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효 목사
장재효 목사(서울 성은교회)

본문은 예수님이 성전에서 헌금하는 것을 보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부자들은 자기의 부한 것을 자랑하기 위해 돈 주머니를 왼손으로 추켜들고 오른손을 주머니 안에 넣고 휘휘 저으면서 돈이 많이 있음을 과시하고 그 중에 얼마를 집어 연보 궤에 넣습니다.

그런데 그 틈새에서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금화도 은전도 아닌 동전, 구리로 만든 단위가 가장 낮은 돈 두 렙돈을 넣었습니다.

이 과부는 자신이 가진 것의 전부를 넣은 것입니다. 그것도 참으로 죄송한 마음으로 아주 다소곳하게 얼굴 들기도 어려워 민망해하는 모습을 예수님이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가 얼마 되지는 않지만 아주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하신 말씀이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이 과부는 가치 단위적으로 생각하면 어느 누구보다도 보잘 것 없고 작은 것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이 평가하시는 헌금 가치의 기준이 금액의 단위에 있지 않음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4절에서 그 과부가 생활비 전부를 드렸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과부의 과거가 어떤 생활을 해왔고 지금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단지 이 가난한 과부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라고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이처럼 말씀하신 것을 보아 이 과부는 지금까지 살아오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믿음이 있었고, 이제부터는 아무것도 없지만 굶어 죽을지에 대한 걱정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 책임져주실 것이라는 믿어지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과부는 남은 생활비 모두를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선물을 주고 받을 때도 그 선물이 얼마나 비싸고 싼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선물 속에 관심과 사랑이 얼마나 스며들어 있는지가 중요한 것처럼 그것이 가장 소중한 가치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물질 기준의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지극정성의 가치 기준이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돈 많은 사람이 그 많은 것 중에 일부를 드린 것과, 가진 것은 별로 없지만 자기 가진 것의 전부를 드린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 과부의 믿음의 정성이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가장 많이 드린 것으로 평가되신 것입니다.

미국 텍사스 델라스 지역으로 선교를 갔을 때 초대받아 간 곳에서 하루를 묵으면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나를 초대한 목사님은 하루에 2천불 이상을 버신다고 합니다. 한 달에 20일정도 일을 하면 4만 불을 버는 셈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돈으로 약 5천만원정도 되는 돈입니다. 이분들이 지금은 연세가 많아서 60세가 넘으셨습니다.

이 목사님 내외가 한 35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왔는데 두 분이서 이백 불을 가지고 가셨답니다. 그런데 이 내외는 이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답니다. 이분들이 그때는 집사님들이었습니다. 어디 잘만한 처소도 구하지 못해서 그곳 예배당 긴 의자에서 잠을 자고 교회 화장실에서 씻으며 기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곳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부인에게 감동이 오기를 본문 말씀인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이 떠올랐습니다. ‘과연 그 과부는 모든 것을 드리고 굶어 죽었을까? 아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적극적으로 책임지시고 좋은 조건으로 살게 해주신 것이 아니겠는가!’는 생각이 들면서 이 말씀에 기대감을 가졌습니다.

이들이 미국에 와서 첫 주일을 맞이하면서 그 부인이 남편에게 하나님 앞에 드릴 헌금을 의논했더니 남편은 부인에게 알아서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중에 가난한 과부가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드려서 그 사람의 생활을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설교가 생각이 났다면서 가진 돈 이백 불을 전부 감사헌금으로 드리자고 했습니다. 그 당시 이백 불은 적은 돈은 아니었습니다. 이분들이 각자의 이름으로 백 불씩 헌금을 하니 교회에서는 많은 돈을 가지고 이민 온 사람들로 알고 교회 장로님들이 이분들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리고 어디 사냐고 물으니 교회에서 산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니 믿음이 대단해서 아버지 집을 떠날 줄 모르는 사람들로 마음대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집으로 심방을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하니 “저희들은 집이 없습니다. 이민올 때 가지고 온 것도 없어서 아버지 집에서 머무르고 있습니다”했더니 금세 인상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았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더 이상 교회에 있으면 안될 것 같은 표정을 보고는 다음 날부터 열심히 일자리를 찾아 다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돌아다녀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또 밤을 맞이합니다. 결국 갈 곳이 없어 다시 그 교회로 갔는데 다행히 문이 잠겨있지 않아 하나님께 정말 감사를 드렸답니다. 하룻밤 쉴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놓으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해서 눈물을 흘리며 감사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일거리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한 신발 수리하는 가게에 들어가서 일을 배워보고 싶다고 하며 서투른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가게주인이 장로님이셨습니다. 사정이 딱해서 함께 일하자고 하며 한 달에 돈 칠백 불을 주었는데 그 당시 방세는 천 이백 불은 줘야했기 때문에 당분간은 교회에서 기거할 생각을 했습니다. 부인은 부인대로 한국인 식당에 가서 일해주고 사백 불 정도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 집사님은 믿음이 좋아서 항상 일을 하면서 찬양을 했고 일에 열심을 다하니 4년이 지난 뒤에는 일류 기술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주인이 다른 곳으로 돈을 벌러 가야하니 이 가게를 맡아 운영하고 한 달에 얼마씩만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이 얼마나 이 일을 겸손하고 성실하게 수행했던지 한 달에 4일정도만 일하면 보내줄 돈은 다 마련되고 나머지는 모두 그 집사님의 수입이 되었습니다. 이제 직원들도 둘 정도로 가게가 번창해지자 부인이 신학교를 가야할 때가 되었다고 해서 신학을 하고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한 교회를 목회하는 것에 뜻을 두지 않고 세계선교를 위해 선교단체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모은 재물들을 사용하면서 남미 여러 나라, 멕시코나 미개한 나라에 열심히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애를 쓰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한인 축구회를 만들고 그 운영자금으로 매년 11만불을 보내고 있습니다.

현재 살고있는 집은 선교하시는 목사님들을 모시기 위해서 구입한 집이라고 하며 하나님은 온전한 믿음을 기대하시더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분들이 돈에 대한 기대감을 조금이라고 가지고 돈에 연연해하는 모습을 보일 때면 하나님도 인색해지셨다고 합니다. 돈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포기하고 하나님 은혜만을 믿고 내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면서 모두 드렸더니 지금과 같이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더라는 얘기도 덧붙이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물질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과소비와 사치를 일삼으며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에는 인색한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잘 사용해야 물질을 맡기신 하나님의 입장에서 신임하실 것이고 또 그 사람에 대한 기대가 새로워지는 만큼 더 많은 물질의 밑천을 맡겨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저 육신이 원하는 대로 세상 적으로 물질을 사용한다면 결국 하나님의 기대는 멀어지고 말 것이기에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 하겠습니다.

우리의 생명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살고 죽는 것도 하나님 뜻에 달린 것입니다. 그분의 마음에 감동을 드릴 수 있는 믿음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행동하는 정성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인정받으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조건으로 살리시는 은혜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 하나님께 인색하고 자신에게 후하게 살다가 점점 더 가난해지는 어리석음에 머물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두 렙돈으로 가장 많이 드린 정성이라는 예수님의 평가가 여러분 마음속에 깊은 교훈이 되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예수님께 칭찬받을 만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