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하순 LA 한인타운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할리웃 태글리안컬처럴센터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뜻깊은 기금모금행사가 열렸다. 버려지는 아기들을 살리기 위해 서울 시흥동에서 ‘베이비박스’(Baby Box)를 운영하고 있는 주사랑공동체(대표 이종락 목사)를 돕기 위해 한국입양홍보회(MPAK·대표 스티브 모리슨 장로)가 마련한 후원의 밤이었다. 입양어린이합창단과 진 김양의 음악이 가을밤을 물들인 이 행사에서는 300여 참석자들이 10만여 달러를 약정했다. 베이비박스 스토리는 LA타임스 등에 보도된 뒤 브라이언 아이비 감독에 의해 ‘드랍박스’(Drop Box)라는 이름의 다큐 영화로 제작돼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후원의 밤 기조연설과 교회 간증을 통해 나눈 이종락 목사의 눈물겨운 생명 살리기 노력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영아 두고갈 수 있는 베이비 박스 통해
5년동안 800명 넘는 소중한 생명 살려
“미주 한인 적극적인 후원·입양 기대”

주사랑공동체 대표 이종락 목사
(Photo : 기독일보) 주사랑공동체 대표 이종락 목사

-자신을 소개한다면

“경남 거창 출신으로 노래를 좋아하고 까부는 성격에 가끔 싸우기도 하던 사람이었다. 20대에 상경해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어느날 회사 야유회에서 술을 먹고 사장을 두드려 팼다. 그 일로 실직하고 어려움을 겪다가 다시 취직했다. 그 회사에서 출근 첫날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성 어거스틴에 대한 설교를 들었다. 얼마 후 과장으로부터 예배에서 대표기도를 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예수도 안 믿던 나로서는 기막힌 노릇이었다. 기도문을 쓰고 찢기를 며칠을 반복했다. 정해진 날이 다가와 예배시간이 되자 가슴이 마구 뛰었다. 기도순서가 되어 일어섰는데 종이의 글씨가 하나도 안 보였다. ‘하나님 아버지’ 하고 나니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다. 동료의 귀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한 뒤 앉아서 계속 울었다. 그런데 동료들이 다가와 눈물의 기도 정말 은혜로웠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완악한 내 마음을 만져 주셨다.”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나

“그렇게 신앙생활을 시작하려는데 바로 그 주간에 사고가 터졌다. 성격이 과격해 직원과 또 싸움이 붙었던 것이다. 상대가 병원에 가는 바람에 시말서를 내러 회장실로 들어갔다. 회장님은 읽어 보신 후 ‘당신은 예수 안 믿으면 큰일 날 사람이다. 예수를 믿으면 크게 될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믿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회장님이 내 손을 꼭 잡고 기도해 주셨다. 하나님이 크게 쓰시는, 많은 사람의 위로자가 되게 해 달라는 축복기도였다.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첫날부터 은혜를 받았다. 예배시간 내내 울었다. 이천석 목사님의 부흥회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쓰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성령 충만도 체험했다.”

-많은 시련을 겪은 것으로 아는데

“2년간의 새벽기도 끝에 딸에 이어 아들 은만이가 태어났는데 중증장애였다. ‘이왕 주실거면 좋은 것 주시지’하는 생각에 하나님을 원망했다. 그 순간 스쳐가는 말씀이 있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즉시 믿음 없음을 회개하고 ‘저 아들을 통해 하나님 영광 받아 주십시오’ 라고 기도했다. 3~4개월 후 아들이 임파선에 악성종양이 생겨 죽어가는 상태가 됐다. 의사들이 별 조치를 다해도 효험이 없었다. 아들을 살려 달라고 병원에서 처절하게 기도했다. 의사들이 수차례 불가능하다고 얘기했으나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역사로 살아났다. 아들이 너무 오래 숨이 끊겼기 때문에 뇌기능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어 식물인간으로 살 것이라고 의사들은 말했다. 삼각산 등에서 눈물로 간구했다. 주님께서 가슴을 뜨겁게 해 주셔서 엄청난 시련을 넘어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생겼다. 병실에서 늘 기도하자 주변의 환자 부모들이 기도를 부탁해 왔다. 나중에는 병실 전체가 기도하게 됐다. 14년간 병원생활을 하면서 집사였지만 ‘원목’처럼 살았다. 많은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다.”

-주사랑공동체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병원에서 82세 할머니가 부탁하셨다. 나 죽으면 손녀딸을 맡아달라고. 우리 아들과 마찬가지로 전신마비로 온몸에 호스를 꽂고 누워 있는 상희라는 아이였다. 아무도 맡을 사람이 없었다. 할머니를 예수 믿게 하려고 허락했다. 할머니가 죽은 후 상희가 우리 집에 왔다. 아내에게는 미리 말도 못했다. 하지만 아내는 아이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장애인 공동체의 시작이었다. 그 뒤로 소식을 듣고 장애아들이 하나둘씩 왔다. 장애로 태어나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이었다.”

-베이비박스를 만들게 된 계기는

“2007년 바람 부는 추운 봄날, 새벽 3시20분에 전화가 걸려왔다. 죄송합니다, 이 아이를 좀 부탁합니다 라는. 나가 보니 생선박스에 아이가 있고 고양이가 주변을 맴돌고 있더라. 저체온증으로 싸늘하게 식어가는 갓난아이를 안고 계단을 올라오는데 ‘자칫하면 우리 집 앞에서 아이의 사체가 발견되겠구나.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할 장치를 만들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09년 12월에 담장을 뚫어 공간을 만들었다. 아기를 넣으면 벨이 울리도록 했다. 간절히 기도했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들이 하나도 버려지지 않게 해 달라고, 이박스가 아니면 죽을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게만 주님께서 이 박스의 문을 열어 주십시오 라고. 3개월이 후 첫 아이가 들어왔다.”

지난달 하순 할리웃 지역에서 열린 베이비박스 후원의 밤 행사에서 입양어린이합창단이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하고 있다.
(Photo : 기독일보) 지난달 하순 할리웃 지역에서 열린 베이비박스 후원의 밤 행사에서 입양어린이합창단이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하고 있다.

-그후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첫 아이가 들어오던 날 주사랑공동체에 있던 5명이 말도 못하고 울었다. 이름을 모세라고 지었다. 모세와 같이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생명 박스를 통해 하나님께서 건져주신 것을 감사드렸다. 그 아이는 목사님 가정에 입양돼 잘 자라고 있다. 2012년 개정된 입양특례법으로 10대가 많은 미혼모의 출생신고와 입양 보내기가 어려워지면서 아이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무려 9~10배가 늘었다. 지난 5년간 베이비박스를 통해 821명의 어린 생명이 보호 받았다. 베이비박스는 낙태와 영아 유기를 막는 도피처가 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아닌 사람으로 하여금 주님 일을 하게 하신 것을 감사드린다.”

-미주 한인들에게 하고픈 말은

“누구를 통해, 어떤 경로로 태어났든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하나도 없다. 법도, 제도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생명이다. 주사랑공동체는 장애인 공동생활 외에도 낙태반대운동, 미혼모 상담 및 지원, 가족치유 상담 등을 하고 있다. 미주 한인들의 많은 후원과 입양을 바란다.”

문의: (562)505-0695, JSRcommunit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