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성결교회 김종민 목사.
(Photo : ) 애틀랜타성결교회 김종민 목사.

얼마전 까지만 해도 소위 ‘먹방’이라고 불리는 음식과 관련한 방송이 채널 전체를 뒤덮었다. 이전의 음식 방송이 어떻게 만드는지에 관해서 관심을 두었다면, 먹방은 음식 자체보다는 먹는 사람들이 중심이다.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함께 먹으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가 음식보다 더 중요하다.

음식 방송이 프로그램의 대세를 이루는 경우는 불경기때이다. 방송국은 제작비를 아껴야 하기 때문에 과도한 비용이 드는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같은 대형 프로젝트 보다는 적은 비용으로 충분한 방송 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음식 방송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

반면에 소비자들도 다른 곳에 소비할 여력이 없기 때문에 그나마 돈이 많이 들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것은 맛집을 찾아 색다른 음식을 즐기는 것이다. 덜컥 자동차나 집을 구입하거나 취미생활에 돈을 쏟아 부을 여력은 없지만 방송에 나왔던 음식점을 찾아가서 한 끼 식사를 하는 것은 비용대비 만족도가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음식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그 음식을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된다. 다음에는 완성된 음식 보다는 음식의 재료나 향신료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면 어떻게 될까? 단지 입에 맞는 음식의 즐거움을 너머 그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름은 왜 그렇게 지어졌는지, 누가 처음 이런 음식을 먹었고 우리의 식탁에까지 오르게 됐는지 궁금하게 된다. 이 관심을 좀더 세련되게 표현한다면 ‘음식의 인문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댄 주래프스키(Dan Jurafsky)의 “음식의 언어 –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인문학”은 이런 궁금증을 맛있게 해결해 주는 책이다. 스탠퍼드 대학의 언어학 교수이자 계량 언어학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그는 ‘음식’의 언어에 주목하며, 이를 탐구함으로써 인류의 역사와 세계의 문화, 사회, 경제를 다시 쓰고 인간의 심리, 행동, 욕망을 파헤치고 있다.

그는 값비싼 레스토랑의 프랑스어 메뉴 판은 그저 자신들의 높은 지위, 혹은 그 지위를 향한 열망을 표시하는 방식일 뿐이라고 말한다. 읽기도 어려운 메뉴 판은 내가 찾은 식당이 최고급 레스토랑이라는 것과 그곳에서 먹고 있는 나는 어느정도 우월한 사회적 지위와 계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고급 식당일수록 소비자의 선택은 줄어들고 주방장 추천 요리가 많으며 저가의 식당으로 내려갈수록 메뉴가 많으며 재료의 신선도를 강조한다.

음식을 설명하는 단어가 길수록 음식값은 비싸진다. 그가 동료들과 메뉴 6,500종에 실려 있는 65만가지의 요리의 가격을 조사해 보고 통계를 내어 요리를 설명하는 단어와 음식 가격과의 관계를 조사한 결과 어떤 음식을 묘사하는 데 평균 길이보다 글자 하나가 더 늘어날수록 그 음식값에 18센트가 비싸진다. 이는 만약 어떤 식당이 그 음식에 대한 설명에 다른 곳보다 세 글자가 더 많은 단어를 쓴다면 소비자는 같은 음식에 54센트를 더 내야한다는 뜻이다.

이런 이야기들뿐만 아니라 저자는 음식과 문화의 이야기를 언어를 통해서 풀어 나가고 있다. 음식을 알면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얼마전 영국은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며 EU에서 탈퇴를 결정했다. 그러나 영국의 국민 음식으로 불리는 ‘피쉬 앤 칩스’의 유래는 식초를 넣고 끌인 아랍 식 고기 스튜이다.

미국과 중국은 남중국해 영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러나 미국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음식인 토마토케첩의 어원은 진액이라는 의미의 중국어 “즙(汁)”에서 온 것이고 우리의 멸치젓과 비슷한 중국식 생선 젓갈이 변형된 소스다.

이렇게 사회와 문화 정치가 달라서 세계 곳곳에서 위기가 증가 되고 있지만 음식의 언어로 바라본 세상은 이미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웃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을 이야기 했다. 그는 이념이 아니라 전통, 문화, 종교적 차이로 국가간 무력 충돌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음식은 강력한 정치적 구호나 전쟁과 같은 폭력 없이, 수 세기 동안 서로 간의 격차를 좁히며 세계인의 식탁에서 공존하고 있다. 받아들이고, 때로는 대립하고, 타협점을 찾는 과정에서 음식은 더욱 다양해졌고 풍성해 졌다. 어쩌면 평범한 저녁 식탁이 어떤 국제 회의나 조직보다 더 우리에게 평화와 공존을 이야기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댄 주래프스키의 “음식의 언어”는 혀로 맛보는 음식에서 마음으로 맛보는 음식으로 우리의 미각을 확장시킨다. 이 책을 읽는 것은 평범한 음식의 맛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마음의 향신료를 찾아 떠나는 여행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