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미국에 동성결혼을 합법화할 지 여부를 다루는 연방대법원의 구두변론(Oral Argument)이 28일 열렸다. 이번 구두변론의 두 가지 주제는 “동성결혼이 헌법상 권리로 보장받아야 하는가”와 “동성결혼을 금지한 주도 타주에서 이뤄진 동성결혼을 인정해야 하는가”로 요약된다. 이번 재판의 핵심이 수정헌법 제14조이니만큼 이 조항이 규정하고 있는 평등과 자유에 변론의 초점이 맞추어졌다. 친동성애 측은 “결혼할 자유, 그 중에서도 어떤 성별을 가진 누구와 결혼할 것인지의 자유가 개인에게 부여돼 있다”고 주장했고 반동성애 측도 동일하게 “결혼할 자유는 개인에게 부여돼 있다”고 했지만 “동성결혼 합법화를 주민이 아닌 연방법원이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당초에는 친동성애 측이 수정헌법 제14조의 평등 문제를 놓고 동성 커플과 이성 커플 간에 평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식으로 변론이 진행될 것으로 예측됐으나 이날 친동성애 측을 대표한 메리 보나우토 변호사는 변론 시작부터 결혼의 정의 자체를 개정하는 방향으로 주장을 펼쳐갔다. 보나우토 변호사는 “동성 커플이 가족 관계를 구성할 자유를 동일하게 누리는 것”을 요구하며 “결혼할 지, 또 누구와 결혼할 지는 개인이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Roman Boed/ www.flickr.com/ CC 연방대법원이 미국 역사에 중요한 한 획을 긋게 될 판결을 오는 6월 말 내리게 된다.
연방대법원이 미국 역사에 중요한 한 획을 긋게 될 판결을 오는 6월 말 내리게 된다. © Roman Boed/ www.flickr.com/ CC

동성결혼 역사적 근거 희박, 정의 변경은 시기상조 입장

그러나 보수적 대법관들은 동성결혼의 역사적 근거가 희박함을 우려했다. 중도보수로 분류되는 앤소니 케네디 대법관도 “(전통적 결혼은) 수 천년 동안 존재해 왔다. 이에 대해 법원이 우리가 더 잘 안다고 말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이후 변론은 ‘동성결혼이 역사적, 사회적 근거가 있는가’라는 쪽으로 초점이 맞추어졌다. 케네디 대법관은 “결혼이 정부에 의해 제어된다고 주장하지만 칼라하리 사람들이나 고대인들은 그러한 정부가 없었지만 결혼을 남녀 간에 이뤄지는 것으로 정했다”며 전통적 결혼관의 역사성과 자연스러움을 강조했다. 이번 변론 중 그는 “동성 커플도 결혼에 대한 ‘숭고한 목적’을 지닐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결혼의 정의를 헌법으로 변경하는 것을 지칭하지는 않았다고 분석된다.

새뮤얼 앨리토 대법관도 “내가 아는 바, 20세기 말까지 동성 간의 결혼을 인정하는 국가나 문화권이 없지 않았는가? 이 사실로부터 ‘그런 국가나 문화권이 모두 결혼을 그렇게(전통적 관점을 지칭) 정의했던 합리적이며 실질적인 목적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추론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 등 결혼의 정의를 법원이 내리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었다. 앨리토 대법관은 “동성애가 만연했던 고대 그리스에서도 결혼의 개념을 이성 간에만 적용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안토닌 스캘리아 대법관도 “다른 사회도 2001년(네덜란드가 세계 최초로 동성결혼을 합법화 한 해) 전에는 하지 않았던 일을 우리보고 결정하란 것인가”라고 물었다. 진보적인 성향을 띠는 스티븐 브레이어 대법관도 “왜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주들이 (동성결혼을 인정한) 다른 주에서 이뤄진 동성결혼이 결혼 제도에 해로운지 그렇지 않은지를 지켜볼 수 있도록 기다릴 수 없는가”라고 물었다. 2013년 결혼보호법 심리 당시에서 친동성애 측은 결혼의 정의 변경을 시도했으나 대법관들은 시기상조란 입장을 견지했었다.

중혼, 종교자유 침해 등 현실적 문제 우려

결혼의 정의가 연방대법원에 의해 변경되었을 때, 발생할 파장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앨리토 대법관은 “우리가 이를 허용하는 판결을 했을 때, 두 남성과 두 여성이 함께 결혼한다고 하면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보나우토 변호사의 주장처럼 누구와 결혼할 지를 개인이 결정하는 것이라면 왜 한 사람과만 결혼해야 하는지 질문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보나우토 변호사는 “여러 사람이 함께 관계 맺는 것을 우리는 결혼이라 하지 않는다”면서 “결혼은 두 사람의 상호 합의 하에 이뤄지는 것"이라고 답했다.

스캘리아 대법관은 “나는 많은 시민들이 종교적 이유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행동을 헌법으로 의무화하는 것이 우려스럽다”면서 동성결혼이 헌법에 명시됐을 때, 정부의 인증을 받은 성직자가 동성결혼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라 우려했다. 보나우토 변호사는 “오늘날까지 어떤 성직자도 그들이 원하지 않는 결혼을 주례하도록 강요받지 않았다. 그것은 보호된다”고 말했지만 스캘리아 대법관의 의견은 달랐다. 스캘리아 대법관은 “지금까지 우리는 동성결혼에 헌법적 권리가 있다고 한 적이 없다. 그러나 헌법으로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것이) 금지된다면 그렇게 (동성결혼을 거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보나우토 변호사가 “수정헌법 제1조의 종교자유 조항으로 인해 보호된다”고 주장했지만 스캘리아 대법관은 “나중에 헌법을 위배할 사람을 (정부의 인증을 받는 성직자로) 임명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가정 제도에 있어서 이성결혼의 중요성 강조

이후 반동성애 측을 대표한 존 버시 변호사는 “이번 재판은 결혼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가 아니라 누가 정의할 지에 대한 것”이라 말했다. 법원에 의해 결혼의 정의가 내려져서는 안되고 민주적 과정을 통해 주민들이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미국의 36개 주와 워싱턴DC에서 동성결혼이 허용됐지만 오직 3개의 주만이 주민들의 직접 투표에 의해 동성결혼이 합법화 되었고 8개 주는 주 의회에 의해 간접적으로 합법화 됐지만 나머지 25개는 전부 법원에 판결로 인해 이루어졌다. 워싱턴DC도 연방법원의 판결로 동성결혼이 확정됐다.

변론에서 버시 변호사는 전통적 결혼을 출산(Procreation)의 관점으로 풀어갔다. 그는 전통적 결혼을 중심으로 한 가족 구성의 당위성을 주장하며 “만약 결혼의 정의를 바꾸어 사람들이 마음 속으로 결혼과 자녀 출산이 서로 관계가 없다고 보면 무슨 일이 생길까? 결혼 밖의 자녀가 많이 생길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결혼의 정의가 변경되면 이성 결혼이 줄어들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진보적인 법관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은 “출산 중심의 시각을 가진 주가 있다고 했을 때, 그 주가 출산을 목적으로 하는 결혼을 인정한다면 그들은 ‘출산하지 않고자 하는 사람에겐 결혼증명서를 줄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이건 헌법에 부합되는가”라고 물었다. 올해 82세인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대법관은 “70세 커플이 결혼한다고 했을 때, 그들은 자녀를 낳지 않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한편, 존 로버츠 대법관은 동성결혼 금지법이 성적 차별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는 발언을 했다. 그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성적 지향성 문제로 들어가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다"면서 “수(Sue)도 조(Joe)를 사랑하고 톰(Tom)도 조(Joe)를 사랑하는데 수는 결혼할 수 있지만 톰은 성별로 인해 결혼할 수 없다. 왜 이런 사실이 성적 차별에 관한 솔직한 질문이 될 수 없는가”라고 했다.

타주의 동성결혼 인정은 각 주의 권리를 침해하는가

두번째는 타주의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여부에 관한 것이었다. 이는 연방법과 주법에 관한 논쟁으로 현재는 결혼법이 각 주에 귀속돼 있기에 타주에서 이뤄진 동성결혼을 주들이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

일부다처, 조혼, 근친혼 문제도 허용하나

친동성애 측에서는 더글라스 홀워드-드리메이어 변호사, 반대쪽에서는 조셉 웨일른 변호사가 나왔다. 홀워드-드리메이어 변호사는 “기업이 한 주의 법에 의해 설립되면, 그 기업은 다른 주에서도 존재한다. 가정도 그렇게 존중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시각에 대해 대법관들은 우려를 표했다.

스캘리아 대법관이 먼저 “해당 주에서 불법이라 해도 그것이 다른 주에서 인정을 받았던 것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인가”라고 묻자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곧장 스캘리아 대법관은 “일부다처를 허용하는 국가에서 결혼한 사람의 결혼도 허락해야 하는가”라고 되물었고 앨리토 대법관은 “만약 어떤 주에서 12세 소녀가 결혼했다면 다른 주에서 그 결혼도 인정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소냐 소토메요르 대법관은 근친혼에 관해 물었다.

이혼은 인정되는데 결혼만 안 된다면

다음으로 웨일른 변호사는 “수정헌법 14조는 전통적 결혼법을 가진 주가 동성결혼을 허락한 주의 결혼을 인정하도록 요구하지 않는다”며 변론을 시작했다. 다른 주에서 이뤄진 법을 주가 거부할 권한에 대한 주장이 이어지자 긴스버그 대법관은 “적절한 절차에 따라 이뤄진 이혼은 다른 주에서도 인정이 되는데 왜 결혼은 그렇지 않은가”라고 묻기도 했다.

대법원장인 로버츠 대법관은 심의에서 “이번 재판에서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것으로 판결이 나면, 더 이상 이에 대한 논쟁은 없어진다. 논쟁이 없어지면 생각이 닫힌다. 이 새로운 제도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람들은 법원이 강제할 때와 스스로 투표할 기회를 가질 때, 이 문제에 대해 매우 다르게 느낀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 허용 여부를 각 주의 재량으로 결정하도록 판결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이번 사건에 대한 판결은 6월 말 내려질 예정이다. 물론 연방대법원은 구두변론 여부와 관계없이 판결을 내리지 않을 수도 있다. 이렇게 될 경우에는 각 주의 동성결혼 합법화 여부는 그 지역을 관할하는 연방 항소법원의 판결이 최종 판결로 굳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