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진이 함께한 모습. (왼쪽부터 순서대로) 정성욱·강영안·정정호 박사와 심현찬 원장. ⓒ이대웅 기자
강사진이 함께한 모습. (왼쪽부터 순서대로) 정성욱·강영안·정정호 박사와 심현찬 원장. ⓒ이대웅 기자

'2016 서울 C. S. 루이스(Lewis) 콘퍼런스'가 '기독 지성의 역할: 루이스를 통해 본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27일 오후 서울 반포동 남서울교회(담임 화종부 목사)에서 개최됐다.

이날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인 강영안 박사(고신학원 이사장)가 '하나님과 고통: 고통을 통해서 보는 C. S. 루이스의 철학'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루이스가 <고통의 문제(The Problem of Pain)>와 <헤아려 본 슬픔(A Grief Observed)>에서 대조적인 방식으로 '고통'을 논하는 것에 주목하면서 둘을 비교했다.

C. S. 루이스는 42세 때(1940년) 고통에 대한 이론적·객관적 논의를 담은 책 <고통의 문제>를 썼지만, 죽던 해(1963년) 자신의 개인적 슬픔을 신랄하고 저항적으로 쓴 책 <헤아려 본 슬픔>을 가명으로 펴냈다.

강영안 박사는 "<고통의 문제>에서 루이스는 '구체적인 죄를 회개하는 데서 나오는 슬픔, 그래서 구체적으로 자기 잘못을 바로잡거나 남에게 끼친 해를 보상하게 만드는 슬픔이나 남을 향한 연민에서 솟아나 적극적으로 그를 돕게 만드는 슬픔이 아닌 한, 슬픔은 정말 나쁜 것'이라고 했지만, 아내 조이 데이빗먼이 죽고 나서 쓴 <헤아려 본 슬픔>에서 그와 관계없는 (루이스의 표현에 따르면 나쁜) 슬픔들을 토로했다"고 말했다.

강 박사는 "<고통의 문제>에서 루이스는 고통을 내가 당하는 고통도 아니고 내 눈앞에 있는 네가 당하는 고통도 아닌, 마치 그가 당하는 고통처럼 서술하지만, <헤아려 본 슬픔>에서는 자신이 당하는 고통을 그리고 있다"며 "이처럼 삼인칭적 관점의 서술과 일인칭적 관점에서 한 서술이 다를 수밖에 없다면, 혹자가 말하듯 루이스는 정말 신앙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났는가? 하나님에 대한 생각과 고통에 관한 생각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구제할 가능성이 없는 자처럼, 친구로부터 '마치 소망이 없는 자들이 하는 것처럼 그렇게 슬퍼하지 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슬픔에 빠진 루이스에게는 하나님이 마치 부재한 것처럼 아니면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는 외면하는 분처럼 보였지만, 슬픔에서 조금씩 회복되면서 다시 예전의 생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강영안 박사는 "루이스는 전통적인 신정론(theodicy)의 문제 제기를 '고통의 문제'로 확인하면서, 하나님의 전능함과 선함이 피조물의 불행과 어떻게 양립 가능한지를 <고통의 문제>에서 자세하게 논의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전능함과 선함-인간의 악함과 타락-인간이 경험하는 고통-동물의 고통-지옥과 천국' 등 논의 순서만 봐도 고통에 대한 그의 논의 방식과 태도가 드러난다"고 말했다.

◈"하나님이 두렵지 않다? 생전 치과에도 안 가본 사람"

<고통의 문제> 속 루이스의 주요 핵심 논제는 ①하나님의 전능함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이나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②하나님의 선하심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해하되, 하나님의 사랑은 그저 모든 것을 허용하고 봐주는 그런 말랑말랑한 사랑이 아니다 ③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고자 하시는데, 그 까닭은 우리가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함으로 아주 악해졌기 때문이다 등이다.

책에서 루이스는 "하나님의 메가폰으로서 고통이 혹독한 도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은 반향으로 연결될 수도 있지만, 개심(改心)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악인에게 제공해 준다"며 "고통의 효력은 '만사가 잘 돌아가고 있다'와 '우리가 가진 것이 본질적으로 좋든 나쁘든 전부 우리 것이고 그 이상은 필요치 않다'는 환상을 깨뜨리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세 번째 효력으로는 '고통을 통해 비로소 우리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선택했음을 의식적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이라며 "하나님께 자아를 완전히 양도하는 행위에는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라는 것으로, 이처럼 루이스에게 고통은 분명한 목적과 의미가 있었다"고 했다.

강 박사는 "이제 루이스가 말년에도 이러한 생각을 유지했는가 하는 물음이 남았다"며 "<헤아려 본 슬픔> 1-2장에서 루이스는 하나님을 '더 이상 선한 분도 전능한 분도 아니고, 가학적인 신이자 음식을 주고는 다시 빼앗아 가는 광대, 멍청한 바보'라고 부르며 '나쁜 신'을 언급하기까지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3-4장에서 루이스는 그 태도를 수정하고 있다. 강 박사는 "혹시나 자신의 삶이 '종이 카드로 쌓아 올린 성채에 불과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하나님이 생체실험을 하고 있는 자인지 아니면 질병을 고쳐주고자 하는 수의사인지'에 대한 질문에서, 나는 <고통의 문제>를 쓴 40대 초반과 <헤아려 본 슬픔>을 쓴 60대 초반의 루이스 사이에 연속성을 본다"고 했다.

루이스는 아내 조이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슬픔이 사실 조이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임을 자각하고, 암으로 고통받던 조이에 비하면 자신의 고통은 별것 아닌데도 자신은 자신의 고통만을 생각하고 그녀의 고통을 생각하지 못했음을 인식한다. 동시에 루이스는 조이에 대한 사랑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거의 같았음을 고백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나 조이에 대한 사랑도 '카드로 만든 성채였음'을 토로하면서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쪽은 자신임을 고백하고 있다.

강영안 박사는 "루이스는 하나님이 생체실험가(나쁜 신)가 아니라 병을 치료하기 위해 고통을 주는 수의사나 외과의사와 같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그리고 이렇게 믿으면 믿을수록 자비를 구하는 일은 아무 소용이 없음을 믿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며 "외과의사가 다정하고 양심적인 사람일수록 더욱 무자비하게 썩은 살을 도려낼 것이고, 만일 자비를 베풀어 애걸복걸하는 일에 꺾이고 만다면 그때까지 겪은 고통은 아무 소용이 없게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라고 전했다.

강 박사는 "만일 이 고통이 필요 없다면 신은 존재하지 않거나 악한 존재일 것이라고 루이스는 단언한다. 만약 선한 신이 계신다면 이러한 고통은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며 "그래서 루이스는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니 나는 그분이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 자는 생전 치과에도 가 보지 않은 사람이라고 힐난한다"고 했다.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에 고통을 주시고, 고통을 통해 치료해 주신다는 것.

그는 "루이스는 자신의 고통으로 두 가지 소득을 얻었다고 말한다. 하나는 이제 하나님은 자신에게 닫힌 문이 아님을 알게 되고, 조이를 바라볼 때 더 이상 공허한 진공을 만나지 않게 되며, 한 걸음 나아가 하나님과 조이를 찬양하게 된 점"이라며 "다른 하나는 예전처럼 그렇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고통에 대해 모두 설명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자신이 하나님께 이런저런 질문을 던질 때 하나님은 역시 '묵묵부답'임을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정리했다.

강 박사는 "<고통의 문제> 마지막 장에서 천국을 다루었듯, <헤아려 본 슬픔>이 거의 끝나는 부분에서도 천국을 이야기하고 있다"며 "젊을 때와 노년의 루이스는 동일하다. 다만 세상의 다양한 색깔을 조금은 회색빛 톤이 강하게 감도는 모습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이 다를 뿐"이라고 덧붙였다.

C. S. 루이스는 20세기 최고의 기독 서적으로 인정받는 <순전한 기독교>를 비롯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고통의 문제>, <네 가지 사랑>, <헤아려 본 슬픔> 등으로 유명한 기독 작가이자 문학가, 비평가, 기독교 변증가이며, 어린이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 저자이기도 하다.

콘퍼런스에서는 이 외에도 문학비평가 정정호 교수(중앙대 명예교수)가 '루이스의 문학비평 서설: 영국 주요 작가론을 중심으로', 정성욱 교수(美 덴버신학교)가 '신학자 루이스: 그의 삼위일체론을 중심으로', 이인성 교수(숭실대 영어영문학과)가 '문학작가 루이스: 그의 작품 속 세례받은 상상력', 심현찬 원장이 '윤리학자 루이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중심으로'를 각각 발표한 후 질의응답과 토론이 이어졌다. 이날 콘퍼런스에는 3백여 명의 성도들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