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위의 바이올린 (fiddler on the roof)이란 뮤지컬 영화를 보면, 첫 장면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리는 어떻게 균형 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해 한 가지 답을 말해 줄 수 있다. 전통 (tradition)이다. 전통 (tradition) 때문에 우리는 오랫동안 균형 감각을 유지해 올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에 전통을 갖고 있다. 어떻게 잠을 자고, 어떻게 음식을 먹으며,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하는지에 대한 전통들이 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언제나 머리에 키파(Kippa)를 쓰고, 탈릿(Tallit)이라는 속옷을 입는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변함없는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 그러면 당신들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유대인들의 전통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극중의 대사는 이렇게 답한다. “I don’t know. . . . 그러나 만약 우리에게서 전통을 제해버리면 우리의 생활은 심각하게 흔들릴 것이다. 마치 지붕 위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악사처럼,” 그리고 극중 장면은 지붕 위에 선 유대인 악사는 위태롭게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흔들흔들 흔들거리면서,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한 장면
(Photo : 기독일보)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한 장면

극중 대사는 ‘만약 전통을 제해버리면, 유대인들의 삶은 심각하게 흔들릴 것’이라 표현하지만, 사실 그들에게서 전통을 제해버리면 남는 것은 없다. 아무것도 없는 꽝. 그래서 유대인들을 유지하는 힘은 전통인 것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이 율법에 집착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율법이 아닌 전통에 집착한다. 율법과 전통은 같지 않다. 율법과 전통을 혼동했던 1세기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모세의 율법을 무시(폐지)하는 것으로 오해했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라 (마 5:17)’고 말씀하셨다.

1세기 유대인들은 율법이 아닌 그들 조상들의 전통에 깊이 매여 있었다. 그들의 오래된 전통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데 실패한 것이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전통에 대해 마가복음 7:1-23절에서 잘 말씀해 주셨다. 마가복음 7장에서 유대인들의 전통은 장로들의 유전(3절),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4절), 장로들의 유전을 준행치 아니하고(5절), 사람의 유전(전통)(8절), 너희 유전(9절), 너희의 전한 유전(13절)으로 표현되었다. 유대인들이 전통을 포기하는 것은 곧 유대인임을 포기하는 것이다. 전통을 버려 스스로 유대인임을 포기하는 것은 다시 말하면, 그들이 비로소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첫 걸음을 떼는 것이다.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이 없는 한, 그런 일은 유대인들로부터 자발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바울은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은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고 율법사였다. 그는 스스로 유대인의 잘못된 전통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강권적 개입으로 유대인에게서 하나님의 택정함을 입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고 사도가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복음을 더욱 복음답게 전하기 위해서 유대인들의 잘못된 전통도 아는 것이 좋을 거 같아 유월절의 한 전통을 소개한다.

유대인들은 유월절 만찬에서 왜 네 잔의 포도주를 마시는가?

2014년 4월 15일부터 21일까지는 유대인들의 유월절이다. 해마다 유월절을 맞으면 온 이스라엘 나라가 들썩인다. 유월절 절기를 준비하는 때문이다. 유월절 첫날 유대인들은 세데르 (Seder)라는 유월절 만찬에 참석한다. 예수님도 유월절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나누셨는데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었다: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으로 유월절을 잡수시게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예수께서 제자 중에 둘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어디든지 그의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 그리하면 자리를 베풀고 예비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나가 성내로 들어가서 예수의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 (막 14:12-16).

유월절 만찬에서 유대인들은 네 잔의 포도주를 마신다. 그들이 네 잔의 포도주를 마시는 이유가 있다.

랍비 예후다 프레로 (Rabbi Yehudah Prero)의 해석이다. 유대인들이 유월절 만찬에서 네 잔의 포도주를 마시는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출애굽기 6:6-7절에 기초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내며 그 옥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줄 너희가 알지라.

위의 두 절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속하신 것을 서로 다른 표현으로 네 차례 말씀하신 것에 기초하여 그들은 출애굽을 기억하면서 네 잔의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다.

네 잔의 포도주를 마시는 또 다른 해석도 있다. 유월절 밤에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민족과 국가의 탄생을 기억한다. 그날 유대인들은 그들의 조상들에 대한 하가다 (Hagadah)를 읽는다. 아브라함은 본래 우상을 섬긴 사람이었다. 그의 아들 이삭에게는 야곱과 에서 두 아들이 있었다. 그리고 야곱과 그의 아들들은 인생의 말년을 이집트에서 보냈다. 이같이 유대인들은 유월절 밤에 아브라함부터 이스라엘 국가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들을 읽지만, 그들의 어머니들이 이스라엘 국가 시작에 기여한 내용들은 읽지 않는다. 그래서 유월절 밤에 네 잔의 포도주를 마시므로 각각의 네 어머니들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포도주는 사라를 기억하며, 거룩한 날에 대한 키두쉬 (Kiddush)를 암송하며 마신다. 키두쉬에서 유대인들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셨는지를 읽는다. 이 부분에서 유대인들이 기억하는 사라는 이전에 우상을 숭배했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전파한 여인으로 기억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포도주는 이스라엘 국가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에 마신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어떻게 우상을 숭배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에 대해 읽는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어떻게 자라고 장성했는지도 읽는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이 리브가의 삶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리브가는 우상을 숭배하던 가정에서 태어나 이스라엘의 한 어머니가 된 것처럼 두 번째 포도주는 우상 숭배적 배경에서 태어나 성결한 민족의 어머니가 된 리브가를 기념하며 마시는 것이다.

만찬을 마친 후에 유대인들은 라헬을 기억하며 세 번째 포도주를 마신다. 라헬은 요셉의 어머니이다. 이집트 온 땅에 극심한 흉년이 계속되는 중에 생계 유지를 했던 것처럼,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국가를 유지했던 한 어머니로 라헬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포도주는 할렐 (Hallel)을 마친 후에 마신다. 할렐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말한다. 레아는 유다를 낳은 어머니이다. 유다를 낳은 레아는 고백하기를,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창 29:35).’ 왜 레아는 첫 번째 아들, 두 번째 아들도 아닌 네 번째 아들을 낳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는가? 물론 각각의 아들들을 낳았을 때에도 레아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지만 특히 네 번째 유다를 낳았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아들을 얻게 되었음을 레아가 알게 되어 이를 두고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레아는 유다를 낳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는데, 이것이 유대인들이 유월절 만찬에서 네 번째 포도주를 마시는 이유이다. 마지막 포도주는 유대인들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는지를 레아가 가르쳐 준 때문이란 것이다.

이주섭 목사.
(Photo : ) 이주섭 목사.

이주섭 목사는 성경의 사실적 배경 연구를 위해 히브리어를 학습하였고, 예루살렘 대학과 히브리 대학에서 10여년에 걸쳐 이스라엘의 역사, 지리, 고고학, 히브리인의 문화, 고대 성읍과 도로를 연구한 학자이다. 그는 4X4 지프를 이용하여 성경의 생생한 현장을 연구하기도 했다. 문의 jooseob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