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용 목사.
(Photo : 기독일보) 김택용 목사.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마 10:1)

시작하는 말

가르치심(teaching)과 복음전파(preaching) 그리고 병자를 고치심(healing). 이 세 가지는 예수님의 지상 사역의 대표적인 내용이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의 세 가지 사역은 교회 사역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 중에서 치유의 사역은 육신을 가진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현실적으로 중요하고 긴박함을 가진 문제이다. 이에 본 소고는 치유사역에 대한 성경적 원리와 그 적용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본 연구의 중요성과 범위

1) 연구의 목적과 중요성
말씀에 나타난 세 가지 사역 중 특히 치유의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성경적인 교훈을 어떻게 받아드리고 실천해야 하느냐의 과제는 생각처럼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런 관계로 교회에는 치유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존재하여 왔고 또 적지 않은 혼선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바로 이 점에서 본 연구의 목적과 중요성 그리고 필요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2) 연구의 범위
넓은 의미에서 '치유'라는 의미는 영적 또는 전인적인 고침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육체의 질병을 고치는 일에 국한하여 다루고자 한다. 그러므로 본 연구에서는 전인적 치유 또는 영적인 치유 등 광의의 의미에서 치유 전반에 관한 부분은 다루지 않는다. 협의적인 의미 곧 육신의 병 고침의 문제만을 논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성경적인 질병 치유에 국한한다.

2. 치유에 관한 정의와 용어

치유 또는 신유(神癒)라는 말은 하나님이 기적적인 방법으로 병을 낫게 해주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이적을 통한 병 고침"을 의미한다.

1) 대표적인 성경 원어
치유와 직결되는 성경적 대표 용어로서는 구약에서는 '마르페'와 '라파' 등의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히브리어 '마르페'나 '라파'는 '치료하다'(렘 14:19), '고치다'(렘 8:15)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히브리어와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데라퓨오', '이아시스' 그리고 구원을 의미하는 '소조(σωζω)' 등이 사용되고 있다.

2) 신학적 용어들
신학계에서 널리 사용되는 용어로는, '신유'(Divine Healing), '영적 치유'(Spiritual Healing) 또는 '신앙 치유'(Faith Healing), '이적 치유'(Miraculous Healing) 등이 있다.

3. 치유사역의 목적과 강조점

1) 예수님의 치유 사역의 목적 중에는, 병 고침을 통하여 백성들이 예수님은 약속된 메시아로 보고 깨닫게 하기 위함에 있다.(마 11:1-5, 눅 4:15-19, 요 9:35-41, 행2:22 등)

2) 다른 면에서 볼 때에 이런 치유를 통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의미와 목적이 담겨져 있다.

3)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의의가 있다. 예를 든다면, 나사로의 경우와 같이 부활에 대한 영적진리의 교훈을 주기 위함도 있고(요 11:) 또 예수님은 죄를 용서하시는 권세를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려는 뜻도 포함되어 있었다.

4) 제자들의 사역: 예수께서는 이러한 뜻을 가지고 12제자를 파송할 때, 제자들에게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그들을 보내셨다.(마 10:1) 제자들은 주님의 명령을 따라 사역하였으며,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좇아내며 죽은자까지도 살아나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였다고 보고한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도 이런 사역은 계속되었다. 사도행전 5장 16절은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받으니라"고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사역의 연장선에서 바나바와 빌립, 아나니아와 바울 등이 치유사역을 행하였다. 여기서 주목하여야 할 대목은,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고쳤을 때, 베드로가 강조한 점이다. 베드로는 놀람을 금치 못하는 무리들에게 잘라 말하기를, "우리의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이 일은 하나님께서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신 것이다"(행 3:12-13)라고 밝혔다.

4. 치유에 대한 의견(해석)들

1) 사도시대 이후에는 치유사역이 정지되었다는 견해:
이 견해에 의하면, 성경적인 치유역사는 사도시대까지 있었던 특수 사역이고 사도시대 이후에 와서는 치유의 역사는 정지되었다는 견해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신학자 가운데는 대표적인 인물은 워필드(B. B. Warfield)다. 그는 사도시대 이후에 와서는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병을 치료하신다는 사실을 증험(Testify)적으로 볼 때에, 끝이 났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경이 완성되고 또 복음이 뿌리를 내린 사도시대 이후에는 이런 역사는 정지 또는 끝이 났다는 주장이다. 이런 해석은 대부분의 세대주의 계통 및 일부 복음주의 교회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2) 사도시대 이후에도 치유는 계속되고 있다는 주장:
그러나 제임스 패커(James Packer)는 이러한 워필드의 견해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한걸음 더 나가서 이런 치유는 은사를 받은 치유 사역자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이 말하는 치유의 은사자 또는 능력 있는 사역자 가운데는 미국의 캐더린 쿨만, 존 윔보, 베니 힌 그리고 한국의 김익두 목사, 변계단 권사와 같은 이들을 떠올려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그들의 사역에서도 기도(안수)는 주요 요소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 견해를 지지하는 이들은, 성령의 역사가 왕성한 곳에서는 언제나 이런 기적들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주로 오순절 계통의 교회 그리고 성령 운동을 강조하는 교회들이 여기에 동의하고 있다.

3) 기도의 응답으로 된다는 해석:
이 해석에 따르면, 치유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러나 치유가 특별한 은사 소유자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부문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본인이나 성도들의 믿음과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이루어지는데 대해서는 찬동한다. 이 주장에서는 믿음의 기도가 있을 때에 그 응답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니까 이 주장의 요점은, 오늘날에도 사도시대와 마찬가지로 이적과 신유는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치유의 능력이나 치유 은사를 받은 이를 통해서 되는 것은 아니고 성도들의 믿음의 기도(청원 기도 또는 중보기도 등)의 응답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개혁파 또는 보수 정통 계통의 교회들이 수용하는 견해이다.

4) 종합적인 주장:
종합적인 주장이란 위의 의견들을 긍정적인 면에서 종합 수용하는 견해다. 사도시대 이후에 치유의 역사가, 비록 사도 시대만큼은 아닐지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병자를 치유하시고 죽은 자까지도 살리실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 주장의 핵심은, 위의 여러 견해 중 어느 한쪽만이 맞는다고 단언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치유는 때로는 은사자를 통해서도 이루어지며 또한 성도들의 기도의 응답을 통해서도 이루진다고 보는 견해이다. 물론, 둘 다 합해서 이루어진다는 점도 배제하지 않는다. 이 견해의 핵심은 치유는 기도의 응답을 통해서 또는 은사자의 사역을 통해서 다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다. 결국 이 주장은 긍정적인 면에서 양면을 인정하며 수용하는 온건 또는 절충식 견해라고도 할 수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 주장은 중도 또는 온건 보수파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5. 치유사역에 관한 경고의 말씀

예수님께서는 치유 사역에 대해 사이비적인 이적도 없지 않으므로 이런 것에 현혹 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는 말씀을 주신 것이다. 치유가 일어났을 때, 그것이 모두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들을 분별하는 지혜를 가지고 주의하여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치유의 이적을 이방종교에서도 볼 수 있고, 공공연히 악령의 힘을 빌어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으며 심지어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해지지만 사실상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는 치유도 많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친히 말씀하시기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 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 22-23)

6. 치유 사역에 관련된 성경 말씀

1) 여호와는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시다.(출 15:26, 말 4:2)
2)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눅9:2)
3)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마 10:1)
4) 치유에 관한 기사는 복음서의 분량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5) 예수님은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고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6) 사도들의 경우 병을 고치지 못한 경우도 있다. 바울, 디모데 등
7) 한번 권능을 받았다고 그 치유능력이 언제나 상존하지 않는다(마 17장)
8) 치유는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의 능력임을 천명했다(행 3: 12-13)

7. 치유를 위해 기도 또는 섬기는 자들이 주의할 점

1) 치유의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성과에 대해 과장하는 것은 금물이다.
2) 호전 되지 않는 경우, 그 것은 환자의 믿음이 약한 탓이라 하면 안 된다.
3) 하나님의 영광, 복음 증거, 하나님나라 확장 연장선에서 사역해야 한다.
4) "믿음으로 다 나았습니다." 식의 고백을 미리 강요하는 것도 좋지 않다.
5) 사역자는 어디까지나 섬기는 자세로 사랑과 겸손으로 임하여야 한다.
6) 자원하여 하는 감사 헌금도 조심해야 하고 결코 대가성을 바라면 안된다.
7) 치유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8) 환자가 평안한 마음, 열린 마음으로 기도 받도록 배려해야 한다.

8. 제기되는 질문과 이에 대한 답

1) 나는 평신도인데 병자를 위해 기도해도 될까요?
목회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병낫기를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빌립의 모범이 있습니다. 기도를 필요로 하는 이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기도해야 옳다고 봅니다.

2) 치유와 관련하여 오해나 부작용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간들이 부족해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위에서 열거한 주의 점을 기억하며 또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매사에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3) 병이 있는 사람도 다른 병자를 위해 기도할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지병을 가지고 있었으나 많은 능력을 행하였습니다.

4) 단번에 치유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까?
예! 점진적 치유도 이루어집니다. 막 8:22-26에 보면 안수 후에 나무 같은 것이 걸어가는 것이 보였고 다시 안수 했을 때 만물이 밝히 보게 된 경우가 있습니다.

5) 특정 환자를 위한 기도는 몇 번까지 해야 하나요?
환자가 충분하다고 느낄 때까지 함이 좋습니다. 낫지 않을 경우, 다음 기회에 또 기도 받도록 권면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입니다.

6) 기도 받을 때 개인 신상이 노출될 위험성은 없을까요?
환자의 사생활은 최대한 존중하고 얻은 정보는 비밀로 해야 합니다.

7) 기도자는 눈을 뜨고 기도 해도 됩니까?
경우에 따라서는 눈을 뜨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관찰함이 좋을 때도 있습니다.

8) 환자의 아픈 부분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것은 거북스럽지 않습니까?
그런 때에는 환자 자신이 자기의 손을 얹도록 하면 좋을 것입니다.

9) 기도 받을 때 환자도 스스로 기도하여야 하나요?
그것 보다는 환자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아멘으로 기도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10) 기도자가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도는 큰 소리로 해야 응답이 빠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나 보다 중요한 것은 간절하게 기도하느냐 입니다. 많이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올바로 기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11) 기도하고 환자의 손을 잡아 일으키거나 끌어당기는 것은 좋은가요?
이런 일도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12) 믿음이 없는 사람도 고침을 받을 수 있나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손 마른 사람의 경우는 다른 듯합니다. 그에게는 믿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마 12:9-13)

마치는 말: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들은 치유에 대한 성경적 이해이다. 성경에 근거한 치유에 대한 확실한 믿음과 열정이 필요하다. 어떤 뜨거움이 있다고 해서 가볍게 서둘러서는 아니 될 것이다. 특별히 치유의 은사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일은 극히 조심하여야 할 점이다. 모든 일의 기본적인 원리는 성경으로부터 나오고, 성경이 말씀하는데까지 가고 성경이 멎는 곳에서 멎는 데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신자들은 아픔 중에 있는 이들에게 관심과 동정하는 마음을 지녀야 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에 임할 때에 성령님의 역사(이적)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병든자가 고침을 받고 약한 자가 힘을 얻게 되는 역사가 우리 주위에서 더 많이 일어나게 되기를 소원한다. 아울러 기도와 말씀의 용사들에게 복과 은혜를 더하여 주실 줄 믿으며 이 글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