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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관식 컬럼] 이기는 생활

기독일보 seattle@chdaily.com

입력 Jun 14, 2014 07:31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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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관식  시애틀 형제교회 원로 목사
(Photo : 기독일보) 심관식 시애틀 형제교회 원로 목사

로마서 8:35-37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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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넉넉히 이긴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6: 33에도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었으니 우리도 이길 수 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을 이기는 신앙 생활하는 사람도 많지만 매일매일 실패의 생활을 거듭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기는 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께로 나가야만 이길 수 있습니다. 시민이 됩니다. 특별히 대통령이 되려면 미국에서 나야만 대통령이 될 특권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자녀나 국민이 되려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중생의 은혜를 받았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참으로 되었으면 우리는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내가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한다고 자부하지만 하루를 살고 그 하루를 돌이켜 볼 때에 왜 실패하게 되는 일이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이지요. 지혜나 지식이나 어떤 방법으로 세상을 이기지 못하고 믿음으로만 이깁니다.

이 믿음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믿음입니다.

현재 교회에 다니는 이들 중에도 "우주의 대주제가 되는 신이 계실 터인데 그 신을 믿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야" 이렇게 막연하게 철학자의 사상을 가지고 나가는 이가 있습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가 계실 것이야" 하는 정도의 종교관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은 아닙니다. 언제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와 동행하고 사귀며 일체가 되는 그러한 신앙을 가진 사람만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세상을 이긴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경에는 세상이란 말이 있는데 그것은 세상 가운데 있는 사상이나 권력이나 무엇이든지 하나님을 반대하는 모든 것을 총칭해서 "세상"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하려고 할 때 이 세상은 자연히 반대입니다. 세상의 권세가 기독교를 반대했습니다. 기독교가 세상에서 널리 파급되어 나갈 때 로마제국은 기독교를 반대해서 핍박했습니다.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의 세력은 기독교를 박해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믿음은 이기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어 나오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형식화 되고 껍데기만 가지고 믿는다고 할 때 일입니다. 때는 1410년 종교개혁 좀 전에 영국의 헨리 4세(500년 전) 때였습니다. 일찍이 위대하다고 하던 것들은 이제 부패한 상태로 전락하였습니다. 제사장격인 사제는 토끼 사냥에 바쁘고, 전도사격인 사교는 회개와 순례를 팔아 별장을 살 때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참 신앙을 찾는 이들이 신교의 선구자 위클리프(Wycliff)의 영역성경 복음서를 몰래 읽는 가운데 성서의 진리를 바로 찾으려고 할 때입니다. 아직도 독단과 위선의 껍데기 속에서 교회의 종소리는 헛되이 울리고, 김빠진 찬송소리는 먼지 낀 공기 진동에 불과했습니다.

불신앙과 냉소의 집중공격으로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교회를 지킬 유일한 방편으로 이단자를 불태우는 분형령이 있었습니다. 성경을 몰래 읽었다는 일로 진실한 크리스천들이 불태워서 죽이는 스미스 필드의 사형장 뿐 이었습니다.

영역 복음서를 비밀히 읽는 모임에서 돌아온 제봉직공 바비도가 있었습니다.

그 때 순회 재판소는 교회마다 돌아다니면서 몰래 성경을 읽는 이들을 차례차례 숙청했습니다. 재봉직공 바비도는 결국 종교재판정에 끌려 나가면서 "너희들이 가진 것도 힘이요 내게 없는 것도 힘이다. 옳고 그른 것이 문제가 아니구나!" 하며 외쳤습니다.

사교는 가슴에 십자가를 걸고 재판을 시작합니다.

A: "밤이면 몰래 모여서 영역복음서를 읽었다지..."

"교회의 명령은 교황의 명령, 교황의 명령은 성 베드로의 명령, 성 베드로의 명령은 그리스도의 명령인데..."

B: "간통죄를 용서하고 대신 돈 받는 것도 그리스도의 명령이요?"

"저의 옆집 프란시스코의 처가 당장 당신한테서 지난봄에 돈을 주고 그런 판 결을 받지 않았습니까?"

A: "얼마든지 살 길이 있는데 구테어 죽음을 택하는 그 심사를 모르겠구나?"

B: "산다는 것과 존재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당신 같이 썩은 사람은 소 용이 없어요."

정색을 하면서 A "할 말은?" B: "별로 없어요. 다만 이런 세상에 태어남을 슬퍼합니다."

스미스필드의 사형장에 사람이 구름 같이 모여 들었습니다. 런던 시민뿐 아니라 시골에서까지 사람이 사람을 불에 태워 죽이는 구경을 하려고 봇 따리를 꾸려 들고 왔습니다.

드디어 여론을 생각한 헨리가 사형장에 나타났습니다.

H: "바비도. 나는 너를 구하러 왔다. 너도 사람인 이상 죽고 싶지는 않을 테지!"

B: "구태여 죽고 싶지도 않지만 악착같이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우선 조상 헨리 2세만 하더라도 사냥터에서 쓰러진 형의 시체를 그냥 버리 고 급히 돌아와 왕위를 가로채지 않았는가요? 그 덕분에 자자손손이 영화를 누리고 당신도 그 악의 혜택으로 일국의 태자가 되지 않았소. 앞으로는 폐하가 될 것이 아니오? 나는 대대로 가난한 집에 태어났소. 이 손을 보시오. 내가 걸어온 길이 오히려 즐거운 길이었습니다. 이 길을 그냥 가렵니다."

H: "할 수 없구나! 법은 법이니까." 불을 싸지르게 하라.

H: "바비도, 누가 옳고 그른 것은 논하지 말라. 하여간 네 목숨이 아깝구나!"

B: "감사합니다."

H: "마음을 돌렸느냐?"

B: "그 뜻은 잘 알겠습니다만 이미 동정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닌가 합니다."

H: "도저히 안되겠느냐?" 다시 연기는 거세게 올라갑니다.

바비도는 진리를 찾고 억압에 지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이긴다는 것은 진리를 위해서 굽히지 않는 믿음이 있다는 말입니다. 일방으로 오는 위협이나 유혹에도 지지 않고 바른 길, 옳은 진리를 위하여 당당하게 하나님을 위하여 나가는 사람을 승리자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진리로 이기는 생활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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