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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 크루소
대니얼 디포 | 생명의말씀사 | 312쪽 | 12,000원

 

영국 소설가 대니얼 디포(Daniel Defoe, 1660-1731)의 장편소설 <로빈슨 크루소>는 18세기 영국 중산층의 성장과 함께 태동한 소설의 기원을 이룬 작품이다.

대니얼 디포는 1660년 영국 런던에서 푸줏간의 아들로 태어나 메리야스 장사, 벽돌 굽기, 세무관리 등 여러 가지 직업을 가졌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가 이전에 왕성한 저널리스트였던 디포는, 40대를 활발한 언론가로 보냈었다. 작가로서의 디포를 지배한 가장 강력한 문화적 욕구는, 바로 대중을 교화하고 개혁하는 것이었다.

이 소설은 5년간이나 무인도에서 지낸 일이 있는 스코틀랜드 선원 셀커크(1676-1721)를 모델로 한 가공적인 무인도의 생활담으로서, 1719년 출판업자 윌리엄 테일러에 의해 출간되어 큰 인기를 누렸다. 이 소설은 본래 <요크의 선원 로빈슨 크루소의 생애와 신기하고 놀라운 모험(1719)>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왔다. 이 소설은 최초의 근대적 소설로 인정되고 있으며, 주인공이 주위의 도움 없이 불굴의 정신으로 역경을 이겨내는 일화가 어른 뿐 아니라 어린이들에게도 많은 인기를 얻어, 동화의 형태로도 많이 출간되고 있다.

이 소설은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와 함께, 당시 영국 신흥 중산층의 경제·정치 의식과 활력을 반영했다. 국내에서는 오랫동안 주인공이 무인도에 표류했다가 생환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전편만이, 어린이용으로 꾸며져 읽혔다. 그러나 최근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는 속편 <로빈슨 크루소의 또 다른 모험>을 발굴해 완역, 성인용으로 쓰인 원작의 모습을 되찾았다. 속편은 로빈슨이 살다가 스페인 선원들에게 넘기고 돌아온 섬에서 벌어진 뒷이야기와, 중국과 러시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그의 또 다른 모험담을 담고 있다.

흔히 <로빈슨 크루소>로 알려진 이 책은, 디포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가 말하는 종교적 가치는 청교도적 신앙관과 생활관을 가리킨다. 먼저 이 작품의 줄거리를 살펴보자.

로빈슨 크루소는 서양 근대 당시 중산층 계급에 개신교적 가치관을 지닌 전형적 인물이다. 바다를 좋아하고 어릴 적부터 탐험심이 강했던 그는, 항해하던 중 1659년 9월 어느 날 배가 파선하여 무인도에 떠내려간다. 배는 파선했지만 운 좋게도 혼자 살아남게 된 로빈슨은 섬 가까이 떠내려 온 배에서 식료품과 옷, 무기와 개, 고양이까지 건질 수 있었다. 사나운 짐승이나 다른 사람도 없었고 사람이 살기에도 기후가 좋아, 그는 밭을 일구고 산양도 길들였으며 곡식까지 보관하는 자급자족의 삶을 꾸린다.

그러나 무인도에서 주인공 크루소는 점점 고독감을 느끼게 되면서 차츰 <성경>에 마음을 기울이게 된다. 섬 생활이 차츰 안정되어 가면서 크루소가 <성경>을 존중하는 태도는 더욱 철저해졌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란, 하늘나라에 이르는 확실한 안내자이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이를 가르치고 깨우치며,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신다."

크루소는 곡식 찌꺼기를 버린 자리에서 보리 이삭이 나온 것을 보고 놀란다. 그는 메마른 땅에서 자라는 곡식을 보며, 그 기적이 자신의 생명을 살려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믿게 되었다. 독자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소박한 신앙고백을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다. 또한 개인 존중과 개인의 양심 존중, 그리고 만민평등의 사상도 찾아볼 수 있다.

로빈슨 크루소는 섬에서 지내는 동안 매일 일과에 따라 시간표를 작성하여 규칙적으로 생활했다. 그 일과의 첫째는 하루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며 성경을 읽는 일이다. 둘째는 총을 들고 사냥을 나가는 일인데, 비가 오지 않는 날은 보통 오전 중 세 시간이 걸렸다. 셋째는 잡아 온 짐승을 잘 보관하고 요리하는 일이었다. 그는 많은 창의성을 발휘하고, 쉴 틈 없이 열심히 일했다. 그에게 노동은 하나의 신성한 의무였다.

어느 날, 식인종의 포로가 된 한 흑인 노예를 우연히 발견하고는 구출해 주었다. 그날이 금요일이어서 그의 이름을 '프라이데이'라 지어 주고 함께 지냈다. 이로써 비록 뜻은 통하지 않지만, 표류 후 25년 만에 처음으로 인간과 말을 주고받게 되었다. 둘이 생활하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 선교사와 토인이 식인종들에게 붙잡혀 온 것을 보고 구해 주게 되는데, 토인은 바로 프라이데이의 아버지였다.

그 후 섬에 상륙한 반란선을 진압하고 선장을 구해 준 것이 계기가 되어, 무인도 생활 28년째인 1687년 6월 11일 무사히 고국에 돌아와 35년 만에 몰라보게 변한 고향 집에 닿게 된다.

로빈슨 크루소의 표면을 보면, 한 선원의 무인도 표류기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소설에서 주인공은 그리 많지 않은 도구들로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구조되지 않는다 해서 체념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문학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로빈슨 크루소 역시 표면의 무인도 표류기만으로 한정되지 않고, 당시 영국 시대상을 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속편의 내용을 보면, 크루소는 조카와 프라이데이를 데리고 다시 항해에 나서 '절망도'에 도착했다. 프라이데이는 아버지와 재회의 기쁨을 누리나, 토인과의 해전에서 전사하고 만다. 다시 혼자가 된 크루소는 시베리아 여행과 여러 가지 모험을 한 끝에 10년 후 72세의 나이로 고향에 돌아와 안착한다.

디포는 이 소설이 픽션이 아니라 사실의 기술이라고 서문에서 밝혔다. 이야기를 꾸민 사람이 아니라, 마치 실록의 편자인 것처럼 가장한 것이다. 디포 자신이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이 소설의 목적은 "우리가 처하게 되는 온갖 경우에서 하나님 섭리의 지혜를 정당화하고 높이기 위함"이었다.

이 소설을 어린이들 사이에서 재미있게 읽히는 '무인도 표류기' 정도로 여기는 사람이 있으나, 사실 이 작품에는 청교도의 신앙관과 생활관이 곳곳에 반영되어 있다.

<로빈슨 크루소>는 <걸리버 여행기>와 더불어 18세기 영국 대표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작품은 영국 소설 성립기의 중요한 작품으로, 기독교적 우화(寓話)로서의 특색도 있다. 오늘날도 이 소설은 영미인 독서층에서 많이 읽히고 있고, 진지한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