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주한인여성목회자협의회 제6차 정기총회 및 연합컨퍼런스가 ‘말씀으로 돌아가자’(딤후 3:15-17)는 주제로 23일부터 시흥순복음교회 담임 차갑선 목사를 강사로 초청한 가운데 차스토니포인트센터에서 개최됐다.

차갑선 목사는 지역에서 가장 큰 교회를 이끌고 있는 여성 목회자로 말씀을 깊이 이해하고 성도들에게 세세하게 풀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북미주여성목회자협의회 연합컨퍼런스 강사로 초빙된 차갑선 목사는 깊이 있는 말씀으로 또 한번 참석자들에게 은혜를 줬다.

차갑선 목사는 첫날 ‘나의 의인’(히브리서 10:38-39)이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하나님이 찾으시는 의인의 자리에 우리가 있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환경이나 사람에 구애받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사역자들이 될 것을 당부했다. 다음은 차갑선 목사의 첫날 강의 주요 내용이다.

신학교를 다니면서 한끼를 굶으면 책이 하나 생겼다. 점심을 굶으면 두 권이 생겼다. 집에 그렇게 3천권의 책이 있었다. 그 책의 반의 반도 읽지 못했다. 이 신학자는 이 말씀, 저 신학자는 저 말씀을 했다. 이 신학자 저 신학자를 다 보다보니 혼선이 왔다. 누구 말이 진짜인가 고민이 왔다. 그 때 성경을 봤다. 성경은 하나님 하신 말씀인데 신학자의 이야기보다는 성경에서 뜻을 찾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파고 들기 시작했다. 설교를 파고 들기 전에 도움을 준 분이 남편이었다. ‘미워도 다시 한번’의 조감독을 했었다. 남편의 대본을 보면 깨알같이 배우들의 옷과 동선 카메라의 움직임 등을 꼼꼼히 적었다. 그 때 깨달았다. 성경은 문자로 표현돼 있지만 하나님이 이 문자 속에서 나타내고자 하시는 말씀은 대단한 말씀이고 이 의도, 이 섭리를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은 너무 많은 구절이 있었다. 누가 저에게 성경을 몇 번 읽었느냐고 물어보면 몇 번 못읽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마태복음을 몇 번 읽었느냐 물어보면 몇백번 읽었다고 한다. 로마서도 몇 백번 읽었다.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의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선악과에 대해 하나님은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먹으면 죽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이다. 이렇게 성경은 모든 것이 하나님이 명령하시고 그 명령이 언약이 되는데 그 구약의 명령의 짝은 신약에서 찾으려 했다. 제가 여러분과 별로 다른 것은 없다. 다만 성경을 좀 더 꼼꼼히 보려 했다는 것, 그 가운데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인지 보려고 했다는 것이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내용은 로마서, 하박국, 히브리서에 나와있다. 히브리서에서는 ‘나의 의인’이라고 표현했다. 히브리서에서는 하나님이 원하는 의인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보는 의인이 누구인가를 찾아보고자 한다.

삿14:18 “일곱째 날 해 지기 전에 성읍 사람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 한지라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 갈지 아니하였더라면 내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 하니라”

무엇이 꿀보다 달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고 했다. 이것은 시편 119편5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꿀송이보다 달다고 돼 있다. 그러면 사자보다 강한 것이 무엇인가 잠언서 28장1절에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다고 돼 있다. 사자보다 강한 것은 의인이다. 동물의 왕국에서 제일 강한 것이 사자인데 그 사자보다 강한 것이 의인이다. 히10: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이다. 사자보다 강한데 절대 어떤 환경이나 조건, 문제속에서도 뒤로 물러나지 않는 자가 하나님이 보시는 의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에게 요구하는 그 의는 어떤 자인가. 바로 절대로 어떤 환경이나 어떤 조건이나 사건에 의해 뒤로 물러나지 않는 사자와 같은 자다.

여성 목회자는 까다로운 조건이 많다.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아내의 역할 엄마의 역할, 교회에서도 해야할 역할이 정말 많다. 그 가운데에서 여성 목회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이 선택하고 또 선택하신 것이다. 우리가 세움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받았는데 중간에 목회를 포기하고 세상으로 돌아가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특별히 그 많은 사람 가운데서 세우신 것이다. 어떤 조건이나 환경에 의해 뒤로 물러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생명을 향해 온전히 달려가는 우리가 되자.

아벨, 에녹, 노아에 대해서 많은 이들에 대해서 앞으로만 전진했던 믿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히브리서 11장은 신약의 선진들도 말하고 있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다고 했다. 히브리서 11장을 우리는 믿음의 장이라고 한다. 히브리서11장은 믿음의 장이라기보다 하나님이 보시는 의인을 기록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땅에서 똑같이 신앙생활을 하고 목회자로 사역을 했는데 주님 앞에 서는 날 어떤 종은 착하고 충성된 종, 어떤 종은 악한 종이라고 책망을 받을 것이다. 왜 우리가 여기에 모였는가. 좀 더 하나님의 여종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가고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기 위해 전진하려 모인 것이다. 이 모임에서 친교도 중요하지만 먼저는 우리는 목회의 방향을 컨퍼런스를 통해 정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증거된 믿음을 갖고 가는 우리가 되자.

하박국에서는 그의 믿음으로 살리라고 했다. 하박국은 3장으로 돼 있는데 하박국 선지자는 여러분과 같이 하나님 앞에 의롭게 기도하는 자다. 하박국 선지자는 정말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어떤 기도를 하는가. 하박국 시대에 악한 자들이 득세하고 더 잘되고 있었다. 하박국은 악한 자들이 더 잘되고 세상에서 판을 치는 것을 고민하고 기도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 악인들이 득세하는데 앞으로 더욱 크게 득세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더욱 시련을 당하고 연단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하박국의 두 번째 기도에 반드시 그것을 이루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역경을 통해서 의인을 고르겠다고 하셨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그 믿음을 찾겠다고 하신 것이다. 우리들이 목회하고 있는 이 세상은 의인보다 악인이 더욱 득세하고 있다. 정상 목회를 하는 사람보다 비정상 목회를 하는 이들이 더 사람이 많다. 이단이 더욱 판을 친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은 바로 우리에게 나의 의로, 믿음으로 사는 것을 보시기를 원하신다.

환경에 굴하지 않는 믿음의 사역자가 되자

우리는 오늘 목회를 잘하고 싶은데 경제권이 넉넉하지 않아서, 또는 많은 사람들의 모함으로 힘들다. 어떤 분들은 물질만 해결 된다면, 남편만 바뀐다면 목회를 잘 할 것 같다고 기도한다. 우리가 그만둬야할 것인가 고민하는 그 순간 하나님은 뒤로 물러나지 않고 고난을 이겨내기를 바라신다. 뒤로 물러나면 침륜에 빠질 것을 경고하신다. 앞으로 전진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하박국 선지자는 그런 환경 속에서 심장이 떨리고 뼈가 썩는 고통 속에서도 여호와로 인해 나는 기뻐하겠다고 했다. 성령의 12가지 열매 중 2번째가 희락이다. 환경이 주는 기쁨이 아니다. 환경을 보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니까 우리 안에 희락과 기쁨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성령충만의 결과는 열매로 나타내야 한다. 가장 성령의 충만함을 강조해야할 목회자가 환경에 넘어져서는 안 된다. 환경을 넘어서는 기쁨이 있어야 한다.

고후1:8-9 바울 사도는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으로 살 소망이 끊어질 정도였다. 그런데 이 환난이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 했다.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았다. 환경으로는 끝이고 더 이상 나는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끝의 자리에서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욥은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고 거두신 이도 하나님이시라고 했다. 이 때 욥의 모양을 보겠다. 욥2:11-13 욥의 고통이 너무도 심해서 한 마디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위문 방문이었는데 가까이 갔는데도 욥인지 알지 못했다. 세 사람이 밤낮 7일 동안 말도 못하고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아무리 목회가 힘들다고 해도 이 욥의 고통만 못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욥에 대해서 공부하자. 하나님의 관심사와 마귀의 관심사, 욥의 관심사가 다르다. 하나님과 나의 관심사가 다르고 하나님과 마귀의 관심사가 다르다. 욥은 하나님이 칭찬한 사람이다. 마귀는 이간질을 한다. 고난을 주라고 한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마귀가 욥에게 손대지 못했다. 우리의 고난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관심사는 마귀가 우리에게 올 때 우리가 의인이 되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욥은 주신 이도 하나님, 취하신 이도 하나님이라고 했다. 오늘 이 욥의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관심사는 믿음으로 살라는 것이다. 끝까지 견디는 것이다. 마귀는 환난을 통해 죽이자는 것이 관심사다. 우리는 하나님의 관심사에 따를 것인가 마귀의 관심사를 따를 것인가. 믿음으로 전진해야 한다. 욥은 결국 갑절의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 하나님은 이 축복이 관심사였다. 우리는 관심사가 고난이 없게 해달라고만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주시는 축복, 갑절의 능력과 부흥 그것이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목회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목회를 내가 한다고 하면 큰 위기에 빠진다. 목회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관리하라고 맡기신 것이다. 우리는 어떤 환경이나 어려움에도 갑절의 축복을 생각하기를 바란다. 이 어려운 과정이 결말이 아니다. 야고보서는 욥의 인내를 보라고 했다. 우리 목회자들이 지금이 고난만 바라본다면 10명의 정탐꾼과 같은 것이다. 크고 견고해서 못 들어간다고 하는 10명의 정탐꾼과 다를 것이 없다. 10명의 정탐꾼의 보고가 있자 가나안 입구에서 돌아가도록 하신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면 그렇게 회전하다가 끝난다. 목사님의 믿음이 어디를 바라보고 있느냐. 환경, 사람, 문제를 바라보는가.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 두 명의 정탐꾼은 하나님을 바라봤고 하나님이 축복해주셨다.

여성목회자들이 한국에도 가보면 교세도 약하고 그것뿐만 아니라 생각도 남자들의 생각을 따라가지 못한다. 주의 종이 됐으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주의 쓰임을 받는 종이다. 여성들은 목회할 때 사소한 일로 지지고 볶고 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 타이틀이 크다. 북미주 한인여성목회자다. 이 정도의 사이즈라면 우리의 생각도 사이즈가 커져야 한다. 교회의 사이즈는 여러분 마음의 사이즈다. 밥그릇 몇 개로 싸우는 크기가 아니어야 한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동서남북을 바라보게 하시고 보는만큼 땅을 주신다고 하셨다. 우리도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욕심을 부리라는 말이 아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한 것을 기억하자. 어떤 이는 30배, 혹 60배 혹은 100배다. 똑같은 씨앗이 떨어져서 달리 열매를 맺는다. 그릇이 30이면 30을 열매맺는다. 우리가 믿음이 그릇을 얼마나 키우느냐에 따라서 열매가 달라진다. 욥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잃었는데 거기에 관심이 없다. 다만 하나님이 이 환난으로 자신에게 무엇을 하실지 봤다. 욥의 관심사는 철저히 하나님께 있었다. 주의 종도 마찬가지다.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 것인가가 중요하다. 하나님은 나를 연단하시고 마귀는 우리를 죽이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자.

사람이 힘들게 하더라도 하나님만 보는 믿음의 사역자 되자

삼상 18:7-10을 보고자 한다. 지금까지는 극한 환경적이 이야기를 했다. 이제는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겠다. 사울은 자신이 왕인데 소년이 자기의 영광보다 더 큰 것에 불쾌했다. 우리는 사울도 될 수 있고 다윗도 될 수 있다. 단체가 모이기만하면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한다. 이것 때문에 시험 들고 이것 때문에 많이 무너진다. 승리한 것은 다윗이다. 이 사울의 마음 속에 시기질투가 들어오기 시작하니까 사울은 10년을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녔다. 3천명을 거느리며 샅샅이 뒤졌다. 잘못된 시기질투가 이렇게 사람을 만든 것이다.

엡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고 했다. 사람은 화도 낼 수 있다. ‘분을 내어도’라는 말은 사람이 시기할 수도 있고 높아지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죄짓지 말라고 했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했다. 하루해가 지나버리면 마음에 잉태가 된다. 27절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는 것이다. 미워지는 마음, 시기하는 마음, 높아지고 싶은 마음 들 수도 있지만 그것이 하루해가 지기 전에 돌이켜야 한다는 것이다. 10리 밖에서 들꽃 향기 하나로 벌이 온다. 우리 마음에 분을 품으면 사탄에게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이 사울이 다윗을 시기하던 이튿날 더욱 심해졌다. 사울이 시기했던 그 날 회개를 했다면 성공한 사람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종말을 맞았다. 다윗을 10년 이상을 쫓아다녔다. 사울이 3천명을 거느리고 다윗 한 사람을 잡으려고 찾아 다녔다. 삼상22:1 다윗이 피해서 놉에 갔다. 놉에는 제사장들이 있었다. 그런데 사울은 85명의 제사장을 죽이고 또 젖 먹는 아이와 소와 나귀 가축들을 죽였다. 시기 질투로 3천 명의 군사를 데리고 매일 같이 찾아다니고 놉 땅에 갔더니 그 곳의 제사장을 비롯해 모든 것을 다 쓸어버렸다. 이랬는데도 다윗은 사울을 죽일 절호의 기회를 만났지만 죽이지 않았다. 여러분 중에는 사울이 될 사람도 있고 다윗이 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내가 왜 시기하고 질투하면 안 되는가. 모세는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했다. 누나 미리암이 비방했다. 사촌인 고라는 모세를 크게 불평했다. 그러데 이 대적이 모세를 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라는 것이다. 성도들이 속을 썩이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기를 바란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힘들게 하는 것이다. 성도들 속 썩이는 것 주변인들이 힘들게 하는 것 신경 쓸 것이 없다. 여성 목회자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누구 때문에 누구 때문에 속상해 하는 것이다. 여기에 다 무너진다. 남성 목회자는 이 부분에서는 사실 눈도 깜짝 하지 않는다.

다윗은 자신의 손으로는 사울을 죽이지 않겠다고 했다.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고 했으니 자기 손으로 헤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울이 다윗을 괴롭혔다고 다윗이 똑같이 하면 같은 악인이 된다. 나한테 잘못했다고 똑같이 힘들게 하면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했다. 다윗이 살인죄, 간음죄를 저질렀다. 하나님이 다윗을 볼 때 그렇게 10년을 넘게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을 한 번도 미워하거나 저것을 보복해야겠구나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합한 사람이 되자. 이번 컨퍼런스 하고 나서는 누가 자신을 모함한다면 그러려니 하시기를 바란다. 저도 이 자리에 그냥 온 것이 아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우리 지방에서 우리 교회가 제일 크다. 노회에 속해 있는 교회 중 제일 크다. 그러다보니까 얼마나 시기질투를 하는지 모른다. 시기질투가 엄청났다. 교단에서도 신학부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얼마나 또 시기질투가 있었는지 모른다. 그 때 결심하기를 다윗과 같은 마음을 가지려고 했다.

고난이 가장 극심한 자리는 곧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자리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할 때 시기질투에 얽매여도 전진해야 하고, 환경이 붙잡아도 앞으로 전진해야 하고, 사람이 붙잡아도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 믿음으로 정진하는 우리 목회자가 되자. 십자가는 누구에게나 있다. 하나님은 환경을 어떻게 극복하고 어떻게 믿음으로 극복할 것인가.

하박국 선지자는 말씀하셨던 로마서에서도 갈라디아서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과연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았는지 돌아보자.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 믿음으로 살았다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다면 지금 사이즈가 크든 작든 가장 성공적인 목회자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관심사는 성도가 많고 적고가 아니다. 하나님의 큰 관심사는 우리 각자 목회자에게 있다. 나라를 존재가 바로 서면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일하신다. 관심사가 나인데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 다윗이 10년이라는 긴 세월을 시기 질투 속에서 죽음의 위기를 수차례 격어 왔다. 3천명의 군사들을 몰고 오면 다윗은 갈 곳이 없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했다. 다윗이 기도할 때 하나님은 전쟁을 일으키셨다. 블레셋 사람들이 전쟁을 일으키니 사울은 다윗 쫓기를 그치고 블레셋을 막으려 갔다. 다윗을 하나 살리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신다. 하나님의 관심사는 하나님의 의인이다. 전쟁까지 동원해서 다윗을 지키신 것이다.

분리하는 장소는 가장 힘들고, 가장 어렵고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하는 자리다. 이 곳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다윗은 시편 23편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 않는 것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신다는 것이다.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믿었다. 우리 목회는 사람을 의지하는 목회가 아니다. 환경을 의지하는 목회가 아니다. 시기질투에 무너지는 목회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고 가야 한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자.

강의 이후 기도하는 여성 목회자들.
(Photo : 기독일보) 강의 이후 기도하는 여성 목회자들.
강의 이후 기도하는 여성 목회자들.
(Photo : 기독일보) 강의 이후 기도하는 여성 목회자들.
강의 이후 기도하는 여성 목회자들.
(Photo : 기독일보) 강의 이후 기도하는 여성 목회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