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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칠곤 컬럼] 무지(無知)와 편견

기독일보 seattle@chdaily.com

입력 Jun 02, 2014 09:01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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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로드 한인교회 김칠곤 목사
크로스 로드 한인교회 김칠곤 목사

한 달에 한번씩 교회에서 모이는 정원 가꾸기를 위한 여성 그룹이 가정의 달을 맞이 하여 오월 첫주 토요일 날, 야채 모종과 식물들을 교회 앞마당에서 판매를 했다. 아내와 나는 새벽예배를 마치고 야채 모종 한 것을 판매하려고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이 전시해 놓은 야채 모종은 아주 다양했다. 그중에 그래도 관심을 가졌던 것은 상추와 콩나무 였다. 그것에 관심을 가진 우리 부부는 상추 몇 그루와 콩나무 두 그루를 사가지고 집에가면서 차 속에서 기대감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것은 올 여름에는 우리 손으로 가꾼 상추가 자라면 그것을 따서 상추 쌈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기대 심리로 정원에 모종한 상추를 심어 놓았다. 아침 저녁으로 상추가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열심으로 물을 주었다. 그런데 상추를 심어놓은 이튼날 아침에 상추에 물을 주려고 하는데 상추 잎에 작은 구멍들이 나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이 하루 하루 지나면서 상추 잎들의 면적이 적어지고 나중에는 상추라고 볼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 이유는 해가 떨어질 때면 달팽이들이 땅 속에서 기어 나와 밤새 이슬을 맞으며 상추를 식량삼아 먹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달팽이들은 상추에 열심히 물을 주며 기대감을 가진 나의 작의만한 꿈을 망가지게 한 것이다. 그것들이 나에게 더 미움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사람이 곤하게 잠자는 어두움 가운데 나왔가 아침이 되면 사라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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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미운 달팽이는 상추 몇 그루를 심어 놓은 중에 반을 망가뜨려 놓았다. 망가진 상추를 보면서 상추에게 물을 주는 일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달팽이를 어떻게 잡느냐는 것이며, 한 두개 그루만 남은 상추에 정성을 쏟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한 마음이 생긴것은 특별히 물이 많은 시애틀에서 야채를 정원에서 어떻게 가꾸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이다. 참으로 나는 농사에는 무지(無知)한 사람이었다.  아무런 방법도 모르고 상추 모종을 달랑 정원에 심어 놓고 물만 주면 상추가 아무 탈없이 잘 자랄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농사에 무지한 나는, 나의 힘으로는 상추 하나 가꿀 수 없는 사람이라는 여기 었으며, 물을 주려고 하는 것을 포기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나의 무지에 의한 편견과 포기하려하는 마음을 극복하게 되었다. 그것은 주일 예배후에 성도들과 한 주 동안 삶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중 정원에 야채를 심어 놓은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우리 부부의 이야기를 듣던 권사님 한 분이 "사모님 상추를 심은 주변에 소금을 뿌려 놓으세요", "그러면 소금을 먹은 달팽이가 녹아서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듣고 아내는 저녁에 상추가 심겨진 주변에 소금을 뿌려 놓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정원에 가 보았는데, 거짓말 같이 달팽이들이 녹아서 형체가 없어졌다. 그 후로 상추가 달팽이들의 방해 없이 잘 자라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고 다시 상추에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었다. 작은 지식으로 마음속에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었다. 이것을 보면 "안다는 것은 힘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반면에 "무지는 인간의 가장 나쁜 친구임에 틀림이 없다."

나 자신의 무지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극복하는 지혜를 가진다면 그 사람은 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칼지브란의 말에 의하면 "만일 내 무지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았다면 나는 현인이 되리라."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지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살아갈 뿐 아니라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식속에는 편견이 많다. 이것을 두고 윌리엄 해즐리트는 "편견은 무지의 자식이다."라고 주장 했다. 이러한 편견이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너무나 쉽게 평가한다. 그리고 섣불리 사람들을 판단할 뿐 아니라 지나친 편견의식을 갖는다. 나중에는 처음에 가졌던 생각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자신이 판단의 오류에 빠져 있음을 알게 된다. 그 이유는 어떤 물체를 입체로 보지 아니하고 단면만 보고 이야기를 했다는 생각에 의한 것이다. 편견에 사로 잡히면 사리를 분별 할 수 없으며 무슨 일을 하든지 성공적으로 마무리를 할 수 없다. 옛날 어떤 마을에 장님들만 살고 있었다. 하루는 길을 걸으면서 이 마을의 여섯 사람들이 코끼리를 타고 오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이 여섯 사람들은 코끼리에 대해 한번 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 사람들의 바람은 그들이 마을로 돌아갈 때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 주고 싶은 마음에 코끼리 주인에게 부탁하여 코끼리를 만져 보았다. 주인은 그것을 허락하였고 코끼리를 만져 본 사람들은 그후에 마을에 돌아왔다. 그런데 코끼리에 대해 여섯 사람들의 이야기가 각각 달랐다. 코끼리 옆구리를 만진 사람은 "코끼리는 광대하고 두꺼운 벽 같이 생겼다." 코끼리의 이빨을 만진 사람은 "코끼리는 짧고, 둥글고, 매끄럽지만 날카롭다."코끼리의 귀를 만진 사람은 "그것은 벽이나 창하고는 전혀 같지 않다. 차라리 두꺼운 털 양탄자 같은 것으로 만든 거대한 이파리 같다. 그것은 손만대면 움직인다."

코끼리 코를 만진 사람은 "그것은 커다란 뱀과 같다." 코끼리 다리를 만진 사람은 "그것는 나무처럼 둥글고 두텁게 생겼다." 코끼리를 타본 사람은 "코끼리는 확실히 커다란 움직이는 산처럼 생겼다. " 그들은 열심히 코끼리에 대해 토론을 나누었지만 여섯 장님은 아무도 코끼리에 대해 정확히 설명한 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코끼리의 단면을 전부인 것처럼 설명했기 때문이다. 단면을 전체로 생각하는 그들은 코끼리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무지이다. 이러한 무지와 편견으로 사람을 보게 되면 큰 오해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이 무지하게 되면 무서운 것이 편견과 오해로 상대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한다. 성경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창기였기에 예수님 당대에 유대인들 속에서 간음한 여인으로 무시 받으면서 살았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님이 구원자로 믿고 죄 사함을 받았으며, 그리스도 부활을 목격하고 증거한 첫 증인이 되었다. 이와 반면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보고 줄 행랑을 쳤다. 무지는 사람을 외모로만 평가하는 편견을 가지게 된다.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편견에서 벗어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약2:1) 그리고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것을 야고보 기자는 죄라고 말한다.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약2:9) 성경에서는 알고 짓는 죄나 모르고 짓는 죄 둘다 죄(罪)라고 규정한다. 나의 자신의 무지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으로 부터 용서함을 받을 뿐 아니라 보다 나은 객관적인 시각에서 나 아닌 타인을 바라보고 이해하며 사랑할 수 있다.

크로스로드 한인교회 김칠곤목사 문의전화)425-773-9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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