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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칠곤 컬럼] 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기독일보 seattle@chdaily.com

입력 Apr 15, 2014 01:01 P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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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로드 한인교회 김칠곤 목사
크로스 로드 한인교회 김칠곤 목사

 "꽃의 생명은 아름답다"라는 말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볼때 아름다움이란 고어로 알움답다 이며 알(씨)이 움(싹)을 틔워 그 답게 되었다는 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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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가 싹을 틔워 꽃을 피우는데 각기 자신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내는 데 있어서 너무나 다양하다. 그리고 각각의 꽃들 마다 독특한 향과 다른 색깔들을 뽑내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창조하심은 정말로 놀랍고 위대하다. 4월은 계절중에 꽃의 계절이며, 여왕의 계절이며, 화사함과 생명의 놀라움을 볼 수 있는 축복의 달이다.

꽃들의 다양함과 아름다운 색깔을 보면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기 위해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주말 나들이를 하기로 마음먹은 곳이 마운 버넌(Mount Vernon)의 튜울립 축제였다.

행복한 하루를 누리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둘러 튜울립의 축제를 보기 전에 삶을 나눌 기쁨의 사람들과 함께 밝은 아침 햇살이 비추이는 농장 하우스(Farm House) 의 창가 옆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면서 아침식사를 했다. 레스토랑 안에서 친구들과 가족들이 그룹을 지어 식사가운데 대화를 나누는 웅성거림이 소란스러운 것이 아니라 잔잔한 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식사할 자리가 없어 대기석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어느 하나 서두르거나 자신의 자리를 잡기 위해 리셉션 리스트에게 재촉하지 아니하는 평온함과 한가로움의 여유를 보게 되었다.

기분 좋은 아침의 시작이 튜울립을 보는데도 신나게 하였다. 튜울립 축제를 보기 위해 지난 수년동안 몇차례 갔었지만 갈때 마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추워 많은 고생을 하였는데 그날 따라 햇살이 너무나 따스했으며 꽃을 보는 마음도 풍성하였다.

튜울립은 빨간, 노란, 자주, 하얀, 주황, 짙은 보라, 옅은 보라 색깔이 마치 도화지에 그림을 수채화로 그려 놓은 것 같았다. 색깔을 내며 줄지어 놓여 있는 튜울립을 동서남북 각기 다른 방향에서 사진을 찍어보았는데 방향에 따라 아름다움이 다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튜울립에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으려고 할때 마다 꽃 하나 하나가 미소를 지으며 방긋 방긋 웃는 것 같았다.

자신의 모습들을 가장 밝은 표정으로 하고 있는 꽃들과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꽃 밭의 고랑이에 앉아 남녀 노소, 나이와 상관없이 튜울립 꽃에 얼굴을 맞대고 하나의 작품을 만들려고 하는 모습들이 정말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더욱이 마음이 기뻤던 것은 아내가 꽃을 보면서 행복의 기쁨을 만끽하는 것이 얼굴에 가득하였다.

수 많은 사람들과 사랑하는 아내가 꽃을 보면서 기뻐하는 것을 볼때 한 가지 하나님이 나의 마음속에 주신 영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꽃은 가지는 것이 아니라 보고 느끼는 것이란 마음이다.

'4월에 피는 튜울립의 꽃은 사람들이 항상 가질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잠시 잠깐 꽃이 피어 있는 동안 꽃을 보는 사람이 그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며 아름다움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이다. 그리고 꽃의 기억이 사라지고, 꽃이 그리워 질때가 되면 그 다음 해의 봄철에 다른 삶의 환경과 다른 삶의 시각을 가지고 꽃을 바라보며 생명의 아름다움을 다시 느끼는 것이다.

튜울립 색깔의 아름다움의 정취에 젖어 집에 돌아오는데 시골 길들의 농장사이에 자라는 풀 하나까지도 멋있게 느껴졌다. 이러한 느낌을 더 간직하기 위해 아내와 자주 가는 공원에 갔는데 그곳에는 벗꽃들이 길 따라 하햫게 피워 있었고 어떤 벗꽃들은 바람에 의해 아스팔트 바딱위에 눈 송이가 떨어진 것처럼 떨어져 널려져 있었다.

길가에 떨어진 벗꽃을 바라보면서 또 다른 영감을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실존주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꽃은 피고지는 과정에서 형상들이 보여지는 것을 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본다면 꽃의 실체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꽃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아마도 허무함과 실존의 한계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꽃에 의미를 두는 사람은 "꽃이 지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꽃은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한 채로 겨울 속으로 걸어가는 것이다"라고 이야기 한다. 필자는 벗꽃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한 차원 다른 시각에서 생각해 보았다. '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내려 놓은 것이다."자신을 내려 놓은 것은 다음 해에 꽃을 피우는 나무에서 또 다시 나무 가지들의 싹에서 튀어나올 꽃들을 위해 다가올 계절을 준비하는 것이다. 인간의 삶도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이 되었으며 이러한 시각에서 인생을 바라본다면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가고 늙어지며 육신이 약해져 병이들어 죽는다 해도 인생은 결코 슬프거나 허무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 쉽게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에 의해 죄 사함을 받고 영원히 천국에서 살 수 있는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다.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지금도 영원히 살아계신 주님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의 한 육신이 이 땅에서 죽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 자신을 내려 놓은 것이다.'그 이유는 뿌리를 둔 나무가 해 마다 꽃을 내는 것처럼 예수안에 살아가는 가정에 한 세대가 죽어도 또 다른 세대에게 축복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영적인 시각에서 나 자신과 주님을 바라본다면 나의 존재는 언젠가 사라져 흙으로 돌아가 부패하며 실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이 땅에서 내려놓고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토록 존재하는 영혼으로 살아가는 소망을 갖는 것이다.

이것을 더욱더 간직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부활의 산 소망을 가지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고전15:13,14) 부활의 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면 부활의 열매를 거두는 축복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부활의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황무지와 같은 힘겨운 삶을 이겨내어야 한다. 특별히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부를 가지면 마음에 안정과 행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앞 만 바라보고 살아가야 하는 이민자들이 진정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은 자신의 신념과 힘이 아니라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면 길히 막히고 보이지 아니하는 황무지를 만나게 되면 좌절과 절망가운데 넘어 질 수 밖에 없으며 그 속에서 허무와 염세주의를 느끼며 살아간다.

부활의 산 소망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꽃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사라지는 것처럼 자신의 존재적인 가치를 소중히 여기지 아니할 것이다. 하지만 부활의 산소망을 가지는 사람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존재의 가치에 대해 감사하며 자신을 기쁨으로 내려 놓을 것이다.

크로스로드 한인교회 김칠곤목사 문의전화)425-773-9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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