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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우 목사의 로마 이야기] 아킬레스

기독일보

입력 Jun 21, 2016 07:49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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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한 교우가 어느 날 다리를 절룩이며 나타났다. 웬일이냐고 물었더니 아들 녀석과 농구 경기를 하던 중 리바운드를 잡기 위해 함께 뛰어오르던 중 발뒤꿈치를 채였다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면 병원에 가보라고 하니, 별것 아니라고 하면서 쑥스러운 듯 발뒤꿈치를 매만진다. 그런데 며칠 지나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병원에 갔는데, 진찰 결과 아킬레스건이 거의 끊겼다며 조금만 늦게 왔으면 영영 다리를 절게 됐을 거라고 했다고 한다. 큰일 날 뻔했다고 머리를 긁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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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발뒤꿈치를 아킬레스라고 할까? 그것은 오랜 역사적 신화 때문이다. 그리스의 호메로스(BC 8세기)는 눈먼 음유시인이었는데, 그가 불렀던 노래의 가사에서 기인된 이야기다. 그것은 아테네와 트로이의 전쟁에 관한 이야기로, 세월과 함께 흥미를 돋우기 위해 신화적 살이 많이 붙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적으로 매우 탁월하다.

내용은 이렇다. 아버지 크로노스를 추방하고 신들의 왕이 된 제우스는, 그 역시 아들들에게 지배권을 빼앗기게 된다는 신탁을 받는다. 그래서 바다의 님프 테티스를 인간인 팔레우스와 결혼하게 한다. 그녀가 다른 신과 결혼하면 제우스를 능가하는 신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혼식에 불화의 여신 에리스를 초청하지 않았다. 에리스는 화가 나서 하객들이 모인 자리에 황금 사과를 던졌는데, 그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그런데 세 여신인 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나는 그 사과가 자기 것이라고 서로 주장했다.

제우스는 이런 미묘한 판결을 내리고 싶지 않아 자신의 양 떼를 돌보던 파리스에게 판결권을 넘겨 버렸다. 요즈음 대통령들이 사형을 언도받은 자들에 대한 집행 결재를 미루는 것처럼. 그러자 세 여신들은 파리스에게 찾아가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려 달라고 유혹했다. 저들은 경쟁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려 주면 후히 보상하겠다고 약속했는데, 헤라는 권력과 부를, 아테나는 전쟁에서의 영광과 명예를,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얻게 해 주겠다는, 어느 하나 뿌리칠 수 없는 달콤한 것들이었다.

파리스는 결국 아프로디테의 손을 들어 주게 되었고, 그녀의 보호 아래 배를 타고 그리스로 건너갔다. 그는 그곳에서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큰 환대를 받았다. 당시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는 절세미인으로, 신혼의 단꿈을 꾸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그녀를 설득하여 트로이로 데려 왔다. 사실 파리스는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이었는데, 파리스가 장차 국가의 큰 화근이 된다는 불길한 예언 때문에 남몰래 타지로 보내져 양육되던 상황이었다.

사랑하는 아내, 그것도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아내를 빼앗긴 일 때문에 저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아내를 찾기 위해 메넬라오스는 그리스의 족장들을 설득하여 전쟁에 참여케 했다. 이들 중에 오디세우스도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참전을 거부하는 다른 족장 중, 특히 최고의 명장 아킬레우스를 참전시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막강한 트로이 군대를 상대하기가 버거웠기 때문이었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테티스는 아들을 불사신으로 만들기 위해 저승의 강 스틱스에 담갔는데, 그의 발뒤꿈치를 잡고 거꾸로 담갔기에 그 부분만은 물에 젖지 않았다. 그래서 아킬레우스는 강인한 몸이 되었지만, 유일하게 발뒤꿈치만은 그렇지 못했다. 고로 그의 유일한 약점이 바로 발뒤꿈치였다. 신의 위치에 있던,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는 아들이 트로이 전쟁에서 죽을 운명이라는 신탁을 알고 참전을 막으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아킬레우스가 결정적으로 전쟁이 참가하게 된 원인은 이렇다. 아킬레우스를 전쟁에 참가시키려는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아킬레우스의 절친한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그의 갑옷을 입고 전쟁에 나섰다. 그러자 트로이군은 아킬레우스가 출전한 줄 알고 놀라 도망쳤다. 그때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당부를 잊고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다가 트로이 최고의 용사 헥트로와 맞서게 되었다. 헥토르를 돌보던 아폴론이 파트로클로스의 투구를 벗기고 무기를 떨어뜨리게 함으로, 그는 결국 헥토르의 창에 찔려 전사하고 말았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5촌 당숙인 파트로클로스를 장사한 후 전쟁에 나서게 되었다. 결국 그는 헥토르를 죽였고,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그의 시체를 말에 매어 끌고 다녔다. 이때 트로이의 늙은 국왕 프리아모스는 아들의 장례를 치르게 해 달라고 눈물로 호소하여, 부성애에 감동한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체를 내어 주었다. 그 후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병사가 쏜 화살을 자신의 유일한 약점인 발뒤꿈치에 맞고 죽게 되었다. 이에 대한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우리에게도 아킬레스가 있다. 어떤 이는 돈, 어떤 이는 이성, 어떤 이는 명예욕. 그렇다면 나에게 아킬레스는 어디인가? 신화는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고, 역사적 사실에 시대의 적절한 옷을 입힌 것일 뿐이다. 고로 현대인들이 교훈으로 받아야 할 부분이 있다.

로마의 근교에 아름다운 네미(Nemi) 호수가 있다. 화산 작용으로 이루어진 호수로, 기원전 5세기에 풍요의 여신을 모셔둔 곳이다. 그 호수를 배경으로 각국의 화가들이 그림을 그렸고, 바이론 같은 시인이 방문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마을 주변에는 2천 년 동안 신화가 전해져 왔다. 로마의 갈리굴라(Caligula, 37-41) 황제가 큰 배를 신에게 제물로 드리기 위해 네미 호수에 수장시켰다고 말이다. 이런 신화를 확인하기 위해 무솔리니가 1927년에 호수에서 물을 빼고 보니, 실제로 길이가 100m 넘는 배 두 척이 있었다.

단테는 그의 신곡에서 최고의 영웅 아킬레스가 지옥의 제2옥에 있다고 썼다. 또한 전쟁의 원인이었던 절세의 미녀 헬레네, 또 클레오파트라 등도 같은 곳에 있다고 묘사하고 있으니, 아름다운 것이 그녀들의 아킬레스였지 싶다. 바울은 아킬레스의 신화를 걷어내고, 원한이 서려 있던 역사적 장소인<트로이>를 평화의 복음의 전초기지로 설정하였다.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딤후 4:13)"

그렇다면 당신의 아킬레스를 어떻게 관리할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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