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가수 故 신해철 씨의 곡 '민물장어의 꿈'은 이런 가사로 시작한다. 대중가요의 그것이라 무심코 흘려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인생을 돌아볼 지도 모른다. 저마다 나름대로 음미할 텐데, 신앙을 가진 당신에겐 과연 어떤 의미인가. '좁은 문' '버릴 것' '자존심'..., 아무리 생각해도 기독교와 결코 무관한 단어 같지 않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내 속에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네가 만약 외로울 때면/내가 위로해줄게/네가 만약 서러울 때면/내가 눈물이 되리'

각각 시인과촌장의 '가시나무', 윤복희 씨의 '여러분'이다. 이 두 곡 역시 '민물장어의 꿈'처럼, 한 번쯤 눈을 감고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가사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 곡들을 잘 아는 기독교인이라면 그 가사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이미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작사가의 신앙적 의도가 비교적 명확한 곡들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을 만든 윤항기 목사는 "이사야서 41장 10절을 읽고 기도하면서 쓴 곡"이라고 했었다.

신해철 씨도 천주교인으로 한 때는 신부까지 꿈꿨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가사를 붙였는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가시나무'나 '여러분'처럼, '민물장어의 꿈'의 그 가사가 기독교인들에게 '묵상'의 여지를 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굳이 교회를 다니지도 않았던 신해철 씨의 곡을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오늘날 대중가요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음에도 교회는 그런 흐름에 무관심한 것 같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이라고 전부 찬송가나 복음성가만 듣겠는가. 거리에 흐르는 그 많은 곡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귓가를 스치고, 그 가사가 뇌리에 박혀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게 요즘 세상이다. 그런 노래들의 가사가 신앙과 인생을 잠시나마 투영할 수 있는 것이라면 금상첨화이겠으나 그 반대의 경우도 부지기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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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만 기독교인이 있고 교회가 6만 개가 되는데 왜 우리나라의 4분의 1을 차지할 만큼의 문화적 저변을 갖고 있지 못한가. 왜 기독교 음반시장은 일반 음악시장의 40분의 1도 되지 않는가"(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계가 없습니다.)

기독교 음악, 교회가 원하는 것만이 전부인가?

과거 한국교회가 부흥을 경험하던 시기, 교회는 대중문화의 발원지였다. 구원 받은 성도의 춤과 노래는 세상에까지 흘러 그곳을 적셨다. '기사나무'와 '여러분'도 모두 그 때의 산물이다. 교회 안에서 그들만의 언어로 기쁨을 표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감격을 '교회 밖'에 있는 이들과 나누기 위해, 혹은 간접적으로나마 예수를 전하려 멜로디에 신앙고백적 가사를 붙였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이 어찌 남녀 사이의 달콤한 세레나데로만 그치겠는가.

하지만 갈수록 교회는 대중문화와 멀어져 갔다. 그 성장의 기운이 꺾이자 문화의 다양성과 창조성도 점점 약해졌다. 대중가요계는 말할 것도 없고, 교회 안에서조차 그 미래를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기쁨을 표현하라고 만든 찬송가를 두고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나마 존재하는 문화도 예배 등 교회적 모임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것에서 그치고 있다. 그러니 사역자들도 그런 활동과 창작에만 머문다.

'가시나무'의 가사를 쓴 시인과촌장의 멤버 하덕규 씨는 과거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1,200만 기독교인이 있고 교회가 6만 개가 되는데 왜 우리나라의 4분의 1을 차지할 만큼의 문화적 저변을 갖고 있지 못한가. 왜 기독교 음반시장은 일반 음악시장의 40분의 1도 되지 않는가"라고 안타까워했었다.

"90년대 CCM을 들으며 꿈을 키웠다"는 블랙가스펠 그룹 '헤리티지'의 멤버 김효식 씨는 "지금의 기독교 음악은 곧 교회가 원하는 음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며 "그것이 교회 안에만 갇혀있다는 느낌이다. 그저 예배 때 필요한 음악만 주로 소비되고 있다"고 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사랑받은 이유

박정관 목사(문화연구원 소금향 원장)는 "'가시나무'나 '여러분'과 같은 곡들은 CCM의 정신을 살린 굉장히 중요한 곡"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기독교 음악은 교회용 음악과 그 밖의 기독교적 가치관을 담은 음악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이라는 용어도 알고 보면 동시대의 '기독교 음악', 즉 그 영어 포현처럼 'Christian Music'을 뜻하는데, 요즘 교회가 쓰는 CCM은 'Contemporary Church Music'과 다를 게 없다는 게 박 목사의 지적이다.

박 목사는 "그러므로 CCM의 의미가 제대로 실현되려면 교회 밖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필요하다"며 "특히 비기독교인들은 직접적으로 복음을 들을 준비가 아직 안 되어 있는 이들이다. 그들에게 교회 안의 정서와 복음의 개념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하려면 일반인들도 공감할 수 있는 가사의 CCM이 많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하덕규 씨 역시 "CCM은 기독교 세계관을 담은 대중음악이다. 교회 음악만이 아니"라며 "이제 CCM이 대중가요계로 나가야 한다. 절대적인 것이 없다고 믿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절대가치를 증거하는 탁월한 노래들이 나와 대중들이 그것에 매력을 느끼고 관심을 갖게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세상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인간 존재에 대한 답을 이 노래가 주기 때문"이라며 "모든 사람들이 자기 존재에 대한 물음을 갖고 있기에 이것을 역으로 생각하면 교회가 어떤 노래를 만들어야 할지 결론이 나온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CCM의 거장이라 불리는 미국의 사역자 마이클 W. 스미스. 그의 노래는 교회 안과 밖을 가리지 않는다. 이는 그만의 독특한 경우가 아니다. 다른 많은 사역자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미국을 우리와 단순 비교할 순 없으나 추구해야 할 모델 중 하나인 것만은 틀림없다.
CCM의 거장이라 불리는 미국의 사역자 마이클 W. 스미스. 그의 노래는 교회 안과 밖을 가리지 않는다. 이는 그만의 독특한 경우가 아니다. 다른 많은 사역자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미국을 우리와 단순 비교할 순 없으나 추구해야 할 모델 중 하나인 것만은 틀림없다.

비와이의 출연과 CCM의 가능성

그렇다면 대중가요계는 어떨까. 요즘처럼 기독교의 이미지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CCM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일단은 긍정적인 신호가 있다. 최근 한 음악방송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차지한 비와이가 그 단적인 예다. 그는 자신의 신앙을 '1차적 언어'로 표현했지만 대중들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또 일반 대중가수들 중에 기독교 신앙을 가진 이들이 많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헤리티지의 김효식 씨는 "약 10년 전 대중가요 시장에 도전했던 적이 있는데, 그 때만해도 지상파 방송의 음악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추지 않으면 대중들에게 존재를 알리기가 어려웠다"며 "하지만 지금은 꼭 그렇지 않다. 매스미디어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이 있다. 대중들의 음악적 수준이 높아지고 포용력도 커졌다. 기독교 음악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시대"라고 했다.

하덕규 씨는 "CCM이 하나님을 수직적으로 찬양하는 형태로만 발전하게 되면 교회 밖의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게 된다"며 "미국의 CCM 사역자들은 그 사역의 주요 공간이 교회가 아니다. 바로 콘서트장이다. 우리도 과감하게 콘서트장으로 나와야 한다. 그러려면 음악에 좀 더 신경을 쓰고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했다.

윤항기 목사는 얼마 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이제는 교회 밖, 세상으로 노래를 가지고 나아가 어둠을 밝히고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 노래를 듣는 이들은 생각하겠죠. '목사가 되더니 은퇴 후 다시 저렇게 활발하게 활동하는구나' 하고. 그것만으로도 전도의 효과가 있을 거라고 봐요. 세상에서 노래한다고, 제가 목사가 아닌 것은 아니니까. 여전히 목사고, 이것 또한 선교니까요."

'믿음' '사랑'을 여러 번 되풀이하지 않고도 믿음이 무엇인지, 사랑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몇 마디의 깊이 있는 가사로 담담히 읊조리는 노래, 그런 곡들을 더 많이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