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서울신대-하이델베르크대 국제 학술대회 개막

▲국제학술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서울신학대학교와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의 2015 국제 학술대회가 13일 서울신대 성결의전당 존토마스홀에서 '동양과 서양의 평화 이해'라는 주제로 이틀간의 일정을 개막했다.

조종남 서울신대 명예총장의 개회기도 후 유석성 서울신대 총장은 개회사를 통해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와 저희 학교가 교류 협정 체결을 맺고 향후 5년간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학술대회 주제인 평화는 인류의 염원이자 영원한 꿈으로, 부디 이 땅 위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이뤄지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박영식 가톨릭대 총장은 축사를 통해 "남북 분단의 모진 아픔을 안고 있는 대한민국의 평화통일을 이룩하는 데 이론적·실천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게 된 것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며 "독일에서 교회가 그러했듯, 이번 학술대회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통일을 위해서도 교회가 불씨를 지펴 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오전 기조강연에서는 유석성 총장이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명예교수이자 서울신대 석좌교수인 미하엘 벨커(Michael Welker) 박사가 '임마누엘 칸트: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를 각각 발표했다. 동양의 안중근과 서양의 칸트가 각각 주창한 평화론을 조명한 것.

▲미하엘 벨커 교수가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미하엘 벨커 교수는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역작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Zum ewigen Frieden·1795)>를 중심으로 그의 평화론을 분석했다. 그는 "사람들은 이 책을 칸트의 역사철학과 정치철학의 정점으로 간주했을 뿐 아니라, 서구 고전적인 시민 휴머니즘의 정점으로 간주했다"며 "칸트는 이 책에서 '우리 모두가 도덕적으로 정화된 법률의 지배 하에서 사는 데 기여한다면, 전쟁의 고통 없이도 살 수 있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벨커 교수는 "칸트는 오직 법의 이념과 실천을 따르는 사상적·정치적 노력들만이 평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칸트는 로마 시대부터 이어져 온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는 격언 대신 '평화를 원한다면, 정의를 챙기라(Si vis pacem, para iustitiam)'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폭력과 무기의 힘이 아니라, 법에 복종하는 동시에 법을 지지하는 정치의 힘이 근본적으로 전쟁을 배제하고 평화를 보장한다는 것. 그는 "이로써 평화는 모든 적의를 종결시키고, 그런 점에서 '영원하다'고 말할 수 있다"며 "칸트는 이러한 주장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과연 실제적인가? 현실 정치가 실제로 법의 이념 아래 실천적으로 작동될 수 있는가?'를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칸트의 평화론 핵심사상은 첫째로 '국가들 사이의 영원한 평화를 위한 예비 조항들'이라는 제목 아래 정언적 금지 조항 6개를 담고 있다. 그는 "이 예비조항들은 암시적 또는 명시적으로 영구적 평화 구축을 위한 도덕철학적이고 법철학적인 전제들을 주제화하고, 평화 구축을 손상시키는 정치·법률·도덕·경제적 길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6개항은 ①단순한 휴전 상태를 뜻하는 '제한적 평화 체결'을 금지한다 ②한 국가의 주권 파괴를 금지하고, 그 국가의 시민들은 도덕적 인격들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③상비군을 점차적으로라도 철폐한다 ④과도한 경제적 이익이나 위기 상황으로 인한 전쟁 도발 위험을 의식하면서, 다른 나라들이 과도하게 부유하게 되는 '유리한 부채'를 금지한다 ⑤타국의 헌정체제와 통치에 간섭하기 위한 폭력적 개입을 금지한다 ⑥평화를 배제하는 반도덕적 형태의 전쟁을 금지한다 등이다.

둘째로 '국가들 사이의 영원한 평화를 위한 확정 조항들'인데, 이는 '영원한 평화'는 법률적으로 제도화된 사회, 각 국가의 자유를 보존하고 보호하는 국제연맹, 외국인이 환대받을 권리를 포함한 세계시민법 등을 포함한다. 그는 "칸트는 실제적 관점에서 하나의 거대하고 장기적인 국제적 정치·법률·도덕 형성에 대해 호소하고 있다"고 했다.

미하엘 벨커 교수는 "칸트는 저항권을 비폭력적이고 도덕적·법률적으로 논증될 수 있는 것으로 제한하기를 원한다"며 "문제는 국가들 간에 의견이 불일치할 때 강자들이 규칙을 준수할 것인가 하는 것인데, 칸트는 작고 약한 나라들을 보호하고 강대국들이 도덕적·정치적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국제연맹을 만들고 국제법을 완성시키는 것 말고 대안이 없기 때문에, 이를 위한 도덕적·법률적·정치적 교육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유석성 총장이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앞서 유석성 총장은 "어제 일본 아베 총리가 전범을 처리했던 '도쿄 재판'을 재검토한다고 하는 등,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 문제는 심각한 상태"라며 "안중근이 꿈꿨던 동양평화론의 이상과 실천 과제는 바로 우리와 다음 세대에게 남겨진 것으로,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평화를 위해 일하는 '피스메이커(Peacemaker)'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총장은 "안중근 의사는 이른 사형 집행으로 미처 완성하진 못했지만, '동양평화론'을 통해 동아시아를 침략하는 일본의 잘못을 지적하고 철저한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며 "안중근은 한중일 동아시아 평화회의를 자신이 수감돼 있던 여순에 조직할 것을 주장했고, 지금의 EU나 APEC보다 100년 앞선 시대에 동아시아의 공동 군대와 공동 은행·화폐 등을 제안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는 겉으로 동양 평화와 한국 보호를 통한 자주독립을 이야기하는 극동평화론을 말했지만, 이는 동아시아를 침략하고 식민지화하려는 기만적 평화론에 불과했다"며 "반면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진정한 평화주의에 입각하고 있고, 자신의 행동을 의로운 전쟁, 즉 '동양평화의전'이라 불렀다"고 비교하기도 했다.

유석성 총장은 "우리가 한반도 평화통일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원인이 되는 한반도 분단 원인은 일본의 식민지배에 있었다"며 "독일처럼 전쟁을 일으킨 당사국인 일본이 분단됐어야 했다. 전쟁 후 우리나라가 분단된 것은 잘못"이라고도 했다.

이후에는 '안중근의 의거'가 십계명에서 금하는 '살인 행위'에 해당하는지를 살폈다. 그는 "안중근 의사는 법정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가톨릭에서 죄악이 아닌가' 하는 물음에 '평화로운 남의 나라를 탈취하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데도 수수방관하는 것은 죄악이 되므로 나는 그 죄악을 제거했다'고 답했다"며 "이 문제는 전쟁 중 수행한 일과 '정당방위', '저항권' 입장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미하엘 벨커 교수(가운데)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유 총장은 "당시 가톨릭 조선교구 뮈텔 주교는 안중근의 의거를 '살인행위'로 단죄하고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모임에 참석하기도 했다"며 "그러나 스코틀랜드 신앙고백 14조를 보면 '폭군에 대한 저항의 의무'라는 것이 있다. 이 고백은 디트리히 본회퍼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안중근은 자신이 처형당한 후 '천당에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을 만큼,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겼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그는 자신의 의거를 '천명(天命·하늘의 명령)'으로 여겼다"고 했다. 또 "이처럼 평화를 위해 안중근 의사가 주는 시사점은 크다고 할 수 있다"며 "우리는 한반도 평화 없이 동아시아 평화가 없고, 동아시아의 평화 없이 전 세계의 평화도 요원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오후 집중강연에서는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만프레드 외밍(Manfred Oeming) 교수가 '전쟁과 평화 사이: 구약의 다윗 전통의 내부적 발전 논리에 대한 연구', 페터 람페(Peter Lampe) 교수가 '로마의 평화에 대한 이상의 배경에서 바라본 초기 그리스도교의 평화'를 각각 발표했다.

▲만프레드 외밍 교수(가운데)가 오후 강연에서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페터 람페 교수. ⓒ이대웅 기자

 

또 필립 슈퇼거 교수(Phillip Stoellger)는 '모든 이성을 넘어서 있는 하나님의 평화에 대하여 바르트와 몰트만에 대한 답변', 최상용 전 주일대사가 '동아시아의 평화와 한중일 협력'을 각각 집중 강연했다. 학술대회 이틀째인 14일에는 '동양과 서양에서의 평화'를 주제로 두 차례 종합토론을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