한 박해로 인해 완전히 쪼그라들고 말았다. 펄펄 끓는 온천 구덩이에 자식이 던져지기도 했고, 십자가에 매달려 바닷물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버티다 처절하게 죽어가기도 했다.

나가사키현에서는 이러한 순교의 흔적들을 '관광상품화'해 놓았다. 26성인 순교지 외에도, 성이 있는 나가사키현 곳곳에 관련 유품들을 모아 전시하며 신자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찾으니 그랬겠지만, 자신의 선조들이 저질렀던 '만행'을 기념관까지 세워서 친절하게 안내하는 모습이 몹시도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위안부 할머니들 문제와 관련된 일본의 태도가 오버랩되기도 했다.

잘 알려진 대로, 영화 <사일런스>는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을 원작으로 한다. 당시의 무시무시한 핍박을 온 몸으로 받아내면서 고뇌하고 절규하는, 포르투갈 신부 2명과 일본인 신도들의 이야기이다.

원작 소설과 같이, 영화에서도 신앙을 끝까지 지키려 하면 일본인 신자들이 고통 속에 죽어가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다. 무엇보다 영화 포스터 카피처럼 '고난의 순간에, 당신(하나님)은 왜 침묵하십니까?'를 깊이 묻고 답하며 성찰하는 영화이다.

붙잡혀 가는 페레이라 신부.
붙잡혀 가는 페레이라 신부.

페레이라 신부 역을 맡은 리암 니슨은 지난해 한국 영화 <인천상륙작전>에서 맥아더 장군 역을 맡으면서 더욱 친숙해진 인물로, 영화 <미션>에도 출연했었다. 로드리게스(로드리고) 신부 역의 신예 앤드류 가필드와 가루프(가르페) 신부 역의 아담 드라이버의 연기도 훌륭하다.

마치 유혹자 사탄인 듯 신부의 신앙을 조롱하고 배교를 촉구하는 통역관 역의 아사노 타다노부와 이노우에 부교 역의 이세이 오가타, 끝까지 신앙을 지키는 신도 모키치 역의 츠카모토 신야와 모니카 역의 고마츠 나나 등 일본 명배우들을 만나는 새로움도 있다. 스콜세지 감독은 스태프들과 복장부터 배경, 자연환경까지 17세기 일본 나가사키 지역을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일본으로 선교를 떠난 '스승' 페레이라 신부의 잠적 또는 배교 소식을 들은 로드리게스와 가루프 신부는, 스승의 행방을 찾고 복음을 전파하며 신도들을 돌보기 위해,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목숨을 걸고 '어둠의 땅' 일본에 잠입한다. 일본 땅은 추방령 등으로 이미 신부가 사라져 버린 곳이었다.

일본에서의 가루프 신부.
일본에서의 가루프 신부.

그 땅에 남아있는 '유일한 신부'가 된 로드리고와 가루프는 고통과 두려움에 휩싸인 신도들을 돌보지만, 곧 따로 떨어져 붙잡힌다. 그들의 목에는 '엽전 300냥'이 걸려 있었다. 마치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나 배신한 가룟 유다 같은 인물인 기치지로의 역할이 컸다. 이후에는 로드리게스 신부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나님의 침묵'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신앙인으로서 '나의 응답'에 대한 부분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영화다. '내가 만약 로드리게스 신부였다면, 내가 만약 페레이라 신부였다면, 내가 만약 기치지로였다면, 내가 일본인 신도였다면,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하는 물음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나질 않았다.

영화 내내 떠오른 그 의문들은 결국 '무엇이 진정한 신앙인가'로 모아진다. 일본인 관리들과 페레이라는 로드리게스 신부에게 "신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을 구하게", "자네만이 저들의 고통을 끝낼 수 있다", "저들에게 고통을 줄 권리가 있나?", "(후미에를 밟는 것은) 형식일 뿐"이라고, 오히려 '구원'의 의미를 거꾸로 이야기한다. 고뇌하는 로드리게스 신부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밟아라, 성화를 밟아라. 나는 너희들에게 밟히기 위해 존재하느니라. 밟는 너의 발이 아플 것이니, 그 아픔만으로 충분하느니라."

배교 때문에 고뇌하는 로드리게스(왼쪽)와 그를 설득하는 페레이라 신부.
배교 때문에 고뇌하는 로드리게스(왼쪽)와 그를 설득하는 페레이라 신부.

'나의 배교로 일본인 신도들을 살리는 것은 인본주의적인 발상인가?', '잠깐의 거짓 행동 후 마음으로 신앙을 계속 간직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내면의 갈등들은 초대교회 성도들부터 가깝게는 일제시대 신사참배의 기로에 선 한국교회 초기 성도들, 소소하게는 직장 회식 중 '술 한 잔'의 기로에 선 '출근하는 그리스도인'들까지,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법한 것들이다.

'신앙을 외부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문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은 '내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인데, 이를 꼭 외부적으로 표출해야 하느냐에 대한 것이다. 이는 '구원의 기쁨'으로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것과는 별개의 이야기이다.

특히 영화 속 신도들은 가톨릭으로, 그들이 밟기를 거부했던 후미에(그리스도상을 새긴 널판)나 품고 있던 작은 십자가 등은 개신교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굳이 필요없는 것들이다. 일본인 신도들은 신앙적으로 큰 결단이나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후미에를 밟지 못하고 마리아상에 침을 뱉지 않음으로써 순교한다. 물론 일제시대 신사참배 거부와 같이, 그러한 행동들은 다 신앙에서 나왔으리라 믿어본다.

이노우에 부교.
이노우에 부교.

영화에서는 가톨릭 신앙이 자칫하면 '우상숭배'로 빠질 위험들도 감지된다. 또 '만인제사장'인 개신교와 달리, 천주교 신자들은 고해성사를 주관하고 말씀을 강론하는 신부(파드레) 없이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해 나가기 어렵다. 일본인 신도들은 '구세주'를 본 듯 연신 '파드레'를 외치며 신부들을 맞아들인다. 신부를 만나고서야 '미뤄뒀던' 고해성사를 시작한다. 신부가 '후미에는 밟아도 된다'고 하긴 했지만, 예수님 얼굴은 밟았으나 마리아상에는 침을 뱉지 못하는 모습도 약간 의아했다.

어쩌면 이는 이노우에 부교와 통역관이 표현한 '일본 땅에서 변질된 기독교'의 일면일 수 있다. 일본 땅을 '늪'이라 표현하면서, 기독교는 일본에 맞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씁쓸한 것은 이들의 말대로, 400여 년 전의 대박해 이후 아직도 일본의 '기독교 부흥'이 찾아오지 못했다는 점이다.

'불온한 감독'이라는 평을 익히 들었기에, 원작 소설을 얼마나 '훼손했을지' 그리고 기독교 신앙을 어느 만큼 '변질시켰을지' 눈을 부릅뜨고 감시했다. 생각보다 그런 부분은 많지 않은 듯 했다. 이미 원작 자체가 신앙의 참 의미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으므로, 이를 충실히 전달만 해도 충분했을 터.

 

신부를 맞이하는 기치지로(가운데)와 토모기 마을 사람들.
신부를 맞이하는 기치지로(가운데)와 토모기 마을 사람들.

풀벌레 소리가 작아지다 완전히 정적이 흐르며 시작하는 영화는 배교의 장면에선 닭이 울고, 흐릿하고 희뿌연 장면들을 자주 사용한다. 오랜 기간 여행으로 굶주렸던 신부들이 성호를 긋지도 않고 음식을 먹다 일본인 신도들의 눈치를 보는 장면처럼 마냥 무겁지만은 않다. 우리 사회와 교회에 남아있는 친일 청산이나 신사참배 관련자들 문제와도 연관지어 생각해 볼 만하다.

 

스테디셀러인 원작을 읽은 이들이 많기에 '결론을 이미 알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겠지만, 영화라는 매체가 주는 강한 인상이 있어 관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신앙적으로 이런 극한 상황에 내몰릴 일이 많지 않은 우리의 일상임을 감안하면, 영화를 통한 간접경험은 적지 않은 의미로 다가온다. "당신의 침묵의 무게가 두렵습니다", "저희는 허공에 기도하는 것입니까?", "순교가 구원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들의 비명도 들으셨을까요?" 등의 대사들도 마음에 깊이 남는다.

원작을 읽지 않고 영화를 보게 된다면, 꼭 원작을 찾아 읽기를 권한다. 신앙에 대해 다소 피상적으로 접근한 부분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원작에는 그런 부분들이 더 자세하게 표현돼 있다. 영화를 통해 느꼈던 감동이 배가될 것이다. 이와 별도로 엔도 슈사쿠가 <침묵> 집필 20여 년 후 쓴 <침묵의 소리>에서는 소설에 관한 그의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다.

능수능란하게 신부를 다루는 통역관.
능수능란하게 신부를 다루는 통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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