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빌립보 장로교회 최인근 목사
(Photo : ) 시애틀 빌립보 장로교회 최인근 목사

2003년 감사의 달 11월에 앨라배마 주에서는 감사의 달을 무색케 하는 또 하나의 이변이 일어났었다. 앨라배마 주 대법원 건물 앞에 세워져 있던 십계명 돌비를 철거하였기 때문이다.

퓨리탄들이 목숨을 걸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들어와 이 땅에 만들어 놓았던 감사의 역사를 에이브라함 링컨이 정식으로 기념하게 하도록 11월 넷째 목요일을 감사의 날로 선포하기까지 하였는데 이처럼 숭고한 감사의 달에 하나님의 상징처럼 서 있던 십계명 비문을 철거하였던 것이다.

믿음의 성도들이 교대로 밤을 새우면서 까지 십계명이 철거되지 못하도록 지켜 왔던 그 십계명 돌비가 마침내 철거되고 말았다. 2.5톤이나 되는 거대한 십계명 돌비가 앨라배마 주 대법원 건물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불신자들의 법 논리는 어느 특정한 종교만이 미국을 대표하는 것과 같이 취급받는 것은 정교분리 정책에 위배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에 맞서 십계명을 철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소송을 벌여 왔던 앨라배마 주 대법원장 로이 무어는 불행하게도 2003년 11월 13일부로 해임되고 말았다. 십계명을 철거하라는 연방정부의 명령을 거부하였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는 그가 버밍엄 북동부 에토와 카운티 순회 판사였던 1990년대 말에도 그가 근무하던 법원에 설치돼 있던 목재 십계명 비문을 철거하려는 시도에 맞서 소송을 벌였던 적이 있었던 십계명 옹호론자였다.

모든 사람들이 흠모하는 대법원장이라는 귀한 자리도 아깝다 하지 않고 초개처럼 내 던지고 투쟁하였던 그의 숭고한 믿음과 용기를 미국인들은 깊이 가슴에 담고 있다.

사실 그가 그처럼 대법원장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1990년대 말 십계명을 지키려고 강력하게 투쟁을 벌였던 그 신앙 때문에 많은 유권자들이 몰표를 몰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그가 이제는 자신의 소중한 자리를 내 놓고 자신과 함께 투쟁해 준 시민들의 성원에 보답했던 것이다.

온갖 감언이설로 선거 공약을 해 놓고 당선되고 나면 나 몰라라 하는 일부 한국 정치인들에 비하면 참으로 가슴 찡한 멋진 모습이라 아니할 수 없다.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이란 말이 있다. '열흘 피어 있는 꽃이 없다'는 말일게다. 그만큼 이 땅에 있는 모든 부귀영화는 지나가는 바람과 같이 한 순간에 버물다 떠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영원한 것을 포기하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믿는 우리는 이와 같은 현실 앞에 과연 어떻게 대처하고 또 반응하여야 하는 것일까? 바로 로이 무어와 같이 자신의 소중한 삶의 기본이요 일생을 바쳐 일구어 놓은 대법원장의 자리도 미련 없이 버리고 투쟁하고 나서야 하는 것이다.

계시는 하나님을 없다고 선언하고 달려드는 사람 앞에 계시는 하나님을 계신다고 외치는 것은 훨씬 더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도 단호히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고 말이다.

이제 이 세상은 이미도 성경에 밝히 예언된 바와 같이 진리이신 하나님께 대하여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9.11 테러를 시발점으로 모슬렘의 본거지인 아랍권을 중심으로 노골적으로 공격해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무차별 공격에 희생되어 땅바닥에 물건처럼 나뒹굴어진 어린아이의 사채를 바라보면서 "이것이 과연 말세의 재앙이구나!" 하는 절망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믿는 성도들이 자신들의 안녕과 평안만을 지키기 위해 이기주의자로 변신해 간다면 하나님께서는 돌들을 통해서도 역사를 이룩하실 것이다. 법궤를 들어다 보다가 즉사했던 벳세메스 사람들처럼 우리는 호기심으로 하나님을 찾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시고 자기를 찾는 자들과 함께 이 마지막 때에 하늘 역사를 이루고 계심을 확신하여 담대히 하나님과 동역할 줄 아는 자기희생적인 신자가 되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믿는 흉내로서 악한 사탄의 세력을 막아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기드온의 300 용사가 거대한 미디안을 무너뜨렸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그 어떤 세력들도 두려워 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담대히 선택해야 한다. 십계명인가? 아니면, 대법원장 자리인가? 이 둘 중에 하나를 우리는 이제 선택해야 한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십계명을 선택하는 일은 엄청난 고통과 피해를 입어야 한다. 그러기에 믿음은 하늘 상급을 기대하는 것이다.

모세와 같이 잠시 이 세상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받기를 자처하는 용기, 그것이 바로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가치여야 하는 것이다. 결국은 이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을 그렇게 놓고 빈손으로 하나님께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손에 무엇을 들고 있는지? 양심의 눈으로 점검하고 늦었다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십계명을 다시 잡는 그런 용기가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