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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오 칼럼] 사랑의교회 사태 해결을 위한 제안

기독일보 seattle@chdaily.com

입력 Jun 03, 2014 01:10 P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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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오 목사  ©미국 시온루터교회정진오 목사 ©미국 시온루터교회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가 305년 당시 기독교인들의 거룩한 책인 성경을 몰수하여 불태우라는 칙령을 내렸다. 특별히 이것은 성직자나 교회 지도자들에게 해당되었다. 일부 성직자들은 이 명령을 거부하여 감옥에 갇히거나 순교당하였고, 일부는 이 칙령을 받아들여 성경을 붙태우도록 넘겨주었는데, 이들을 소위 '배교자'(traditor)라고 불렀다. 이 당시 성경을 넘겨주는 것은 예수를 배신한 가룟 유다와 같이 기독교에 대한 배신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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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가 끝나고 교회 내에 한 가지 질문이 생겨났다: 이 배교자들이 자신들이 한 행위를 회개하고 다시 교회로 돌아올 수 있는가? 배교자 성직자들이 다시 세례와 성만찬과 말씀 선포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가?

이를 두고 카르타고 감독이었던 도나투스(Donatus)는 교회는 이런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배교자들이 포함되어 있는 교회는 하나님이 떠난 교회이므로 참 교회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런 배교자로부터 세례를 받거나 가르침을 받는 것은 무효라고 생각했다.

이 문제와 연관하여 교회는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뉘게 되었다. 도나투스의 주장에 찬성하는 자들은 엄격한 교회 규칙의 적용을 통해 교회의 순결성을 지키고자 했다. 반면에 당대 가톨릭 교회는 '교회의 연합'이라는 측면에서 도나투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양 그룹은 모두 초대교회 유명한 교부인 키프리안(Cyprian)의 저술 '가톨릭 교회의 연합'(Unity of the Catholic Church, 251)에 의존하는데, 이 저술에서 키프리안은 다음의 두 가지 믿음의 조항을 강조한다. 첫째 교회의 분열은 어느 경우를 막론하고 정당화 될 수 없다. 둘째, 신앙을 잃어버리고 타락한 성직자들은 성만찬 집행이나 가톨릭 교회 목회 사역의 모든 권한을 박탈당해야만 한다.

도나투스주의자들은 키프리안의 두 번째 조항에 근거하여 교회의 순결성을 강조한 반면, 가톨릭 교회는 첫 번째 조항에 의존하여 도나투스주의자들을 교회 분열을 꾀하는 자들이라고 비판했다. 이렇듯 교회는 배교한 성직자 문제에 관해 두 진영으로 나뉘어 오랜 시간 동안 대립했다.

이러한 대립은 초대 교회를 집대성한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에 의해 해결되기에 이른다. 어거스틴은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는 완벽한 교회로서가 아니라, 순례자의 교회라고 주장했다. 어거스틴에 의하면, "낯선 땅을 순례하는 순례자처럼 교회는 세상의 박해와 하나님의 한 복판에서 앞을 향해 나아가며 주님이 오실 때까지 십자가를 선포하는 순례자"라고 말한다.

어거스틴은 노아의 방주와 베드로의 그물 안에는 깨끗한 동물들뿐만 아니라 더러운 동물들 모두 그 안에 있었음을 말하면서, 도나투스 교회나 가톨릭 교회 양쪽 모두 죄인들이 있음을 지적했다. 또한 마태복음 13장 가라지 비유를 들어 도나투스파가 주장하듯이 교회는 '오직 성자들만의 모임'이 아니라 '성자와 죄인들이 모두 섞여 있는 모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에게 있어 교회의 거룩성은 성직자와 교인들의 삶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순결함에 기초한다. 그래서 사도 신조에 나오는 '거룩한 공회' 라는 말은 우리가 선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거룩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거룩함은 마지막 심판 때에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완성된다.

지난 5월 13일 MBC PD 수첩은 사랑의 교회 서초동 예배당 신축과 관련된 재정 유용 의혹 및 정관 개정 논란과 오정현 담임목사의 논문표절 논란 등에 대해 집중 조명했다. 방송 후 사랑의 교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방송사에 허위사실을 제보한 사람과 방송에서 거짓된 진술을 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다."라며 반발했다.

최근에 '사랑의 교회' 문제는 현대판 '도나투스 논쟁'이라고 볼 수 있다. 한쪽에서는 초대 교회 도나투스파처럼, 논문 표절과 재정 유용 의혹으로 얼룩진 목회자를 배교자로 규정하며, 그의 목회적 직무는 무효라고 주장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이런 주장을 따르는 자들이야 말로 교회를 분열시키고 혼란하게 만드는 분리주의자라고 비판한다. 한쪽은 성직자의 순결성을 다른 한쪽은 교회의 연합을 주장하니 가히 초대 교회의 '도나투스 논쟁'의 재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이에 필자는 양쪽 그룹 모두가 다시 한 번 어거스틴의 신학적 진술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란다. 어거스틴의 말처럼, 교회는 성자들만의 모임이 아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는 성자와 죄인들이 함께 섞여 있는 모임이다. 그렇기에 때로 다툼과 논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의 법정에 상대를 고발하고, 언론에 호소함으로 그 정당성을 인정받아 교회가 순수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나만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참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순결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분에게만 있다. 그것은 마지막 심판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실 일이다. 그 전까지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만 주어졌을 뿐이다.

오늘날 어거스틴이 살아있다면 현 사랑의교회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두 가지를 제안하리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먼저 교회 안에 있는 나도 죄인임을 깨닫는 것, 우리 모임은 순수한 성자들의 모임이 아니라 죄인을 포함하는 모임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럴 때 상대의 비판적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고, 인간적인 욕심과 탐심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아 알 수 있다.

둘째로 세상의 법과 권위에 호소하여 교회 내 분쟁을 해결하기 보다는 노회와 총회 내 교회 회의를 통하여 사태를 해결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기독교 역사는 교회 회의를 통하여 수많은 논쟁과 문제를 해결해 왔음을 말해준다. 물론 현 한국 교회의 노회나 총회의 제도가 이런 사태를 해결하기에 다소 미흡한 점이 있다.

미국 루터 교회가 4년 임기의 총회장과 노회장을 두고 개교회 보다 총회나 노회의 시스템 중심인 반면, 한국 교단의 일년 임기의 노회장이나 총회장은 사실상 명예직에 가깝기 때문에 교회 내 갈등을 해결하기에 제도상 다소 역부족한 면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회나 총회가 사태를 관망하기 보다는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사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또한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교회 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교회 회의 등의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계기도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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