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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말레이시아 오지 선교사로 헌신해 온 배광영 목사, 애틀랜타에서 새로운 꿈을 꾼다

기독일보 박현희 atldaily@gmail.com

입력 May 27, 2014 08:10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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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란타 교회를 가다-89] 30대 열정을 다한 곳을 떠나 40대 후반 아브라함처럼 부르심에 순종해 미국으로...C&MA 열방교회 배광영 목사

열방교회 배광영 목사
(Photo : 기독일보) 열방교회 배광영 목사

목회를 하면서 누구나 책 한 권은 쓸 만큼 사연이 많을 테지만 말레이시아에서 16년을 사역하며, 현지인보다 더 그 나라를 사랑했던 열정의 선교사였던 배광영 목사(열방교회)가 미국까지 오게 된 이야기는 정말 '구구절절'했다. 그 속에는 밝은 미소와 비례해 가슴 아픈 사연도 많았다. 하지만 절망하지 않는 것은, 그래도 웃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지예정 가운데 그를 이끄시며, 가장 적당한 때에 가장 적절하게 사용하실 것을 믿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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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약속 시간은 평일 밤 9시 45분.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가 아니면 만나기 쉽지 않은 늦은 시간이었다. 약간 의아했지만 개척교회 목사가 그렇듯 일을 하신다고 해서 그 시간에 흔쾌히 만남의 장소로 갔다. 모두가 편안히 쉬고 잠드는 시간, 배광영 목사와 사모가 밝은 미소로 기자를 반겼다.

1996년 말레이시아로 파송된 배광영 선교사 부부는 나갈 때만 해도 말레이시아가 '이슬람 국가'라는 것 정도 밖에는 알지 못했다고 한다. 대학교 4학년 때 선교사로 헌신하고 부르심을 받은 그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선교사로 나가고자 했지만 집안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공부를 할 때 더 해야 한다는 권유에 대학원을 다니며 부교역자 생활을 하던 중, 대학 선배로 말레이시아 사역을 하던 이규석 선교사의 권유로 말레이시아 행을 결정했다. 수도가 있던 서말레이시아에는 한인 선교사가 여럿 있었지만, 동말레이시아는 단 두 명의 선교사만 있었다고 한다.

팀 사역으로 한인교회는 이규석 선교사가 현지인 교회는 배광영 선교사가 맡게 됐는데, '백가이버'라고 불릴 정도로 손재주가 좋은 그는 현지인 교회와 신학교 건축은 물론 이발, 수지침, 종기 수술 등 전천후 사역자로 자신에게 허락하신 달란트를 200% 활용하며 신나게 사역을 했다.

"집에서 최소 5-6시간 들어가야 하는 오지에서 주로 사역을 해서, 한번 나가면 한 달은 기본이고 두 세 달에 한번씩 집에 들어갔어요. 막내가 중학생 때는 '아빠가 있기는 한데 어디 있냐?'고 물을 정도로 가정은 집사람이 거의 돌봤죠. 한인 선교사님들이나 교회들이 현지에서 그간 실수한 부분이 있다면 교회를 '짓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봐요. '왜 교회가 그 지역에 필요한가', '현지인들이 정말 간절히 원하는가' 이런 부분이 건축 이후에 정말 중요합니다. 현지인들의 수고나 간절한 필요 없이 교회가 건축되고 나면, 이후에 부흥은 요원하고 선교사가 올 때만 반짝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교회 건축 요청이 들어오면 먼저 왜 교회 건축이 필요한지 현지인들과 함께 리서치 하고, 건축비를 100퍼센트 다 후원 받을 수 있어도 70-80퍼센트만 후원 받고 나머지는 현지인들이 감당하도록 했습니다."

배광영 선교사의 방식은 잘 맞아 떨어졌다. 수동적으로 주는 것을 받기만 하고, 주어지는 것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던 이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돌을 쌓고 옮기고 하는 과정을 통해 교회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도 함께 쌓아갔다. 그의 열정과 헌신을 알아본 현지 자체교단인 '보르네오복음적인모임', SIB 교단에서 그를 정식 목사로 받아들여 건축과 오지 개척에 힘을 실어 줬다.

"보통 외국인 선교사들이 와서 나름대로의 방식대로 선교하다 보면 정말 현지인들이 필요한 걸 모를 수 있어요. 그런데 뿌리가 깊은 자생교단에 들어가고 보니, 현지 교단과 협력선교를 하면서 정말 그 나라와 민족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런 부분들을 도울 수 있었지요. 동시에 제 나름대로 사역도 펼칠 수 있었습니다. 현지 교단에 소속돼서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기 보다는 오히려 이들이 저의 보호막 역할을 해줬기 때문에 다른 선교사님들보다 더 오랫동안 안전하게 사역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교단 초청 한국인 파트너 목사로 종교비자를 처음 받게 됐습니다."

그러나 2007년부터 비자 리뉴를 해주지 않고 질질 끌던 말레이시아 정부는 급기야 2010년 입국심사에서 꼬투리를 잡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미국과 관계가 돈독해지는 시기였던 말레이시아는 외부적으로는 종교비자를 거절하지는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비자 리뉴를 해주지 않아 발을 묶으려던 심산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2010년 한국의 주(主) 파송교회에서 건축으로 재정이 힘들어 지면서 후원이 끊기면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현재, 104넌 벤처드라이브 선상의 오피스 건물에서 열방교회를 개척하고 있는 배광영 목사 가정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롭고 안정되어 보이는 미국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지치고 힘든 영혼들이 너무나 많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 역시 '신생 미국 이민자'로서의 고군분투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다시 말레이시아로 보내실지 미국에서의 사역을 이끄실지 아니면 제 3의 길로 인도하실 지... 소망의 끈을 꽉 붙들고 있다.

"2011년부터 SIB교단에서 저에게 다른 지역을 맡겨줘서 새로운 사역을 구상하던 중이었는데, 주 파송교회의 후원중단에 사역을 중단할 수 밖에 없어 많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계획 가운데 저희 가정을 미국 애틀랜타로 옮기셨고, SIB교단 총회장 목사님도 하나님께서 너희를 잠깐 미국으로 옮기시는 것이라면서 위로를 해주셨어요. 하지만 아직도 왜 저를 이곳에 보내셨는지 의문입니다(웃음). 30대의 열정을 다한 말레이시아를 떠나 40대 후반에 미국에서 다시 시작하는 저희 가정에 하나님께서 두신 계획을 찾아 나가길 소망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C&MA 소속 열방교회에 대한 문의는 678-789-5468, sayaze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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