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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의 분단이 가져온 남북한 기독교 환경 차이

기독일보

입력 Oct 19, 2015 06:21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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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속에서 회복·성장하는 북한 카타콤 교회와 남한교회

분단은 오늘날 남한과 북한에 큰 차이를 가져오게 했다. 체제, 경제, 언어, 문화는 물론 종교 환경에서도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오픈도어선교회
분단은 오늘날 남한과 북한에 큰 차이를 가져오게 했다. 체제, 경제, 언어, 문화는 물론 종교 환경에서도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오픈도어선교회

1945년 8월 15일 한반도는 38선을 따라 나뉘게 되었다. 러시아(당시 소련)와 일본은 북쪽을, 미국은 남쪽을 관할하게 되었다. 정확히 70년 전 이러한 독단적인 한국의 분단은 오늘날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특히 한쪽은 무신론으로, 다른 한쪽은 기독교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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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의 첫 기독교 선교사들의 이야기에서는 북한과 남한의 차이점을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현재 북한에서는 예수를 믿는 믿음 때문에 구금과 고문, 처형이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반면 남한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들이 존재하며, 미국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선교사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분단이 되기 전 한국은 어떠했는가? 북한이 활발한 기독교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20세기 초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알려질 정도였으며 많은 교회가 존재하고 있었다. 지금과는 달리, 북한은 전통적으로 농업이 활발했던 남한보다 더 개방적이고, 관용적이었다. 대륙과 맞닿은 위치로 인해 북한은 중국과 만주와 더불어 상업적, 문화적 교류가 활발했던 곳이었다.

1880년에 한국에 왔던 젊은 미국 선교사들은 복음과 교육, 의료라는 세 가지 분야를 통해 효과적인 선교활동을 하였다. 그들은 교회와 학교, 병원 등을 건설하고 번역된 한국어 성경을 사용하였다. 수십 년간의 선교활동의 결과 1907년 평양대부흥이 일어났고, 이 평양대부흥은 1904년 이래로 나라를 점령한 일본인들에 대한 증오를 회개하는 것을 포함, 죄의 공개적인 고백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수많은 회개들로 인해 교회는 전국 곳곳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감옥을 지키고 있는 여성 간수. ©오픈도어선교회
감옥을 지키고 있는 여성 간수. ©오픈도어선교회

그 당시 1910년부터 45년까지 일본제국의 통치는 끔찍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교회뿐만 아니라 불교와 유교적 전통 또한 박해를 받았다.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고, 1945년에 남과 북으로 분할된 이후 북한은 교회를 파괴하기 시작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은 공식적으로 1948년에 세워졌고, 김일성의 지도력 아래 국가정책의 일환으로 기독교에 대한 지속적인 탄압과 제거를 시작하였다. 당시 많은 기독교인이 스탈린주의자들의 통치를 벗어나 남한으로 넘어왔다. 6.25전쟁 이후에 북한에서는 공식적인 어떤 예배도 금지되었고, 생존한 기독교인들은 지하로 숨어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북한은 오늘날 무신론 국가이면서도 전체주의 국가다. 그러나 선교활동은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중국 국경의 북동쪽을 따라 진행되고 있다. 정치학자인 안드레이 란코브(Andrei Lankov)에 따르면, 북한 정권은 심각하게 기독교를 두려워한다. 특히 기독교가 퍼져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데, 기독교가 자신들의 힘과 이념의 근간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여러 증언을 통해 지하 카타콤(catacomb) 교회가 극심한 고문과 노동수용소, 심지어는 죽음에 맞설 준비가 된 많은 기독교인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전해지고 있다.

오늘날 남한 인구의 약 삼 분의 일이 기독교인이다. 이러한 경이로운 성장은 사회적, 경제적 요소들이 부분적으로 설명해 준다. 1950년대는 전쟁의 흔적으로 어두운 시대였다. 나라를 재건해야 한다는 국가적인 위기감이 있었다. 그리고 기독교의 노동관은 세속적인 성공을 성취하는 방법으로 근면을 장려했다. 어떤 사람은 전쟁으로 인한 어려움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위한 신호였다고도 말한다. 미국교회와 연관된 교회협의회는 남한의 성장이 현대화를 위한 그들의 노력 때문이었다고 말하지만, 남한의 성장은 진정으로 영적인 것이기도 했다.

중국에서 바라 본 북한 풍경. ©오픈도어선교회
중국에서 바라 본 북한 풍경. ©오픈도어선교회

전쟁이 일어나기 전 식민지 통치하에 일본에 의해 박해 받았던 시간, 많은 기독교인이 기도하기 위해 서울 근처의 산에 올랐고, 새벽이 오기 전까지 나라를 위해 기도하였다. 그것은 '산기도'로 알려지며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인들의 기도는 매우 강렬하고, 종종 큰 소리로 함께 기도하는 통성기도의 형태가 많다. 많은 교회가 여전히 하루를 시작하기 전 새벽기도 모임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금요일 밤에는 철야기도모임이 있다.

그렇지만 1990년대 교회의 성장은 저하되기 시작하였다. 몇몇 분석가는 그 원인을 삶의 질 향상과 함께 현실에 안주하는 현상을 지적한다. 또한 대형교회의 여러 불미스러운 사건과 내부 분쟁을 한국교회 성장 저하의 원인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인들의 회복에 대한 사모함과 근면한 자세가 공동체에 대한 그들의 열정과 더불어 오늘날 한국교회를 여전히 강한 모습으로 유지시키고 있다.

/오픈도어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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