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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간음죄 사실상 용납하듯이 동성애도 용납하자?"

기독일보 기독일보 la@christianitydaily.com

입력 Jul 03, 2015 10:59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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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결혼 반대 시위

(포토 : 사진 출처 = 크리스천포스트)

이전에 낸시 피어스의 <완전한 진리>라는 책을 읽으면서 기독교적 변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싸움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논리적인 것으로든, 목소리가 큰 것으로든) 핵심을 정확히 지적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성경에서 다윗이 골리앗과 난타전을 벌여서 이기지 않았다. 한 방에 끝냈다. 난타전을 벌인 후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둬야 짜릿하고 손에 땀도 좀 나고 스릴이 넘칠 텐데, 좀, 아니 너무 너무 싱겁게 끝났다. 다윗이 노린 곳은 갑옷으로 중무장하고 있는 골리앗이 무장하지 않고 있었던 곳이었는데, 그곳을 정확히 공략해 단 한 번에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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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을 이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단의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핵심을 쳐야 한다. 사단은 공중권세 잡은 자라고 하는데, 그의 권세는 뜬 구름 같은 권세다. 사단이 무섭고 대단해보이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신약에서 축사의 기적을 많이 일으키셨는데, 귀신은 사람에게서 무기력하게 떠나가야 했다. 그런데 치열하게 싸워서 쫒아내신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나가라"고 하기만 해도 약간 저항하다가 결국에는 무기력하게 나갔다. 왜냐하면 그가 사람 안에 들어가야 할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도 동일한 권세를 주셨다. 사단은 하나님을, 예수를, 하나님의 자녀들을 이길 수 없는 것이 기본이고 원칙이다. 죄인이 어찌 의인을 이기겠는가? 악이 어떻게 선을 이기겠는가? 죄가 어떻게 의를 이기겠는가? 어둠이 어찌 빛을 이기겠는가? 빛이 비취기만 하면 어둠은 사라지는 것이다. 어둠은 빛이 없어서 잠시 왕노릇하고 있을 뿐이다!!

낸시 피어스가 <완전한 진리>에서 말하는 핵심을 보면 이렇다.

질문: 당신은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고 생각하나요?

답: 그럼요 절대적인 것은 없죠. (이것을 입증하기 위해 수많은 화려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하지만 질문자는 답변자의 화려한 말에 잠자리눈처럼 되어 현혹되지 않고 오히려 답변자의 핵심을 단 번에 공략한다.

질문: 긴 말 잘 들었습니다. 아주 박식하시고 똑똑하시군요. 저에게 아주 많은 것은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핵심을 이야기하자면, 당신은 절대적인 것이 없다는 것을 절대화하는 군요? 

답: ...

질문: 절대적인 것은 있습니까? 없습니까?

답: ...

절대적인 것은 존재한다. 절대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그 순간 절대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절대화하는 것이되고 만다. 말을 하는 순간, 그는 바로 논리적 오류에 빠지게 된다. 차라리 입을 다물고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이 나은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말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

절대적인 것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절대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 절대적인 것이 존재하게 한 절대적인 존재가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인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은 이 세상 밖의 절대적인 존재에 의해 절대적인 것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절대적인 존재는 신, 하나님이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계시다. 그러므로 성경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한다. 

이것은 동성애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는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고 하고, 단지 성적 취향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동성애가 죄라고 말하고 있는 성경의 절대 진리를 허물려고 한다. 

기독교인으로써 기본적으로 성경을 기초로 해 동성애를 바라보면, 성경에서는 부부 관계 외에는 성적인 관계를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마음으로 음욕을 품는 것까지도 죄라고 하는데, 동성애와 동성애를 하게 만드는 음욕이 어떻게 죄가 아닐 수 있겠는가? 결혼 관계에 의해 주어진 배우자 외의 이성에 대해 음욕을 품거나 간음하면 죄이듯, 동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기독교는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가르친다. 이성에 대한 잘못된 사랑을 부인하듯, 동성에 대한 잘못된 사랑도 부인해야 한다.

그리고 기독교인의 결혼에 대한 이해는 서로에 대한 음욕 때문에, 사랑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정한 기독교인들은 결혼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섭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믿는다. 나의 배우자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섭리에 의해 주어진 반쪽이라고 이해했을 때, 그 결혼은 진정한 결혼, 거룩한 결혼, 하나님의 결혼이 될 수 있다. 동성애 자체가 성경에서 죄라고 말하고 있는데, 동성결혼에 대해 어찌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말하겠는가?

성경을 떠나서 창조질서만 보아도 동성애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변태이고, 돌연변이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들을 모두 쌍으로 만드시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고 하셨다. 설령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이미 존재하는 자연만물만 보더라도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음과 양의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동성애는 이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것이다. 

살인이 잘못된 것인 것처럼, 간음이 잘못된 것인 것처럼, 도둑질이 잘못된 것처럼, 거짓말이 잘못된 것인 것처럼, 탐심이 잘못된 것인 것처럼, 동성애도 잘못된 것이다. 이 절대적인 선을 허물어 버리면, 큰 혼란이 일어난다. 동성애를 인정해준 것처럼 다른 것도 인정해야 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살인한 후에 나는 살인의 성향을 타고 났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것을 인정해주고 받아주어야 하는가?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아담의 타락 이후 살인의 죄성을 우리 안에 가지고 태어난다. 자신의 성향을 이기지 못해 살인을 해도 되는 것인가? 아니다.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고, 부인하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거룩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어떤 이들은 동성애가 죄라는 것, 잘못된 것은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은 "교회에서 간음죄가 죄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간음죄를 범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그것은 교회에서 간음죄를 사실상 용인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간음죄에 대해서는 사실상 용인하면서 동성애에 대해서는 왜 목에 핏대를 세우고 반대하느냐?"고 말한다. 

이런 논리는 슬프기 그지 없는 것이다. 이들은 간음죄를 용인하니, 동성애도 용인하자고 할 것이 아니라, 간음죄를 교회 내에서 완전히 없애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물론 목회자까지 간음죄를 범하는 슬픈 현실에서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도 간음죄를 범했거나 범할 가능성이 있는 죄인들이기에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성경이 간음죄를 죄라고 하셨기에 그것과 싸워야 하고, 그것은 동성애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간음죄와 동성애는 결코 같은 선에 놓고 볼 문제가 아니다. 간음죄를 범한 이들은 자신들의 죄가 죄가 아니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들이 간음죄를 범한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수치스러워하고 부끄러워 한다. (물론 간혹 그렇지 않은 자들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다.) 그런데 동성애자들은 끝까지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이 정상적인 것이라고 우긴다. 그래서 전 세계 곳곳에서 퍼레이드를 벌이고, 미국에서는 그것을 합법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법으로까지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동성애자들에 대한 전환 치료도 못하게 만들고 있다. 커밍아웃을 자랑처럼 하고, 훈장처럼 여긴다. 간음죄를 범한 이들이 이런 짓을 했다면 - 퍼레이드를 벌이고, 합법화시키고, 전환 치료도 못하게 만든다면, 간음의 성향을 가진 자라고 커밍아웃한다면 (생각만 해도 기가 막히지 않은가?) - 집단매장을 당했을 것인데, 동성애자들은 인권을 거론하고 사회적인 약자라고 하면서 이런 일들을 버젓이 행하고 있다. 그러니 어찌 동성애자들을 간음죄를 범한 이들과 동일한 선상에 놓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든 문제가 교회들이 죄에 대해 너무 관대해진 것에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의 영광과 권세를 드러내야 할 교회가 오히려 세속화되어 음욕, 간음, 이혼 등을 다 받아들이다 보니, 절대적인 선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상대화되기 시작했다.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혼전성관계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하고, 콘돔을 사용하거나 임신만 안 되게 하면 된다고 한다. 그것을 성경의 어느 곳에서 가르치고 있는지 모르겠다.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과의 교제가 아니라 인간간의 교제를 위한 곳, 사교클럽이나 데이트장이 돼버렸다. 

세상에 절대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할 교회가 죄와 타협한 만큼, 세상도 죄와 타협하게 되고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더 한 죄를 짓기 시작한다. 절대가 무엇인지 다 잊어버린다.

지금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교회가 옷을 찢고 재에 앉아 눈물로 회개하고 변화되어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다. 그러니 다른 어떤 곳보다 교회 안에서부터 진정한 회개와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동성애자들 정죄하려 돌 던지기에만 바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성경대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기준에 따라 살기 위해 노력하자. 절대의 능력을 보여주자. 말싸움만하지 말고 삶으로 싸우자. 삶으로 보여주자.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은 "나를 따르라. 와서 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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