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GMP(세계개척선교회) 소속 러시아 선교사인 곽동원·진희 집사 부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성경 구절이 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편 126:5,6).

가난의 스산함 때문에 시간이 거꾸로 흘러 과거로 회귀한 느낌마저 드는 러시아 극동의 연해주. 그 척박한 이방에서 곽 선교사 부부는 원예사역을 통해 한많은 까레이스키(고려인)들의 삶을 업그레이드시키며 그들의 눈물에 자신들의 눈물을 섞어 복음을 파종함으로써 그 어두운 땅을 보시며 오래 울고 계셨던 사랑의 주님을 전하고 있다.

미국에서 쌓은 30년 원예 전문가 경험 바탕
연해주 고려인들에 농가 소득증대 길 열어줘
모범사례 지정 한국정부 지원금 18만달러 수령
“실내 화초 등 재배 주력 계획”… 후원 절실

제3의 고향인 러시아 미하일로프카에서 원예사역을 하고 있는 곽동원·진희 선교사 부부.
제3의 고향인 러시아 미하일로프카에서 원예사역을 하고 있는 곽동원·진희 선교사 부부.

30년간 화훼와 조경 사업으로 영근 아메리칸 드림을 수확하면서 평탄하게 살던 이들이 안전지대를 벗어나 일제시대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던 연해주로 둥지를 옮긴 것은 2002년 다녀온 단기선교가 계기였다.

“같은 이민자로서 미국에서 안정된 삶을 영위하며 교회에 다니지만 감사보다는 불평이 많고 더 많은 물질을 추구하다 보니 어느새 추하게 변해버린 저희의 모습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울러 상상 못할 고난 속에서도 순수한 인간성을 잃지 않고 삶의 풍파에 맞서 투쟁하듯 살아가는 고려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어서는 안 된다”고 확신한 곽 선교사 부부는 연해주를 가슴에 품고 매년 다니면서 고려인들과 교제를 나누는 등 꿈을 발아시켰다.

5개월간의 선교훈련 후 남가주사랑의교회의 파송을 받아 제3의 고향 미하일로프카로 건너간 것은 2009년. 선교사로 받아 주지 않는 나이인 50대 후반이었으나 현지에서 활용 가능한 기술을 지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저희가 섬기는 사람들은 1860년대 이래 연해주에서 거주하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우즈벡 등으로 강제이주 당해 황무지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고려인들의 후손입니다. 그들은 거기서도 백의민족 특유의 인내와 근면성으로 열심히 농사를 지어 노동영웅이 되고 자식들을 도시로 유학 보내는 등 성공을 일구었습니다. 하지만 구소련 붕괴에 따른 민족주의 발호로 배척당해 살기 어렵게 되자 일부가 1990년대 중반에 고향인 연해주로 귀환했습니다. 자녀 세대들은 방학 때면 집에 와 부모들을 도왔기에, 폐허가 된 군 막사나 남들이 버리고 떠난 움막에서 살면서 농사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고단한 유랑의 역사를 지닌 한핏줄을 섬기러 떠난 곽 선교사 부부가 첫 해에 겪은 것은 자기 무능에 대한 처절한 깨달음이었다.

“도와주겠다고 갔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요. 미국보다 30~40년 뒤진 지역에서는 전문지식도 무력했습니다. 미국처럼 홈디포에 전화하면 비료가 배달되는 것이 아니라 소똥을 볶아서 거름을 만들어야 하고, 러시아어를 못해 관청에 갈 때도 현지인들에게 의존해야 하고…. 몰아치는 겨울 눈보라에 제 몸 하나 가누기 어려웠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전무했습니다.”

이들은 시작하자마자 경험한 ‘바닥’을 우쭐함과 교만을 버리고 오로지 하나님만 의지하는 기회로 삼았다. 그리고 비닐하우스 설치를 지원하고 재배기술을 보급하는 일로 사역을 시작했다. 남서울은혜교회 홍정길 목사가 세운 ‘원동문화개발기구’에서 벌이는 고려인 영농지원 사업의 일환이었다.

곽동원, 진희 선교사 부부의 연해주 사역 현장.
곽동원, 진희 선교사 부부의 연해주 사역 현장. 비닐하우스에 심은 꽃씨가 싹을 틔우는 모습.

초기에는 오이, 토마토, 딸기 등 농작물을 심었지만 2012년부터는 서너 배의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꽃 재배에 전념하고 있다. 한 가정이 시작한 꽃 농사가 5년새 33가정이 참여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주택을 증개축할 정도로 성공한 사람들도 생겨났다. 이 사역은 한국 블라디보스톡 총영사관에 의해 고려인 지원 모범사례로 본국 정부에 보고돼 3년에 걸쳐 18만달러의 지원금을 받는 결실을 거두었다. 이들은 지금까지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미래를 내다보며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러시아의 경제발전 속도를 볼 때 10년 후면 주택 조경 붐이 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희망자를 선정, 특수 비닐하우스에서 정원수 묘목, 실내용 화초, 고소득 작물을 키우도록 돕는 사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현대식 주택이 딸린 2에이커 규모 영농센터를 10월에 구입할 계획이다. 필요한 자금 중 6만 달러는 확보했으나, 4만 달러가 부족해 후원이 절실하다. 응원군은 3개 한인교회, LA기윤실, 믿음의 동지 등 소수다.

주민들로부터 꽃씨 주문을 받는 곽진희 선교사
주민들로부터 꽃씨 주문을 받는 곽진희 선교사

미하일로프카를 중심으로 블라디보스톡 등 운전거리 4시간(약 250km) 내 지역에서 이뤄지는 이들의 섬김에는 40여 청년들과의 정기모임, 인도를 맡은 출석교회 구역예배, 자택에서 여는 러시안 할머니 친교모임 등이 포함돼 있다. 또 의료 및 구제사역, 경로사역, 아동사역, 연 6,000달러 규모의 장학사역 등으로 현지인들의 마음문을 열어간다.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관심이 많아 무료 카페 ‘향기 나는 숲’을 오픈할 계획도 갖고 있다.

시장에서 팔리는 소담스러운 꽃.
시장에서 팔리는 소담스러운 꽃.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일까. 이들은 “보내는 선교사와 현지 선교사가 합력할 때 아름다운 열매가 맺힌다. 사역을 제대로 하려면 후원이 늘어야 하는데 점점 겁이 난다”고 말했다. 시간이 가면서 어떻게 간증하면 교인들이 은혜 받고 많은 헌금을 내는지 기술적으로 깨달아 가는 일이 이들은 두렵다. 때문에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주님 앞에서 철저한 자기검증 속에 사역하기를 간구한다. 타락하지 않기 위해서다.

“선교지에서 이렇게 고생하는데 이 정도 돈은 마음대로 써도 돼, 라고 생각하는 순간 끝장입니다. 우리 인생의 마무리가 ‘정직한 선교사’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정말 겸손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조금도 앞으로 나가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잘 될 때 하나님 앞에 벌거벗고 서기를 원합니다.”

곽 선교사 부부는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며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려고 오늘도 애쓰고 있다. 예수님의 첫 기적 현장인 가나의 혼인잔치 같은, 처음보다 나중이 더 아름다운 사역이 기대되는 이유다.

병석의 어머니와 아무 음식이나 섭취할 수 없는 특수 앨러지를 갖고 태어난 어린 손녀딸을 보기 위해 방미중인 이들의 원예사역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홈페이지 icaruskwak.com을 방문하면 된다.

후원 문의: icaruskwak@gmail.com, 714-401-7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