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공화당 하원의원인 데이브 브랫은 버지니아의 한 작은 대학 경제학과 교수였다.

하지만 지난해 6월 버지니아 제7지역구 공화당 하원의원 후보를 정하는 경선에서 당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로 당내 서열 2위인 에릭 캔터를 물리치면서 미국 정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1899년 당 원내대표 자리가 생긴 이래 현역 당 원내대표가 선거 본선도 아닌 당내 경선에서 패배한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당시 데이브 브랫의 승리는 기성 공화당 정치권을 향해 쌓인 공화당 유권자들의 분노 때문이라는 것이 유력한 분석이었다.

데이브 브랫은 당시 하원 원내대표인 에릭 캔터가 미국 내 불법체류자들이 미국시민권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이민개혁'을 지지하고 있다고 주로 비판했다. 자신은 이 정책을 불법체류자들에 대한 사면이라며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공화당이 연방 상하원을 장악하고 있음에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고 보수적인 가치를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며 기성 공화당 지도부에 불만을 쏟아내던 보수 라디오 논평가들의 지지를 받았다.

결과는 데이브 브랫의 승리였고 이는 기성 공화당 정치권에 대한 공화당원들의 심판으로 해석되었다. 공화당 하원의원이 된 데이빗 브랫은 지난 1월 40여명의 다른 공화당 의원들과 '프리덤 코커스(freedom Caucus)'를 구성했다. 코커스(Caucus)는 의회 내 같은 당 의원들의 모임인 의원 총회나 정당과 상관없이 특정 연방상하원 의원들이 모이는 모임이다.

프리덤 코커스는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의 건국 정신을 되살리는 목적을 두고 정부가 자신들이 중시하는 가치를 대변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모든 미국인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낸다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이들은 책임감있고 제한적인 정부를 지향하면서 공화당 의원 중에서도 더 보수적인 사람들로 구성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프리덤 코커스는 불법체류자, 낙태 등의 이슈에서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며 기성 공화당 지도부와 부딪혀왔다. 대표적인 예가 올해 초 미 국토안보부의 회계연도 예산안과 관련된 국토안보부의 부분업무정지 사태 위기다.

당시 하원은 국토안보부의 2015년 회계연도 예산안과 오바마 대통령의 이민개혁법안을 연계해 상정했는데 프리덤 코커스를 중심으로 강경 보수파 의원들은 법안에 오바마 대통령의 불법체류자 구제방안을 되돌리는 내용이 없다는 이유로 반대표를 던졌다. 결국 상원은 국토안보부 예산안 시한을 1주일 연장하는 내용의 수정안을 만들어 하원으로 보냈고 하원은 시한만료 2시간전에 간신히 시한을 늘렸다.

당시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3주간의 연장안을 제안했다가 의원들로부터 거부당하면서 공화당 내에 분열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프리덤 코커스는 베이너 의장이 민주당의 오바마 대통령과 싸우기보다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 결정에 협조하고 있다며 반발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낙태찬성 단체인 '가족계획협회'(Planned Parenthood)가 낙태당한 태아의 조직을 매매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단체에 대한 예산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프리덤 코커스 의원들을 중심으로 강경하게 나왔다.

프리덤 코커스는 연방 정부가 업무정지를 감수하더라도 '가족계획협회'에 대한 예산지원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지원 중단이 2016년 대선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반대했다.

결국 프리더 코커스의 핵심의원인 마크 메도우즈 하원의원은 베이너 하원의장이 자신들을 뽑아준 공화당 유권자들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고 있다며 해임결의안을 제출했다. 이 결의안은 표결에 부쳐지지 않았지만 일명 '베이너 의장 쿠데타 사건'으로 불리는 이일을 계기로 베이너 의장은 지난 9월말 하원의장에서 사임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프리덤 코커스의 입김은 차기 하원의장 후보에서도 나타났다. 차기 하원의장 후보로 강력히 거론됐던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인 케빈 매카시 의원도 기성 정치권이라며 대니얼 웹스터 의원을 하원의장 후보로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결국 케빈 매카시 의원은 차기 하원의장 후보 사퇴를 전격 선언하였고 공화당의 내분은 격화되었다.

공화당 의원 40여명으로 구성된 프리덤 코커스가 하원의장 선거에서 이처럼 입김이 큰 것은 하원의장이 되려면 전체 435명의 의원 중 과반수(218명)의 지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공화당 하원의원은 247명으로 이 가운데 40여명의 프리덤 코커스 소속 의원들의 지지가 없으면 공화당 하원의장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결국 2012년 대선 당시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폴 라이언 의원이 프리덤 코커스 소속 상당수 의원들의 지지 가운데 하원의장이 되면서 공화당의 내분은 진정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하지만 불법이민자들이 장차 미국시민권이 되는 것 반대, 낙태 반대와 이와 관련해 가족계획협회에 대한 예산지원 중단, 보호무역 지지, 정부지출 감소 등을 강경하게 주장하는 프리덤 코커스의 입장을 공화당 지도부가 향후 어떻게 반영할지가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데이브 브랫 의원은 얼마 전 버지니아 리치몬드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선거유세에 참여했다.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 중 지지율 1위를 고수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는 이날 데이브 브랫 의원을 향해 기성 공화당 정치권의 코를 납작하게 하고 공화당원들의 진정한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트럼프는 데이브 의원을 보면서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의 말대로 트럼프는 기성 정치권의 베테랑 정치인들을 뒤로하고 공화당원들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와 ABC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원 43%는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공화당 후보감이라고 답했다. 2위는 27%의 벤 칼슨이고 3위는 13%의 젭 부시다.

CNN/ORC 여론조사에 따르면 네바다 공화당원 60%는 트럼프가 워싱턴에서 변화를 일으킬 사람이라고 믿고 있고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는 58%의 공화당원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트럼프의 메시지는 프리덤 코커스의 메시지와 비슷하다. 미국 내 불법이민자들에게 미국 시민권을 얻도록 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추방시키고 보호무역을 강화하는 등 보수적인 공화당원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프리덤 코커스의 영향력 확대와 도널드 트럼프의 부상은 기성 공화당 정치권이 보수적 가치를 대변하지 않고 민주당의 오바마 행정부와 타협하고 있다며 분노하는 공화당원들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프리덤 코커스와 도널드 트럼프는 전체적인 국가 운영에는 관심이 없고 구체적인 대안없이 공화당 내 일부 화가 난 강경 보수적인 유권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하는 사람이들이라는 비판의 목소리 역시 크다.

정치는 감정의 배출구가 아니고 어떤 결과를 도출해 내기 위해 극적인 변화보다 계획과 끈기, 인내가 필요한 것이라는 것이다.

/글·사진=케이아메리칸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