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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유혹 받는 지도자들, 더 높은 윤리의식 가져야

기독일보

입력 Aug 08, 2016 08:44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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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태 박사가 발표하고 있다. ⓒ용인=이대웅 기자
고경태 박사

달란트 비유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마 25장). 달란트는 탤런트(talent)인데, 우리는 일반명사로 'TV 배우'라는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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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재능은 달란트 비유처럼 어떤 사람에게는 5 달란트를, 어떤 사람에게는 2달란트를, 어떤 사람에게는 1달란트를 주신다. 하나님께서 맡은 자에게 구하는 것은 충성이다(고전 4:1-2). 5, 2, 1 달란트 받은 자에게 공통으로 충성을 요구하시고, 각자는 자기 받은 대로 충성하여 받은 대로 남기면 된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는 말은, 많이 맡은 자에게 더 많은 충성을 요구한다는 뜻이다. 영어로 표현하면 'The more and the more'가 된다. 야고보는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고 권고했다(약 3:1). 그것은 많이 맡은 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많이 맡은 자가 오히려 타락할 위험이 많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구원을 위한 교회의 지도자로 세웠는데 오히려 타락시키고 멸망하게 하는 지도자가 된다면, 그 불충(不忠)으로 인한 패악이 얼마나 클 것인가? 반면 어디서나 많이 맡은 자는 이 시대에서 존귀와 영광을 받는다. 그러나 그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더 많이 충성해야 하고 더 많이 인내해야 한다. 인간은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리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그 무게를 견딜 수 있는 능력까지 있지 않다. 그래서 능력이 부족한 자는 꾸짖지 않고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그런데 그 구함이 악할 때에는 곧 타락하게 된다. 보통 사람보다 더 심각하게 타락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이 맡은 자가 이 땅에서는 영광을 얻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도 충성된 종이라고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실상 세상의 영광과 존귀 그리고 하늘의 상급을 겸하여 얻을 자가 거의 없다.

칼빈은 성도의 고난이 복된 것은 오히려 연약함으로 죄 지을 수 없는 환경에 처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연약하고 부족함을 느끼기에 기도에 더 열심을 낸다는 것이다. 인간은 부족함이 없을 때엔 구하지 않는다. 성도는 연약하고 늘 결핍으로 필요를 구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더욱 매달리고 가까이 다가가려 애를 쓴다. 이것이 거룩하게 사는 성도의 삶이다.

연약한 자가 땅의 양식을 위해 기도하면서 근근이 살아가는 것이 가장 거룩하게 사는 방법일 수밖에 없다. 배가 부르면 메추라기를 먹은 광야 백성처럼 탐욕 덩어리로 순식간에 변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체이다.  

교회 지도자들의 부도덕 또는 범법 행위들이 자주 세상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질타를 받고 있다. 기독교 언론에선 더 자주 등장한다. 얼마 전 꽤 유명한 청소년선교단체 대표 이모 목사의 성적 일탈이 보도됐다. 폭로성 기사로 의심받을 수 있는 대목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유명세를 날리던 한 목사의 추락은 그 사람 개인적인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한국교회 전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특히 개척교회의 입장에선 매우 힘든 환경을 조성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렇지 않아도 복음전도의 열악한 환경과 함께 싸우며 근근이 버티며 몸부림을 치는 개척교회들은,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기력을 상실하게 된다.

어떤 강의에서 사랑을 강조하자, 한 사람이 '범죄한 사람도 사랑으로 포용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지만(벧전 4:8), 범행을 무시하거나 삭제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지도자의 범죄는 더 예리한 잣대로 평가해야 한다. 약자에게 엄하고 강자에게 관대한 법은 기독교 원리에 맞지 않는다. 지도자가 되었을 때는 자기 행위가 엄격하게 판단될 것을 예상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의 행동에 대한 과도한 질책과 판단을 겸허하게 수용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크고 유일한 분깃은 '하나님의 이름'이다. 달란트에 착념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맡은 복됨을 망각한다. 그리고 자기 힘의 피로로 인해, 자기 탐욕에 의해 죄의 길을 피할 수 없다. 죄라는 말을 사용하기를 꺼려하기 때문에 어떤 신문에서는 '성적 일탈'로 표현하기도 했다.

기독교는 자기 평가에서는 엄격한 잣대로 죄를 적용해야 한다. 특히 교계 지도자들은 매우 엄중한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 즉 지도자는 두 방면에서 압박을 받는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유혹을 받지만, 더 높은 윤리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많은 유혹에 더 낮은 윤리를 갖는다면, 범죄는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그리고 자기 추행을 무마하려는 시도까지 할 것이다.

주로 큰 지도자일수록 위험에 많이 노출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기에 각별히 사소한 언행에 주의를 기울이고 범죄에 걸리지 않도록 매사에 근신하며 경건의 삶을 살아야 한다. 아울러 자신에게 주어진 많은 명예와 부와 좋은 여건들이 개인의 노력만으로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늘 하나님께 안위를 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감당할 만한 크기의 사역을 짊어지는 겸손의 자리에 앉아야 한다.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깨닫고 그 선을 넘어가지 않으려는 성찰의 자세가 늘 견지돼야 한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분깃에 만족하고 작은 것에 충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분깃을 넘어 더 많은 것을 소유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자기에게 화가 된다. 자족을 고백하는 한국교회가 되어야 한다.  

/고경태 목사(Ph. D. /조직신학. 개혁신학포럼 학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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