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설교학을 담당하는 김창훈 박사가 개혁신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이다. 총 두 번에 걸쳐 연재한다. 

1 들어가는 글

익히 알려져 있는 것처럼,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교회' 또는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는 그렇게 좋지 않다. 여러 조사들을 살펴보면, 교회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만드는 대표적인 요인 가운데 하나가 헌금 문제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한국교회의 심각한 위기는 헌금 문제와도 깊이 맞물려 있는 것이다.

신앙이 없는 일반인들 뿐 아니라 교회를 출석하는 많은 성도들도 헌금 설교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헌금과 관련하여 성도들이 시험에 들어 교회를 옮기거나, 아예 신앙생활을 그만 두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헌금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와 부작용 때문에 일반적으로 헌금설교는 은혜가 되지 않는 설교, 교회 성장에 방해가 되는 설교 또는 바람직하지 못한 설교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설교자들이 헌금 설교를 꺼리는 경향이 있고, 심지어 일부 목회자는 헌금에 대해 일절 가르치거나 설교하지 않기도 한다. 그렇다면 헌금에 대한 설교는 진정 해서는 안 될 설교, 또는 하지 말아야 할 설교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필자는 한국 교회의 회복을 위해서 바르고 온전한 헌금 설교의 회복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본고에서는 왜 헌금 설교가 필요한지 그리고 '바르고 온전하며 효과적이며 설득력 있는' 헌금 설교를 위해 무슨 내용으로 어떻게 설교를 해야 할 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2 헌금 설교의 필요성

헌금 설교와 관련하여 많은 오해와 부작용이 있지만, 헌금 설교를 반드시 해야 할 근거와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성경에 헌금(돈)에 대한 많은 말씀들이 있다. 구약을 보면헌금(헌물 또는 제물)에 대한 많은 교훈들과 명령들과 지침들이 있다. 대표적인 한 가지 예를 들면, 첫 번째 살인 사건의 시발점이 된 가인과 아벨의 예배에서,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고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던 핵심 요인은 예물(헌금 또는 헌물) 이었다(참고. 창 4:3-4; 히11:4). 또한 십일조, 생명의 속전, 첫 열매, 5대 제사를 위한 제물, 성막과 성전 건축을 위한 예물 등에 대한 명령과 구체적인 지침들이 있다.

신약성경에도 예수님께서 두 엽돈을 헌금한 과부를 칭찬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고,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헌금 이야기 그리고 선교와 구제 사역을 위한 바울의 헌금에 대한 교훈들과 지침들이 있다. 설교의 근거와 내용의 중심이 성경이어야 함을 인정한다면, 이와 같이 헌금과 관련된 사건들의 기록과 헌금에 대한 직접적인 지침들이 성경에 있는데, 설교자(목회자)가 헌금에 대해 설교하지 않은 것은 일종의 직무 유기요 책임 회피이다.

다음으로, 헌금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극복하기 위해 헌금에 대한 바른 가르침이 요구된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헌금 문제는 오늘날 한국 교회가 지탄의 대상이 되고 부정적 이미지를 주게 된 대표적인 요인 가운데 하나이다. 물론 비기독교인들의 기독교와 헌금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목회자(설교자)들의 헌금에 대한 잘못된 설교(가르침)도 기독교와 헌금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낳게 한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실제로 일부 목회자(설교자)들은 겁을 주면서 헌금을 강요하거나, 기복주의적인 측면에서 헌금을 부추기는 설교를 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교회에서는 헌금을 위해 특별한 집회를 열고 특별한 강사를 초청해서 인위적으로 헌금을 쥐어 짜 내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경의 교훈대로 헌금에 대해 바르게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과 헌금의 바른 이해와 회복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세 번째로 구별된 대안 공동체로서 교회의 정체성과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헌금(돈) 설교는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성경 전체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과 교회에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은 '거룩함' 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는 세상과는 구별된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야 하고, 그러한 구별된 모습을 통해 구별되신 하나님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그런데 성경은 구별된 공동체를 세워가는 과정에서 헌금(물질)은 우선적으로 중요한 문제임을 교훈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여호수아 7장과 사도행전 2-5장에 기록되어 있다. 여호수아 7장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아이성에서의 전쟁을 기록한다. 그렇게 강하지 않은 '아이' 와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아간의 탐욕으로 말미암아 물질에 관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기 처절하게 패배를 경험한다.

또한 신약 시대에 오순절 성령 강림 후에 초대 교회 공동체가 형성되었는데, 그들은 공동 소유의 형식으로 각자의 소유물을 팔아서 필요대로 나누어 가졌다(행 2:43-46; 4:32-35). 그 과정에서 바나바라는 별명을 가진 요셉이 자기의 밭을 팔아 하나님께 바치기도 하였다(행 4:36-37). 그러한 물질에 대한 구별된 모습은 믿는 사람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였는데, 그 과정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하나님께 재산을 다 드리지 않고 성령을 속이면서 일부를 숨김으로 죽임을 당하였다(행 5:1-11).

이 두 사건은 모두 하나님의 구별된 공동체가 형성되는 시점에 발생하였다. 두 사건이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물질(헌금) 문제는 구별된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를 세우는데 참으로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결국 교회가 구별된 대안 공동체로 세워지고 그 역할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 헌금(물질)에 대한 바른 교훈과 지침들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네 번째로, 성도들의 신앙과 삶을 바로 인도하기 위해 헌금(돈) 설교가 필요하다. 성경에는 신앙과 돈(물질)의 관련성에 대한 많은 말씀들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 6:24)"고 단호하게 말씀하였고, 끝없는 탐욕으로 물질을 모으는 것과 관련하여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눅 12:20)"고 경고하셨다.

또한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마 19:16-22)"고 한 부자 청년에게 말씀하심으로 물질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음도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도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딤전 6:10)"고 하셨고, 많은 사람들이 배를 자기의 신으로 삼고 있다(빌 3:19)고 경고함으로 돈(물질)에 대한 경각심을 주었다.

오늘날도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돈 문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기도 하고, 돈 때문에 신앙 생활에 있어서 시험에 드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John Wesley는 돈 지갑의 회개 없는 회개는 진정한 회개가 아니라고 하였고, Martin Luther도 진정한 신자가 되기 위해 세 가지 회심이 필요한데 그것은 머리와 가슴과 돈 지갑의 회심이라고 하였다.

물질관에 대한 바른 정립 그리고 바른 헌금 생활 없이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신앙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헌금(돈)에 대해 설교하지 않는 것은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를 방치하는 것이 된다.

이와 같이 헌금(돈) 설교는 교회의 정체성과 본질 회복을 위해, 구별된 공동체로서 교회의 역할과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그리고 성도들의 온전한 신앙생활을 위해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헌금 문제와 관련한 그렇게 많은 교훈들과 명령들과 지침들을 주셨다. 그러면 이제 바르고 효과적인 헌금 설교를 위해 필요한 지침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3 헌금 설교의 내용

3.1 헌금 설교의 유의점

무엇보다도 먼저 바른 헌금 설교를 위해 설교자가 유의해야 하고 극복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그것은 기복주의, 세속화(물량주의) 그리고 이교화이다. 이러한 것들은 한국 교회 전체가 안고 있고 해결해야 할 대표적인 문제들이다.

3.1.1 기복주의

그동안 한국 교회 전체와 관련하여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대표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는 소위 '기복주의' 이다. 기복주의란 세상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소망하고 추구하는 '복' 을 신앙 생활의 최고의 목표와 관심으로 삼는 것이다. 이를테면, 신앙이 세상의 복을 얻는 수단과 방법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물론 성경에서도 '복' 은 중요한 개념이고, 복된 삶을 강조한다(요 10:10). 문제는 많은 성도들이 생각하고 추구하는 복의 개념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복의 개념과 다르다는데 있다.

시편 1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묵상하고 순종하는 것이 복이라고 하였고, 산상 수훈에서는 심령이 가난하고 온유하고 주님을 위해서 핍박받는 것 등이 복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그러한 성경에서 말씀하는 복보다는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자녀 성공, 물질적 부요, 세상의 명예와 출세 등을 신앙 생활의 결과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복인 것처럼 강조하고, 또한 그러한 복을 위해서 여러 가지 신앙의 활동들을 강요하고 있다.

이 기복주의적 신앙이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헌금 생활이다. 다시 말해, 세상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소망하고 추구하는 복이 헌금생활의 가장 중요한 동기요 목표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기복주의적 헌금 생활을 목회자(설교자)가 유도하거나 부추기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설교자들은 헌금과 그러한 복들을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연결해서 설교하거나, 그러한 결과를 예화로 사용하거나, 또는 그러한 복을 받은 사람에게 간증을 시키기도 한다. 또한 헌금 봉헌 시간에 헌금한 사람의 이름을 호명하면서 헌금 내용을 일일이 불러주며, 헌금한 성도들에게 자녀와 물질과 명예의 복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기도 한다.

교인들 가운데는 자신의 헌금에 대해 혹시 목회자가 호명하지 않거나, 다른 이들의 기도보다 짧거나 간절함이 없으면 불만족해 하거나 심지어 시험에 들기도 한다.

물론 세상적인 복과 헌금 생활이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헌금은 우선적으로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고, 또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도 주님께서 주신 것으로 인정하는 믿음과 감사의 표현이어야 한다. 역대상 29:11-14에서의 다윗의 고백과 감사는 헌금을 드리는 자가 가져야 할 기본 자세이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3.1.2 세속화(물량주의)

한국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교회의 '세속화'이다. 교회의 세속화는 교회와 세상의 구별이 점점 없어져 가고, 교회가 세상의 기관들과 점점 같아져 가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의 원리가 교회에 그대로 유입된 대표적인 예가 '물량주의' 또는 '성공지상주의' 이다.

세상의 기업들이 성공하고 이윤을 높이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처럼, 많은 교회가 양적 확장(큰 교회당, 많은 성도, 많은 예산)을 교회의 최고 목표로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지역 교회들이 주님을 머리로 한 지체로서 서로 협력하고 세워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경쟁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헌금과 관련해서도 세속화(물량주의)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의 우선적 관심 가운데 하나가 더 많은 교회 재정의 확보이다. 그래서 성경적 근거도 없고,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도 없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헌금 종류를 설정하고 강요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부 목회자들은 헌금 액수와 신앙을 비례적으로 연결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헌금을 많이 하면 좋은 신앙의 사람들로 간주하고 칭찬하며, 우선적으로 교회 직분을 주고 중직을 맡기기도 한다.

그것은 참으로 비성경적인 판단이며 조치가 아닐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결코 액수의 많고 적음에 따라 헌금의 가치를 평가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자신이 가진 것에서 최선을 다해 드리는 것이 최고의 헌금생활이고, 그것을 또한 주님께서는 진정 기쁘게 받으신다. 그래서 구약에서도 자신의 형편에 맞게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수 있도록 다양한 제물들을 제시하였고, 예수님께서도 두 엽돈을 헌금하는 과부를 모든 사람보다 많이 헌금하였다고 칭찬하셨다.

3.1.3 이교화

이교화 역시 오늘날 한국 교회의 대표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이교 화란 기독교와 다른 종교와의 구분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교회의 이교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는 기적이나 신유를 최우선시하는 신앙이다. 물론 예수 안에서 얼마든지 기적적인 일들, 병 고침이 일어날 수 있다. 아니 당연히 일어나야 한다. 인간의 상식을 초월하고 과학과 의학이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체험함으로 우리의 신앙이 더욱 깊어지고 하나님을 더욱 감격적으로 섬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신앙생활의 본질과 핵심은 아니다. 신앙의 최우선적 본질은 십자가에 못 박힌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고, 그 주님으로 인해 세상이 줄 수 없는 즐거움을 경험하고 영광스러운 나라를 소망하며 여러 가지 어려움 가운데서도 주님 때문에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기적적인 일들과 병 고침 등 현실적인 것에 목숨을 걸고 그러한 문제가 해결된다고만 하면 이단이라도 상관하지 않고 찾아다니고, 그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신앙을 버리기도 한다. 이것은 범신론적인 샤머니즘이 추구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헌금에 있어서도 이교화의 영향은 크다. 헌금을 마치 무당이나 점쟁이에게 주는 복채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적 효험이나 효능을 경험하기 위해, 소원이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또는 삶의 불확실성이나 저주와 불행을 막는 차원에서 헌금하는 것이다.

또한 제대로 헌금하지 않으면 신의 진노와 저주가 임할까봐 의무적으로 두려움 가운데서 헌금하기도 한다. 설교자(목회자)들도 이렇게 샤머니즘 또는 이교에 영향을 받은 성도들의 심리를 이용하기도 하고, 성도들에게 그러한 이교적인 생각들을 부추기기도 한다. 하지만 성경은 결코 그렇게 가르치지 않고, 그러한 헌금을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기뻐하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헌금의 본질이 기쁨과 감사와 자원함이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살펴본대로 한국 교회의 헌금과 관련된 문제들은 한국 교회전체의 문제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고 바른 헌금 설교를 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설교자(목회자)들의 기독교의 정체성과 복음의 본질에 대한 바르고 분명한 이해가 절실히 요구된다.

왜냐하면 헌금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들과 문제들이 발생한 우선적 책임이 목회자(설교자)에게 있고, 또한 바른 헌금 설교를 통해 한국 교회의 이미지 쇄신과 회복을 일으켜야 할 주된 책임도 역시 설교자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결국 바른 헌금 설교를 위해 설교자(목회자)들은 이러한 한국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통렬한 자기 반성과 그 문제들을 극복하고자 하는 단호한 결단과 각오가 있어야 할 것이다. (계속)

요약정리: 김순정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