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3장 1절, 책으로 읽다

 

▲맨 왼쪽부터 사도 바울, 존 스토트, 톰 라이트.
(Photo : ) ▲맨 왼쪽부터 사도 바울, 존 스토트, 톰 라이트.

 

 

최순실 게이트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 그리고 여기에 큰 역할을 한 '촛불집회'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로마서 13장'이 이슈가 됐다. 특히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는 1절을 놓고 한동안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로마 시민권자'였지만 로마 제국으로부터 '핍박'을 받는 처지였던 바울이 했던 이 발언에 대해, 여러 도서에서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존 스토트: 하나님께 순종하려, 국가에 불순종할 수 있다

 

로마서
▲존 스토트의 <로마서 강해>.

'성경 본문을 정확하게 해설하고 그것을 현대 생활에 관련시키며 읽기 쉽게 만들기 위한' IVP의 BST 성경강해 시리즈(The Bible Speaks Today)에서 이 시리즈의 편집자이기도 한 영국의 존 스토트(John Stott) 목사는 '로마서 강해'를 맡았다.

 

존 스토트는 해당 구절의 설명에 앞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로마서 12장에서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지닐 네 가지 기본적인 관계, 즉 하나님과의 관계(1-2절), 우리 자신과의 관계(3-8절), 서로와의 관계(9-16절), 원수와의 관계(17-21절)를 전개했고, 13장에서는 이에 더해 국가와의 관계(성실한 시민이 됨, 1-7절), 율법과의 관계(8-10절), 주의 재림의 날과의 관계(이미와 아직 사이의 삶, 11-14절) 등 세 가지 관계를 소개하고 있다는 것.

먼저 그는 1절의 '권세들(exousiai)'의 정체에 대해 "금세기를 통틀어 신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나뉘어 온 한 가지 논쟁"이라며 고찰을 시도한다. 일부에서 이 '권세들'에 대해 민간의 권세와 그들을 통해 역사하는 '우주적 세력'까지를 이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견해를 소개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는 이 논증을 믿지 않는다"며 '위에 있는 권세'에 대해 "국가 및 국가의 공식적 대표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존 스토트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기독교가 생겨난 이래 수십 세기에 걸쳐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킨 것으로 유명하고, 매우 단순하게 말한다면 국가가 교회를 통제한다는 '국가 만능론', 교회가 국가를 통제한다는 '신정', 국가가 교회에 호의를 베풀고 교회는 그 호의를 계속 받기 위해 국가의 편의를 도모하는 타협안인 '콘스탄틴주의', 그리고 교회와 국가가 건설적 협력 정신으로 하나님 주신 각자의 독특한 책임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동반자 관계' 등 네 가지 주요 모델이 시도돼 왔다"며 "네 번째 관계가 로마서 13장에 나오는 바울의 가르침과 가장 일치하는 듯 하다"고 말했다.

그는 "바울이 글을 쓸 당시에는 어떤 기독교적 국가도 없었다는 것을 상기할 때, 교회와 국가가 서로 다른 역할을 지니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국가 양자에 대해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말은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며 "반대로 당시의 국가는 로마나 유대 당국이었고 대체로 교회에 대해 비호의적이고 심지어 적대적이었지만, 바울은 그것을 하나님이 설립하셨다고 간주했고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에게 순종하고 그들과 협력하도록 요구하셨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존 스토트는 13장 1-2절에 나오는 권세에 대한 설명을 통해 "국가는 신적 권위를 가진 신적 기관이고, 그리스도인들은 무정부주의자나 파괴분자가 돼선 안 된다"면서도 "우리는 바울의 진술을 해석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바울의 말은 (예수님과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던) 신약 시대의 칼리쿨라, 헤롯, 네로, 도미티아누스와 같은 모든 사람 그리고 우리 시대의 히틑러, 스탈린, 아민(우간다 독재자), 사담 후세인 같은 모든 사람이 개인적으로 하나님이 정하신 사람들이고 하나님이 그들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셔야 하거나 혹은 어떠한 경우에도 그들의 권위에 저항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여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복종하라는 요구와 반역에 대한 경고는 매우 보편적 용어로 표현돼 있다"며 "이러한 이유로 그 말들은 압제적 우익 체제에 의해 마치 성경이 관원들에게 전제 정치를 개발하도록 그리고 무조건적 순종을 요구하도록 백지 위임장을 준 것처럼 끊임없이 잘못 적용돼 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존 스토트는 "우리는 국가에 대한 순종이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을 유발하기 전까지만 복종해야 한다"며 "국가가 하나님이 금하시는 것을 명하거나 하나님이 명하시는 것을 금한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명백한 의무는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저항하는 것 곧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국가에 불순종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국가의 권위에 굴복해야 하지만, 그 권위는 특별한 목적 그리고 전체주의적이지 않은 목적을 위해 주어졌다"며 "복음은 폭군과 무정부주의자 모두에게 똑같이 적대적"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로마서
▲톰 라이트의 <로마서>.

톰 라이트: 오만한 통치자들 오히려 좌천시키는 내용

NIB(the New Interpreter's Bible) 주석 시리즈 집필에 참여한 '새 관점' 신학자 톰 라이트는 <로마서>를 통해 13장 1-7절을 주해하면서 '권위 있는 자들에게 순종하라는 하나님의 요청'을 살피고 있다. 그는 "신학적 유행도 변하고, 약점이 되는 부분도 한 주해 본문에서 다른 본문으로 이동한다"며 "본문은 당시 급성장하던 황제 숭배 내부에서 설파되던 화려한 주장을 배경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바울에 따르면 통치자들은 그 자체로 신적 존재가 아니고, 그들을 세우신 장본인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그들은 이 하나님께 충성을 바쳐야 한다. 그는 "로마서 13장은 오만하고 스스로를 신격화한 통치자들을 심하게 좌천시키는 내용이며, 전체주의를 강화하기보다는 약화시키는 내용"이라며 "여기에 암묵적으로 깔린 사실은, 만약 통치자 자신들이 그들의 권한 범위 안에 있는 악한 사람들을 심판하는 직무를 받았다면 그들 자신 역시 그들을 세우신 하나님께 심판을 받으리라는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톰 라이트는 "당연히 이 본문 안에는 특정한 역사적 상황과 관련된 요소들도 발견되지만, 바울이 실제로 기록한 내용은 여전히 통치하는 권력자들에 대한 일반적 진술로 보이지 로마 혹은 현재 상황에 대한 실용적 관점에서의 평가로는 보이지 않는다"며 "비록 우리가 바울이 말하고 있는 내용을 당시 독자들이 어떻게 들었을지와 관련된 뉘앙스를 더 살리고 싶겠지만, 그래도 더 넓은 문맥을 보면 이 본문은 통치 권력에 대한 일반적 진술이자 모든 시대의 모든 합법적 권력에 적용되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저자는 해당 본문의 '오용(誤用)' 역사와 그 폐해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는 "전체주의 정부가 대륙을 황폐화시키고 민족들을 살상하고 수백만의 추종자들을 비인간화시킨(2차대전) 한 세기가 지난 후, 이 일곱 절(13장 1-7절)은 정경에서 뜯겨져 나와 비방을 당하고 그 엄청난 비극의 원인으로 지목됐다"며 "그 세대의 비평학자들 전체는 이 본문들을 갖고 그들의 사회정치학적 직관과 선입견을, 그들의 전문적 주해가로서의 위치와 결합해 바울의 등을 집고 뛰어넘어 더 높고 우월한 도덕 수준을 자랑할 수 있었다"고 촌평했다.

그러나 "성경에는 폭력적이고 자신만을 위한 목적에 이용하도록 왜곡할 수 있는, 실제로 왜곡돼 온 부분들이 많지만, 우리가 그런 본문들을 죄다 잘라내 버린다면 남아 있는 본문이 거의 없을 것"이라며 "내가 제안하려는 내용은 이 본문은 충분하게 개진된 '교회와 국가 신학(theology of Church and State)'이 아니기에, 맹비난을 받을 필요도 그럴만한 이유도 없다"고 주장했다.

톰 라이트는 '단상들'에서 "많은 사람들에게는 로마서 13장을 곧장 거부하지 않는 것이 직관에 반하는 행동으로 보일 정도로 로마서 13장은 엄청난 비난을 초래했다"며 "더구나 서구 문화의 자유주의 역사는 지난 천 년의 세월을 사회와 시민의 자유가 증대되어온 이야기로 읽고,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권력자들을 폐위시키고 새로운 자유를 발견한 이야기로 전해왔기에, 로마서 13장을 놀라운 혹은 심지어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우리가 진정한 무정부주의자가 아닌 이상, 우리는 곧 모든 사회에는 어느 정도의 규제와 질서, 어느 정도의 통치 구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할 것이고, 만약 모든 사람들이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이 질서를 지키겠다고 서명하지 않는다면 혹은 그렇지 못할 경우 그것을 지키도록 강제할 수 없다면 이 질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사실 역시 곧 인식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바울
▲서신서를 쓰는 바울(1620).

 

톰 라이트는 "간단히 말하면 로마서 13장은 그 중심에 감춰진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품고 있다"며 "예수는 주님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제자들은 그들을 다스리는 땅의 통치자들에게 복종해야 한다. 그들이 이론상으로는 어떻게든 예수의 주권에 복종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아직도 예수의 주권에 복종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권세자들은 현 세상 질서의 일부이고, 현 세상 질서도 하나님의 원래 창조에 속한 선하고 잘 짜인 구조"라며 "권세자들에게 복종하지 않는 모습은 자신이 온전한 날이 동틀 때 올 것이라고 약속된 새로운 세계에 이미 속했다고 주장하는 '과도 실현된 종말론(overrealized eschatology)의 고상한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때가 오기도 전에 이미 완전한 상태를 주장하는 것은 사실상 이원론으로 향하는 길로 접어든 것"이라고 우려했다.

마지막으로 "하지만 여기서 나라의 권세들은 엄격한 제한을 받는다. '통치자들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 존재하고, 그의 기쁨이 되기 위해 존재한다.' 다니엘서는 이 내용이 이방 세계 안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하나님의 백성은 그 결과로 생긴 윤리적 지뢰밭을 어떻게 뚫고 전진해 나가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며 "로마서 13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지상의 통치자들에게 복종해야 하는 현재의 실존과 약속된 미래의 '날' 사이의 긴장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가 악랄하고 자기 잇속만 차리며 자기 정당화만 일삼는 '정권들'의 위험성을 끔찍할 정도로 깨달았다 해서, 그와 정반대 방향에는 오류가 없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