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교회 곽영구 목사
(Photo : 기독일보)

하루 24시간! 누군가에게는 너무 긴 시간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늘 부족한 시간입니다. 제자훈련을 인도하면서 읽었던 책 중에 “늘 쫓기는 삶”이란 책이 있습니다. 늘 쫓기듯 사는 삶이 잘 사는 삶이 아님을 일깨워 주는 책입니다.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예수님 하루의 삶은 바쁜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우선순위는 언제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었고, 사람을 위한 삶이셨습니다.

유치원 가방을 메는 순간 우리의 삶은 늘 쫓기는 삶이 됩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소개할 때 “우리 아이는 너무 바빠요”라고 은근히 자랑하듯 이야기 합니다. 유치원생의 부모님들도, 초등학생 부모님들도 중,고등학생을 둔 부모님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자라서 그런지 다 자란 자녀들도 밥 한 번 같이 먹자는 부모님의 요청에 바쁘다고 합니다. 몸이 아파서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 에둘러 한 번 들렸으면 하는 요청에도 가정과 회사일로 바쁘다고 합니다. 어려서는 공부 때문에 바쁜 아이라는 부모님의 소개로 자라서 장년이 돼서는 가정과 회사일로 바쁘다고 자신을 소개하며 삽니다. 왠지 바쁜 삶이 잘 사는 삶 같아 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누구나 해야 할 일로, 하고 싶은 일로 바쁜 삶을 삽니다. 하지만 바쁜 삶이 좋지만 항상 좋은 삶도 또한 옳은 삶도 아닙니다. 나쁜 일 하느라 바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바른 삶인가는 죽음 앞에 서있는 사람들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모든 사람에게 죽음은 첫 경험이자 마지막 경험입니다. 사랑하는 일을 포함해 모든 것에는 실수를 통해 더 귀한 것을 얻고 경험할 수 있지만 죽음만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죽음에서부터 거꾸로 살게 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통해 참 삶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독일의 속담입니다. “죽음의 신이 온다는 사실보다 확실한 것은 없고, 죽음의 신이 언제 오는가보다 불확실한 것은 없다” 죽음은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에게만 찾아오는 것도, 연로하신 어르신들에게 먼저 찾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건강한 자에게도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그가 얼마나 기구한 삶을 살았는지, 그가 얼마나 화려한 삶을 살았는지, 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묻지 않습니다. 약속 있어서 바쁘다고 일어서는 사람에게도 찾아옵니다. 죽음은 자비도 연민도 베풀지 않습니다. 젖먹이는 아이를 둔 엄마에게도, 결혼을 앞 둔 청년에게도, 승진의 기쁨을 앞에 둔 자에게도, 사업의 계약을 앞 둔 자에게도, 내일 만나자고 인사하고 잠자리에 누운 가족에게도 아침 전에 찾아오기도 합니다.

죽음을 가장 잘 수용하는 사람이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는 사랑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됩니다. 옆에 있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고, 욕심이 없어서 베풂의 삶을 삽니다. 함께 하는 사람과의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압니다. 죽음을 이해하고 배우면 죽음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삶이 달라집니다. 삶이 성숙해 집니다. 사랑하며 삽니다. 죽음을 이해하는 사람은 자신보다 주변을 둘러봅니다. 나의 삶 보다 상대의 삶의 무게가 더 커 보여서 상대의 삶을 인정하며, 존중하게 됩니다.

복음서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1/3 분량을 소개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도, 무리에게도 십자가와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많은 분량을 할애 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죽음의 문전에서가 아닌 오래 전부터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삶을 걸어가셨습니다.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삶에 관한 이야기로 설명하셨습니다.

죽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재수 없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삶을 지어가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처럼 우리의 삶이 뒤에서부터 시작된다면 우리도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뎅 국물처럼 따뜻한 희망 이야기, 사람의 가슴에 새겨지는 사랑 이야기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사순절을 맞아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한 마지막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더 나은 삶과의 소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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