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욱 디렉터(한미연합회 커뮤니티 아웃리치 담당)
남상욱 디렉터 (한미연합회 커뮤니티 아웃리치 담당)

9월 9일 아침 8시 30분. 여느 때라면 사무실로 향해야 할 나는 지하철을 타고 있다. 오늘 나는 법원에 가는 중이다. 한인타운 선거구 단일화를 위한 소송의 첫번째 재판에 참석하려고 법원에 가는 길이다. 참 편해졌다고 생각한다. 교통체증을 걱정하지 않아서 좋고, 조금 더 싼 주차장을 찾기 위해 차를 몰고 돌지 않아서 좋다. 지하철 안은 한산하다.

드디어 법원이다. 한국에서도 가보지 못한 법원이라 긴장이 된다. 법정 벽엔 역대 판사들의 초상화들이 걸려 있다. 마치 초상화의 판사들이 정의가 이 법정에서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살펴 보고 있는 것만 같다. 법정 안의 공기가 차갑다. 냉방이 잘 되는 모양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법정에서 열받는 사람들이 많아 법원 건물이 steamed-up 되지 않게 하려면 성능 좋은 냉방 장치가 꼭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오늘 법정에서 벌어질 상황을 잠시 그려 본다.

한인타운을 대변하는 변호사들이 주장할 내용을 크게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LA시 선거구 재조정 위원회가 연방헌법의 평등보호조항을 위반한 것이다. 왜냐하면 위원회가 2012년 선거구 재조정을 하면서 한인타운 절반을 10지구에 포함시켰는데, 이것은 전통적인 선거구 재조정 원칙을 무시한 채 특정 인종 유권자만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한인들이 ‘실현 가능한’ 선거구 재조정 지도를 위원회에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위원회는 이를 면밀하게 검토하지 않고 무시한 채 한인타운을 둘로 갈라 경계를 훼손하고 말았다. 세번째는 선거구 재조정 위원회가 핵심 쟁점 사안에 대해 주민들의 의견을 묻는 절차가 있음에도 선거구 재조정에 대한 주민투표를 허용하지 않고 서둘러 결정을 내림으로써 가주 헌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재판이 시작된다. 연방법원 마샬판사는 원칙을 지켜가는 꼼꼼한 성격의 판사인 듯하다. 양측이 제출한 서류들에 대해 질문과 의견을 제시하는 것에서 그녀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측 변호사는 2012년 당시 허브 웨슨 LA 시의장과 크리스 엘레스 선거구 재조정 커미셔너가 선거구 경계선이 인종을 중심으로 설정되었음을 언급하는 이메일을 보낸 사실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LA시가 지난 선거구 재조정 조항에 대한 주민투표를 허용하지 않아 캘리포니아 주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LA시측의 변호인들의 주장도 만만치 않다. 그들은 선거구 재조정 소송 전문 로펌 의 변호사들이라고 한다. LA시측 변호인단은 한인타운을 관할하는 제10지구의 경우 선거구 재조정이 10년전과 똑같은 비율로 설정됐다고 반박한다.

양측의 입장이 팽팽하다. 판사의 질문과 의견, 양측 변호사들의 답변과 주장이 계속 이어진다. 예상했던 것보다 재판이 치열하다. 예정 시간을 훨씬 넘겨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끝이 아니다. 왜냐하면 판사가 판결을 연기하였기 때문이다. 마샬 판사도 고민이 깊은 듯하다.

사실 이번 소송이 우리의 승리로 단번에 끝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우리의 상대는 LA시다. 막강한 상대이다. 그러나 우리가 LA시와 상대해서 싸울 수 있는 것은 믿음과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요구를 끝까지 주장하겠다는 신념. 우리의 한인타운 선거구가 결국 하나가 될 것이라는 믿음. 흑인인권운동을 이끌었던 마틴 루터 킹목사의 말이 떠 오른다. “믿음은 계단 끝이 보이지 않을 때라도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다.”(Faith is taking the first step even when you don't see the whole staircase.) 이 말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브리서11:1)”라는 성경 말씀을 떠오르게 한다.

한인타운 선거구 단일화 소송은 이제 초기 단계이다. 이 소송이 어디로 어떻게 갈지, 그 끝을 알 수 없다. 소송이 장기화되면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무료 변론으로 변호인단 비용은 걱정하지 않지만, 전문가증인 섭외 등 재판 유지 비용은 여전히 우리의 짐이다. 그러나 이런 불확실한 현재 상황 속에서 내게 한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한인타운 선거구 단일화는 나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가까이에 내 동료들이 있다. 그리고 여러 한인 시민단체들도 이 일에 동참하고 있다, 특히 한인타운을 버티게 하고 있는 많은 한인 교회들이 있지 않은가! 우리가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 한인교회들의 힘이라고 생각하니 한결 내 마음이 편해진다. 한인타운 선거구 단일화 캠페인에 한인 교회의 많은 참여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나는 끝이 아직 보이지 않지만 첫걸음을 내딛는다. 믿음을 가슴에 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