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로드 한인교회 김칠곤목사
(Photo : 기독일보) 크로스로드 한인교회 김칠곤목사

계절의 변화에 따라 쇼핑몰에 가서 보면 옷의 색깔들이 변할 뿐만아니라 사람들이 옷을 입는 것도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계절의 변화는 참으로 모든 만물들에게 축복된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계절을 만드시고 조정하시는 하나님께 매번 감사함을 갖게 된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도 옷 색깔을 바꾸 듯이 자연의 식물들도 자신들의 옷 색깔을 바꿔 입는다. 봄철에 집 주변의 둘레를 쌓고 있는 사철 나무를 보면 묵었던 나뭇잎들 위에 새싹들의 잎들이 솟아 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새싹들을 보면 잎들마다 너무나 윤기가 넘쳐 보여 그들에게 다가서서 만져 보고 싶은 충동을 물씬 느끼는 적이 가끔씩 있다. 그런데 그들도 차가운 바람이 불고 매서운 겨울을 지내다 보면 윤기나던 어린 새싹들의 잎이 어느새 거칠어져 젊음의 윤기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그런데도 그 나무잎들은 가지에 붙어서 계속적으로 살아간다. 그 이유는 그 나뭇잎들이 살아서 나무의 줄기에서 영향을 공급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철 나무는 자신의 가지에 붙은 묵은 나무잎이나 아기 새싹 나무잎들에게 감사한다. 그것은 바로 '힘든 역경속에서도 나뭇잎들이 나무의 가지에 붙어 있어 주어 고맙기 때문 일 것이다.'사람들이 사는 세상의 가정도 이와 같다. 아버지라는 나무의 줄기가, 어린 아이가 자라면서 세상의 삶이 쉽지 아니하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삶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것을 보며, 자녀들이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기쁨으로 살아주어서 감사하다고 여길 것이다.

 

인생은 나면서 부터 흙으로 육신이 돌아갈 때까지 인생의 계절을 살아가면서 때까 되면 청춘의 봄을 갖게 된다. 그리고 젊음의 청춘을 통해 꽃의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그들이 피는 젊음의 꽃은 수국꽃이 피는 것처럼 파란색, 보라색, 분홍색, 빨간색 그리고 하얀색들의 다양한 자태를 뽑낸다. 그 꽃들의 향기가 너무나 좋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그들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도록 재촉한다. 그리고  훨훨 날개를 치며 날아다니는 노랑나비와 흰나비들이 그들의 곁에 멀리 떠나가지 아니하도록 붙들어 놓는다. 이뿐 아니라 여기저기 이꽃 저꽃을 다니며 꽃들의 삶을 나누어 주는 벌들에게 쉴틈없이 다시 오도록 꽃의 향기로 그들을 초대한다. 이렇게 자신의 놀라움을 뽐내는 수국꽃의 또 다른 멋은 꽃이 질 때까지 일곱번이나 색깔이 변화한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수국꽃을 "칠변화" 꽃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렇게 아름다운 꽃의 자태의 모습을 지닌 수국꽃도 오래가지 아니하여 자신의 화려함을 마무리 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꽃의 향기를 더 이상 내지 못하기에 사람들도, 나비들도, 벌들도 더 이상 그들에게 찾아오지 않는다. 아무리 아름다웠던 꽃들이라도 꽃이 시들면 색깔이 변하게 되고 벌레들이 그 주변에 생기어 상처를 받게 된다. 그리고 꽃은 바람이나 비가 오면 힘이 없어 하나 하나 떨어져 땅에 놓여 있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에 밟히게 된다. 그럼데도 불구하고 꽃들은 자신의 모습에 대해 고통받거나 아파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마 그들은 계절의 변화를 그들의 몸으로 잘 느껴 순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의 삶도 수국꽃이 시들어 지며 계절의 순응하는 것처럼 인생의 계절을 안다면 인생의 계절의 변화에 대해 결코 슬퍼하지 아니할 것이다. 성경에서도 자연이 하나님의 만드신 창조의 질서에 순응 하듯이 사람도 순응하도록 조정하신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전도서 3:1-3) 모든 만물이 때가 있는데 그 때에 맞게 순응한 삶을 살면 모든 때가 아름다운 것이다. 꽃이 활짝피면서 향기를 풍기면 모든 사람들이 그 모습에 감탄한다. 그리고 꽃이 시들고 추해지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그 꽃을 찾지도 아니할 뿐더러 꽃에 가까이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러나 시들은 꽃을 보면서 겸손함을 바라보게 된다. 그 겸손함은 '꽃이 진자리에서 열매가 맺혀지기 때문이다.'따스한 봄에 아내와 함께 한국 시장에서 모종한 꼬추나무 한 그루와 호박 한 그루를 산적이 있다. 그것을 집 정문 앞에 햇살이 들어오고 비를 맞을 수 있는 곳에 화분에다 아내가 심어 놓았다. 어린 식물들을 보면서 언제 그것들이 자라 꽃을 맺으며 열매를 딸 수 있는가 아침 저녁으로 생각했다. 열매를 딸 수 있고 모종한 식물들이 클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오가면서 햇살이 없을 때면 그것들에게 물을 주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이 비가 한 번 내리거나 뜨거운 햇살을 잘 맞으면 하루 하루 자라가는 것이 눈으로 보였다.

자라나는 식물들을 보면서 필자가 그것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커가 주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며 겨우 물을 한번씩 주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자라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런즉 심는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고전3:7) 꽃이 필자의 눈에 슬픈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으로 보이게 된 것은 호박꽃과 고추의 하얀꽃이 지면서 그 밑에서 열매가 맺어지는 것에 놀라게 되었다. 그리고 꽃은 시들어 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내려놓고 그 자리에 열매가 맺게 한다." 그것을 눈으로 매일같이 보면서 꽃이 열매를 맺을 뿐 아니라 열매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시작이었다. 그리고 열매가 자라면 그 열매도 언젠가는 땅에 떨어지게 되는데 그 열매가 땅 속에서 한 나무를 자라게 하여 또 다른 수 많은 열매를 맺게 한다. 이것으로 볼때 꽃이 시들어지는 것은 결코 슬픔이나 죽음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의 시작이며 희망'이다.

인간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젊었을 때에는 만나는 사람도 젊음 때문에 사람들이 늘 함께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늙어지면 어느 순간 평상시에 가까웁게 느꼈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인생은 슬픔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은 사람이기에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그렇지만 떨어지고 사라져가는 인생이 슬픈 것 같지만 또 다른 열매를 맺기 위해 나의 삶을 내려 놓는 것이라면 '인생의 꽃이 떨어짐은 그리 서글픈 것이 아니다.'인간의 죄를 위해 자신의 삶에 아름다운 꽃을 십자가에 내려놓으신 예수님의 죽음은 슬픈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의 꽃'때문에 죽은 영혼이 살 수 있으며 죄인들이 구원을 받아 영생에 축복을 받게 되고 복음의 열매가 풍성해 지는 것이다. 이러한 삶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며 때가 되어 나의 삶을 내려 놓으면 그 자리에 아름다운 열매가 풍성히 맺이게 되는데 이것이 인생의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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