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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칠곤 컬럼] 분노의 벽을 부셔라

기독일보 seattle@chdaily.com

입력 Apr 11, 2014 11:19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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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로드 한인교회 김칠곤 목사
크로스 로드 한인교회 김칠곤 목사

계절 변화에 따라 사람들이 계절을 대하는 삶의 방식이 달라야 하는데 인생의 계절도 이와 같다고 본다. 가정에서 자녀들과 함께 했던 분주함의 세월이 있었다면 이제는 자녀들이 멀리 공부하러 떠나 보낸 인생의 계절속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자녀들이 없는 공간을 채우기 위해서 뭔가를 하기로 했다. 그 중에 하나가 시간이 날때마다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는 것이다. 많은 영화들이 각각 목적을 가지고 시대의 삶을 표현해 놓았지만 그것들 중에 하나를 소개 한다면 1940년에 만들어진 영화로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이다. 이 영화는 흙 백의 영화이기에 요즘 나오는 영화보다 더 인간적이며 옛날 어린시절을 회상하게 하는 가정을 위한 드라마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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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내용을 보면 1930년대 초반 미국의 경제공황의 시대이다. 부자들은 50-70년동안 한 평생을 어린시절 부터 농장을 경영해온 농부들의 땅을 모조리 사들였을 뿐 아니라 가난하며 하층민들의 삶의 터전을 강제로 빼앗는다. 농부들은 트랙터의 등장으로 노동력을 빼앗기고, 집을 빼앗기고, 한 조각의 희망이던 땅 마져 빼앗긴다. 주인공은 오클라호마 주에 살던 조드 일가이며 감옥에간 아들 톰이 가석방이 되어 고향에 돌아온다. 그때 먹을 것이 없던 조드 일가가 캘리포니아 농장에 800명의 일꾼이 필요하다는 광고를 보게 되고 가족 전부가 이주를 위해 고물 트럭을 75불에 구입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캘리포니아도 떠난다.

돈을 벌기 위해서 떠나지만 그 과정속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신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할아버지는 평생을 한 곳에서 농사만 지으면서 살아 왔는데 그곳을 떠난다는 것이 괴로워 분노의 감정을 갖게 된다. 할아버를 자녀들이 술을 먹여 취하게 한후 트럭에 모시고 가기 이전에 자녀들에게 이런말을 했다. "이 곳은 내 고향이고 내 땅이야!", "쓸모 없는 땅이어도 내 땅이다." "나는 이땅에서 죽을 것이다."라고 한다. 할아버지가 분노한 것은 가진자 들의 횡포로 인해 자신의 삶이 방해함을 받는 다는 것에 의해 분노한 것이다. 누군가 한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킬 가능성을 앗아가 버린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분노를 하게 된다. 이러한 분노의 표출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술에서 깨어난 할아버지는 자신이 살던 고향에서 멀어진다는 충격에 의해 결국에 뇌 출혈로 죽게 된다. 한 인간의 분노에 의한 죽음은 한 개인의 아픔이 아니라 가족 전체에 커다란 고통이 주어진다. 그 후에 그 할머니도 캘리포니아 땅에 도착하자 마자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의해 죽게 된다. 심리학에서 분노는 인간의 삶에 어느 한 부분에만 영향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삶에 영향이 미친다고 말을 한다. 그것은 바로 육체적, 정서적, 의지적, 정신적, 사회적 그리고 재정적인 위기이다.

미국 듀크 대학 메디컬 센터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염증을 유발하는 면역 단백질의 혈중 수치를 검사한 결과 부정적 감정을 가질때의 수치가 가장 높았다.이 수치가 높으면 심장병, 부정맥, 당뇨병의 위험률이 높아진다. 그리고 정서적으로 과도한 스트레스와 긴장, 우울중, 불안으로 불면증이 발생하며 삶에 늘 비판적이다. 종국에는 영적인 기갈 상태에 빠지게 되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삶과 희망을 상실하게 되고 어느덧 분노의 벽을 두껍게 쌓는다.

<분노의 포도>의 영화를 보면서 분노의 벽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보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가족을 하나로 묶는 관계의 파괴이다. 딸의 남편은 임신한 아내를 버리고 혼자 도망가버리고, 큰 아들은 자기의 살길을 위해 떠나고, 삼촌은 끌려다니는 삶을 사는 것 같고,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자기의 자리를 찾지 못한다는 가슴아픈 소리를 주인공 톰은 어머니로 부터 듣게 된다. "이제 더 이상 가족은 없는 것 같다." 포악한 지주들에 의해 하루의 임금이 5센트로 살아야 하고 그것도 지주들의 횡포에 의해 하루 품 삯이 2.5센트로 깎이어도 말 없이 짐승처럼 살아야 하며 지주들의 눈에 거슬리면 언제 죽을 지 모르는 불안감과 공포속에서 분노함을 마음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현실에 맞추어 살아가야 하기에 가족의 생각들이 각기 나뉘어진다. 이 상황속에서 그래도 여자들은 가정을 중심으로 위로하고 격려하는데 남자들은 그렇지 못한다. 그러한 모습을 보고 톰의 어머니는 삶의 위기가 주어지면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낫다.", "남자들은 얼간(jerk)이 같다." 이말은 여자들은 분노를 개울물이 흘러 가듯이 잘 넘긴다는 말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인간의 삶속에서 분노는 나이와 성별 그리고 인종과 관계 없이 누구에게나 주어진다는 것과 분노가 표출되면 독 버섯처럼 번지기에 그것을 방지하는 것은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

영화의 마지막에 보면 분노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의 평안과 그것을 사람들에 전달하는 희망의 사람이 되것으로 주인공 톰은 그것을 목회 소명의식을 잃어 버려 사역을  수 없다고 한 목사님에 의해 답을 찾게 된다. 그것은 바로 "거대한 큰 영혼에 작은 평안(little Peace of a great big soul)", "큰 영을 가진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속하는 것(The one big soul that belongs to everybody)"이다. 인간이 세상에 살면서 화를 내지 아니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각기 삶에서 바라는 바가 다르기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뿐 아니라 내 안에도 그것이 존재하는 것이며 그 분노가 마음속 깊숙히 뿌리를 내리게 되면 삶에 절대적인 평안도, 그 어떠한 위로도, 기쁨도 줄 수 없게 된다. 분노에는 반드시 각자에게 주어지는 영역이 있는 것이다. 이것의 영역은 나와 너라는 존재의 영역이며 이것이 우리의 공동체에 큰 영향력을 주는 것이다.

성경은 분노에 있어서 상대보다는 나의 영역의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분노가 마음속에 주어져도 그 날을 넘기지 말라고 하며 그것이 죄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마음속에 분을 갖는 것은 결국 나의 마음이 상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분노의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나의 마음이 주안에서 평안을 찾는 것이다. 이러한 평안은 현실에 안주하고 세상에 끌려 가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바꾸게 하는 놀라운 힘이며 희망을 잃고 좌절과 절망의 어두움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분노는 교통신호의 노란불과 같은 것으로 사람의 마음 상태를 알 수 있는 삶의 경고의 불 빛이다. 그런데 이것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분노하게 되면 빨간 불에 운전하는 것 같은 법규를 위반하는 죄를 범하게 된다. 그래서 분노는 멈추어야 하는 것이며 분노의 벽은 부숴내야 한다.

크로스로드 한인교회 김칠곤목사 문의전화)425-773-9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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