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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선교 역사의 중요 인물 개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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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Sep 14, 2015 06:32 P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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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우스 루드빅 진젠도르프(Nicolaus Ludwig Zinzendorf, 1700-1760)

GMI 선교팀장 양태철 목사
GMI 선교팀장 양태철 목사

현대 선교 역사적인 관점에서 7회에 걸쳐, 개신교 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니콜라우스 루드빅 진젠도르프, 윌리엄 캐리, 허드슨 테일러, 윌리암 카메룬 타운젠드, 도날드 맥가브란, 랄프 윈터와 총체적 선교를 간략하게 연재함으로, 오늘날의 선교전략 연구 및 실행에 일익(一翼)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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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영적 각성운동과 현대 선교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독일의 경건주의(Pietism: 소그룹 중심, 성경공부 중심, 성결생활 중심, 봉사중심, 경건생활 중심, 선교 중심의 경건운동)는 필립 스페너(Philip Spener, 1635-1705)에 의하여 시작되었으며, 그의 제자인 아우구스트 프랑케(August Franke, 1663-1727)는 진젠도르프(Zinzendorf, 1700-1760)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진젠도르프의 모라비안(Moravian) 선교회는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와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1714-1770)에 의한 제1차 영적 대각성 운동(1720-1776)과, 찰스 피니(Charles Finney, 1792-1875)와 드와이트 라이먼 무디(Dwight Lyman Moody, 1837-1899)가 중심이 된 제2차 영적 대각성 운동(1795-1875)에 초석(礎石)이 되었다. 또한 감리교를 시작한 존 웨슬레(John Wesley, 1703-1791)와 ‘현대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 1761-1834)에게 선교의 불을 붙이는 역할을 하였다. 아울러 학생자원운동(The Student Volunteer Movement for Foreign Missions, SVM, 1886)이 일어나는 데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1910년 스코틀랜드 에딘버러(Edinburgh)에서 열렸던 세계선교사대회(World Missionary Conference, WMC)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진젠도르프는 10세가 되던 해에 독일의 할레(Halle) 대학에 입학하여 17세까지 그곳에서 공부하였는데, 이때 경건주의의 대가인 프랑케(Franke)와 깊은 유대 관계를 갖게 되었으며, 이 때 진젠도르프의 경건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이상인 순결한 교회와 순결한 영적 생활에 대한 뿌리가 내면에 자리 잡게 되었다. 특별히 19세 때인 1719년에 독일 뒤셀도르프(Dueseldorf)에서 화가인 도메니코 페티(Domenico Feti)가 그린 그림(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헌신(獻身)하게 되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으로 구입한 독일 베르델스도르프(Berthelsdorf)의 근처의 커다란 땅에, 진젠도르프는 1722년부터 300명이 넘는 종교적 난민들(후스를 따르던 모라비아와 보헤미아 지방의 보헤미안 형제단 소속의 크리스천들)의 정착을 허락했다. 이들의 거주지를 ‘헤른후트’(Herrnhut)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주님의 보호’라는 의미였다. 헤른후트에 세워진 공동체는 철저한 공동체 생활, 선한 사업들, 엄격한 도덕 그리고 근면함에서 수도원을 닮았다. <독일의 베를린(Berlin)에서부터 기차로 약 2시간 정도 남쪽에 위치한 드레스덴(Dresden)에서 내린 후, 다시 동쪽 방향으로 지역 기차를 타고 약 1시간 정도 가서 로우바(Loebau Sachen)에서 내린 후, 헤른후트까지 가는 지역 버스를 타고 약 20분 정도 남쪽의 체코 국경 쪽으로 가면 된다. www.hernnhut.de 참조. 필자는 모라비안 선교를 연구 차, 작년 영국 옥스퍼드 선교연구소에서 6개월 간 연구 중, 2013년 5월 2일부터 5월 5일까지 독일 헤른후트를 방문하여, 선교 역사적 및 선교 전략적인 관점에서 모라비안 선교회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

모라비안 선교회는 평신도 전문인 자비량 선교의 대표적인 선교회로서, 이교도들을 향한 전도와 선교가 교회의 의무라는 생각을 실천에 옮긴 최초의 개신교도들이다. 1900년 뉴욕에서 열린 초교파 선교대회에서 존 모트(John R. Mott)는 모라비안들에게 다음과 같은 찬사(讚辭)를 보냈다. “모라비안들은 해외 선교사역 가운데 선교지 현장에서 가장 놀라운 성취를 이룬 예이다. 그들은 지닌 능력에 비해서 다른 어떤 기독교 단체들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 그 당시 전체 개신교 선교사들과 교회 성도들과의 파송 비율이 1:5,000인 것에 비해, 모라비안들은 1:60이었다. 이는 그들의 전적인 헌신의 강도를 알 수가 있는 좋은 예이다.

이러한 모라비안 선교 공동체는 철야 기도의 모임 가운데, 1727년 8월 13일 오순절 성령강림과 같은 성령의 체험을 강하게 하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모라비안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으며, 성령의 감동으로 1728년 1월부터 세계 선교를 위한 100년간의 연속 기도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중보기도에 힘입어, 1732년부터 모라비안 평신도 전문인 자비량 선교사들을 서인도(West Indies)와 그린랜드(Greenland)의 이누이트 인디언(Inuit Indian) 등에게 파송하게 되었다. 일례로, 1728년부터 진젠도르프가 소천하는 1760년까지 32년간, 14개국에 226명의 선교사들을 파송하게 되었는데, 이는 1517년 개신교가 시작된 이후, 1792년 ‘현대선교의 아버지’라 일컬음을 받았던 윌리엄 캐리가 본격적인 현대선교를 인도에서 시작하기까지 275년 동안, 개신교 전체가 파송했던 선교사의 숫자보다 더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한 놀라운 결과를 이루게 되었다. 또한 1930년대 말까지 약 3,000여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되었다.

필자는 은혜한인교회 선교를, 모라비안 선교와 선교 역사적 관점에 근거하여, 다음 세 가지로 비유(比喩)하고자 한다. 첫째, 영적인 지도자의 선교에의 헌신을 들 수 있다. 진젠도르프라는 모라비안들의 영적인 지도자의 세계 선교에 대한 열정과 헌신과 같이, 김광신 원로목사와 한기홍 담임목사의 세계 선교에 대한 열정과 헌신이 오늘날의 은혜한인교회의 선교를 이룬 초석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모라비안 선교의 동력이 되었던, 세계 선교를 위한 100년간의 중보기도와 같이, 은혜한인교회는 세계 선교를 위한 원로목사와 담임목사, 그리고 선교사들과 교역자, 교직원들과 성도들의 기도가 선교의 동력이 된 것을 들 수가 있다. 특별히 세계 선교를 위한 연속적인 중보기도를 위하여, 은혜한인교회는 2009년 10월 6일부터 새 성전인 비전 센터(Vision Center) 2층의 ‘은혜세계기도센터’(Grace World Prayer Center, GWPC)에서 세계 선교를 위한‘24/7 기도’ 및 예배(매일 2회의 예배)를 드리고 있다. 셋째, 은혜한인교회의 선교는 모라비안 선교와 같이, 선교지에서 죽기까지 충성하는 선교사들의 헌신을 들 수 있다.

반면에, 모라비안 선교사들의 전문인 자비량 선교의 측면과 선교지 현지인들과의 동일화(identification, assimilation)와 문화적응(cultural accommodation, adoption)과 현지화(indigeneousness, localization)는 은혜한인교회 선교사들이 더 본받아야 한다고 본다. 필자는 모라비안 선교가 세계 선교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 같이, 은혜한인교회의 선교 역시 수많은 한인 교회들에게 선교의 동기 부여 및 선교 전략에 일정 부분, 여러 각도에서 기여했다고 본다. 앞으로, 다음세대가 이러한 본교회 선교의 헌신을 이어받아, 지속적으로 주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게 되길 기도한다. 또한, 진젠도르프(1727년에 감독직 안수 받음)와 같은 기도의 종, 선교의 종, 헌신의 종이 계속 나오게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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