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볼라가 할퀴고 간 아픔의 자리, 그 곳에서 그들은 무릎 꿇고 눈물로 기도하며 찬양하기 시작했다. 교회에 부흥이 임한 것이다.

2014년 1월에 씨에라리온 칼라훈 국경에서 시작된 '에볼라 바이러스'는 아직도 이들에게 두렵고 무서운 존재로 삶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단 한 명의 발병자로 인하여 씨에라리온, 기니, 라이베리아는 지난 2년 동안 수 천명이 죽어갔고, 수 만 명이 고통을 받고 있다.

시에라리온 김성림 선교사

왜 이렇게 가난하고 소외된 아프리카에 이같은 큰 고통이 주어졌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저 말라리아처럼 가볍게 생각한 바이러스는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모든 뉴스의 초점이 되었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에게서 잊혀진 먼 나라의 이야기지만 아직 이곳은 그 바이러스와 전쟁 중이다.

그동안 긴 어둠의 터널을 나온 이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으면서 마음이 무너지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우리가 다시 이 땅을 밟으니 너무나도 큰 환대와 환영을 받았다. 우리에게는 당연한 일이 이들에게는 그저 고마울 따름인 모양이다. 아직도 많은 선교사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4년 가장 '에볼라'가 심각했었던 7월부터 이들에게는 생지옥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보도상으로, 시신을 집에 숨긴 일도 이들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먼저 사람이 아프면 무조건 병원에 가서 에볼라 감염 검사를 받아야 했다. 물론 가족들은 당연히 함께 예비 보균자로 분리되어 일체의 사회 활동을 할 수 없고 격리가 이루어졌다. 그 환자가 보균자로 확증이 되면 반경 1킬로미터정도 되는 마을은 모두 갇히게 된다. 마을 주변에 바리게이트를 치고 군인들이 24시간 상주하며 감시에 들어간다. 환자가 발생한 집의 모든 집기들은 소독을 하거나 불살라 없어진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몇 가지 되지 않는 살림살이가 모두 불길에 휩싸이고 마는 것이다. 그 누구도 반항할 수 없고 따지는 사람들도 없다.

환자가 많이 발생한 시기에는 환자가 죽으면 바로 묻는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이 죽으면 무조건 숨기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지막 가는 길을 혼자 외로이 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에볼라가 가장 심각한 시기에는, 많은 사망자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관계 당국이, 굴착기로 땅을 파고 포크레인으로 사망자들을 땅속에 그냥 묻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족은 아무도 참관할 수 없었고 설령 경찰에게 돈을 주어도 멀리서만 그저 지켜 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그러다 보니 가족들은 시신을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기 위해 시신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시에라리온 김성림 선교사

기나긴 내전을 겪고 이제 겨우 안정을 찾은 이들에게는 내전과도 같은 고통이 엄습했다. 자신의 가족이 어디에 묻힌지도 모르고 정부로부터 그저 죽었다는 통보를 받는 것이 전부였다. 혹 많은 사람들은 이들이 무지하여 그렇게 했을 것이라 여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도 우리와 동일한 사람이며 동일하게 남편을, 아내를, 그리고 자식을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함께 삶을 나눈 가족을 그렇게 보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열이 나도 다른 곳이 아파도 병원을 가기 두려워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은 자들도 많다고 한다.

혹 주변 사람들이 신고하여 병원에 가도 에볼라 검사를 받는 데만도 5-7일이 결렸다. 갑자기 들이닥친 이 바이러스를 검사할 시약이 없었기 때문다. 유엔에서 지원하는 약품이 오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고, 그것이 다시 환자들에게 활용되는데 또한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세계 각국에서 책상에 앉아 회의할 때 이들은 외로이 병실에서, 복도에서, 거리에서, 그리고 어두운 집에서 외롭게 죽어갔다.

초기에 정부에서 '에볼라'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다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정부는 '에볼라'를 숨기기에 급급했고, 그 후 통제가 불가능할 때 비로소 이 무서운 질병을 알렸다고 한다. 더욱이 지방에서는 정보를 제공 받을 수 없었고, 그들이 치료를 위해 도시로 들어와 씨에라리온의 수도인 '프리타운'은 무방비 상태로 에볼라에 의해 강타 당한 것이다.

보균자와 그를 치료한 가족, '에볼라'라는 사실을 모르고 문병을 다녀간 자, 그리고 그 가족과 친구들 …………. 인구의 1/4이 살고 있는 도시는 인구의 밀집 현상으로 걷잡을 수없이 바이러스가 퍼져나갔다. 말라리아와 비슷한 증상을 보였기에 이들은 그저 가벼운 감기정도로 가볍게 여긴 것이 분명하다. 아무도 이 '에볼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경찰이 보균자를 잡아 가둔다는 소문이 돌자 다시 환자들은 지방으로 달아났다. 이렇게 반복된 정부와 보균자들 간의 추격전이 온 나라가 '에볼라' 감염지역이 되는 비극을 만든 것이다. 마을을 지날 때마다 검사를 받아야 했고 경찰서의 허가증이 있어야 하며 한 명이라도 환자가 발병한 마을은 모든 것이 통제 되었다. 마을로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어 생필품이 바닥나면 돌보지 못한 아이들은 굶주림으로 사망했다. 또 극심한 가난으로 몸을 파는 어린 아이들도 생겨 났다.

지금 이 땅은 '에볼라'로 인해 경제가 적어도 10년은 뒤쳐진 상태라고 한다. 아직도 식량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아 가격이 많이 오르고 있다. 막혔던 국경이 열리고 생필품들이 원활하게 공급되어 다시 예전과 같은 경제 활동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정부가 많은 애를 쓰고 있긴 하다. 하지만 아직도 부정 부패가 만연하여 유엔이나 세계 각국에서 지원된 자원들이 많이 없어졌다는 소식도 들린다.

아픈 자들을 위해 보낸 구호품들이 제대로 지원이 되지 않았다. 모든 국민이 죽음과 싸우고 있을 때에도 부정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유익만을 쫒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 주는 안식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과 평안은 그들도 빼앗을 수 없을 것이다.

왜 이런 일을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허락하셨을까? 우리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해답이 이곳에 와 보니 알 것 같다. 교회마다 부흥이 일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에 나와 눈물로 기도하며 찬양하기 시작했다. 우리 지교회들도 '에볼라'로 인해 여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그 고통을 딛고 더 많은 부흥이 일어나고 있다. 고난이 있는 곳에 은혜도 크다는 말씀이 실제가 되었다. 더 큰 일을 하고 계신 하나님이 이곳에 계신다. 그들에게 위로와 하늘의 평강을 부어주시고 계신 것이다.

우리가 간절함으로 기도할지라도 때로는 하나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실 때가 있다. 세상의 어둠은 물러갈 생각을 하지 않고 막막함과 두려움이 우리를 엄습할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질병으로 고통당할 때 주님도 함께 괴로워하심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지쳐 쓰러져 눈물 흘릴 때에는 주님도 같이 울고 계심을 또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의 삶에서 말없이 가슴으로 느껴지는 주님의 인자하심과, 결코 끊어지지 않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랑이 우리의 시련을 이기게 하신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그 고통에도 유익이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은 아무것도 버릴 것이 없다는 것을.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도 하나님께는 의미있는 일이었다. 우리의 삶에서 그것을 깨닫는 것, 그것이 하늘에서 주시는 평강이 아닐까 생각한다. 긴 터널을 통과하고 밝은 빛을 볼 때 그곳에 주님이 서계실 것을 믿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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