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집시’로 통하는 크루드족. 4천년이라는 유고한 역사와 언어, 문화를 지닌 단일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크루드족에겐 ‘국가’가 없다. 3000만~3800만명 가량으로 추정되는 쿠르드족은 오스만투르크제국이 해체된 1차 세계대전 이후 터키, 이라크, 이란, 시리아 등지에 흩어져 살며 수난의 세월을 견뎌왔다. 오랜 기간 ‘흑암의 백성’으로 살아온 이들 크루드인들에게 자유와 해방의 복음을 전하러 가는 한국인 선교사가 탄생해 화제다. 버지니아주 주사랑선교교회 담임목회를 거쳐 현재 센터빌초대교회에서 협동목사로 섬기고 있는 김정호 목사 부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오는 10월말 파송예배를 드린 뒤 이라크 북부로 떠난다.

이곳은 2003년 미국-이라크 전쟁 이후 한국 정부에 의해 여행금지국가로 지정된 탓에 한국인들의 왕래가 뜸한 지역이다. 그간 몇몇 단기선교팀이 다녀가긴 했지만, 크루드인들과 함께 동거동락하며 복음을 전하는 현지 거주선교사는 아직까지 단 한명도 없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김 목사 부부는 제 1호 이라크 크루드족 한인선교사가 되는 셈이다.

1962년 5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김정호 목사는, 26세 때 도미해 웨스트코스트대학 BSIE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으며, 미주장로회신학대학에서 신학 학사(Th.B)와 교역학 석사(M.Div.) 과정을 거쳐, 미드웨스트대학에서 목회학 박사과정(D.Min.)을 수학했다. 버지니아 주사랑선교교회 담임목회를 하던 당시 자서전 <스올의 뱃속(The Depth of Sheol) - 부제: 고난의 깊은 바다 속에서>을 출간했다. 책에서 그는 15년이란 세월 동안 혈액투석과 세 번의 신장이식 수술 등 병마와 싸우며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으로 살아난 체험을 그려내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병마로 인해 궁핍과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덤으로 얻은 ‘제2 인생’이기에 이제 남은 시간은 오롯이 하나님만을 위해 사용하고 싶다는 게 앞으로의 그의 바람이다. 그래서일까.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라는 이라크에 가는 데도 불구하고, 이들 부부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 한 점 보이지 않는다. 되려 “하나님께서 가라 하셨으니 그저 순종할 따름”이라며 비장한 각오가 엿보인다. 곳곳에서 소수종파간 유혈충돌과 테러가 끊이지 않는 곳이기에, 왠만해선 가기 어려울 성 싶다. 게다가 김 목사 혼자가 아닌, 그의 아내까지 함께 하는 발걸음이니 필시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리라. 조만간 선교지로 떠나는 김 목사 부부에게 선교지에 떠나기까지의 에피소드를 들어봤다.

김정호 목사
(Photo : 기독일보) 오는 10월 말 이라크 크루드족 선교의 길을 떠나는 김정호 목사와 김선희 사모.

- 이라크 하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로 손꼽힐 정도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김정호 목사: 아버지가 구로동에 위치해 있는 서울남교회 장로이셨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다. 그리고는 작년 3월 아버지 산소를 국가유공자 국립묘지로 이장하고 비행기를 타고 오는데, 문득 그런 마음을 주셨다. ‘하나님, 이제 남은 사역은 이곳(미국 버지니아 주)이 아니라 선교지에서 보내게 하소서’

이후 아내 김선희 사모와 함께 하나님이 가라 하시는 땅으로 떠나기로 작정하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작은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선교지로 떠날 계획이었다.

어느 나라로 가야할지 선교지 선택의 문제를 놓고 10여개월 기도해오다 시드선교회 손상웅 목사님이 크루드족에 대해 소개해 주셨다. 크루드족이 살고 있는 이라크, 이란, 시리아, 터키 4개국 중 가운데 어느 나라로 가야 할지 기도하는 가운데, 이왕이면 선교사님이 나가있지 않은 곳에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알아보니 이라크의 경우 아직 현지에 우리 선교사님들이 못 나가있는 실정이더라. 단기선교팀 3팀 정도만 나가있는 정도다. 현재 이라크 내 크루드족 인구는 약 4백만명이고, 이는 이라크 총인구의 20퍼센트에 해당한다. 크리스천은 1천명에 불과하다.

- 중동 지역은 선교 나가기엔 매우 위험한 지역 이라 들었다.

아무래도 위험하다. 그런데 다행히 이라크 크루드인들에겐 크루드 자치정부가 있어서 그나마 안전한 지역에 속한다. 놀라운 것은 2년 전 출간한 자서전 <스올의 뱃속>에 이어 <니느웨로 가는 길>을 쓰고 있는 중이었는데, 이라크 크루드족이 살고 있는 지역 안에 니느웨가 있더라. 참 신기한 일이다.

- 선교 가기로 결심하기까지 하나님의 특별한 이끄심이 있었을 것 같다.

▷김 목사: 말하자면 좀 길다. 목사의 딸로 태어난 아내(3남 5녀 중 일곱번째)가 어렸을 때부터 신앙심이 깊었다. 모친이 일찍 소천하신 뒤로 아내가 사모 역할을 하면서 30일 금식도 하는 등 기도를 많이 했다.

▷김 사모: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하셔서 한 것 뿐이다. 돌이켜보니 금식하면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많은 은사를 부어주셨다. 24살 되던 해, 어느 날 새벽기도 를 드리고 있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귓가에 들려왔다. 내 이름을 부르시면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더라. 이에 어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대답을 못하고 있으니 연거푸 세 번을 그렇게 말씀하셨다.

이에 “하나님, 저의 모든 무거운 짐을 주님께 의지하고 맡기기까지 의지합니다”고 대답했다. 하나님은 한참 있다가 “그렇다면 아무리 네게 어렵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어도 지고 가겠느냐”고 물으셨다. 무거운 십자가라고 하시니 눈물이 앞을 가리면서 ‘하나님은 왜 이런 질문을 하실까?’ 하는 생각이 스쳐감과 동시에 “하나님, 제 힘으로는 못 가지만 당신이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갈 수는 있겠나이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위해 능력있는 주의 종을 예비해 놓았다. 둘이 하나가 되어 세계 만방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이니라(롬8:28)”고 하시고 말씀을 마치셨다.

이 일이 있기 전에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면서 기도를 인도하는 중에 많은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볼 때마다 속으로 “하나님, 참으로 귀한 은사를 주셨는데, 이것으로 하나님을 위해 제가 무엇을 하길 원하십니까?’라고 계속 여쭤봤던 것 같다. 그러면서 ‘성자의 귀한 몸 날 위하여 버리신 그 사랑 고마워라 내 머리 숙여서 주님께 비는 말 나 무엇 주님께 바치리까’ 이 찬송을 부르며 눈물로 기도드린 적이 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아시고 콜링을 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나서 가족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왔고, 당시 유학생이었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됐다.

▷김 목사: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아내를 만나 결혼하게 됐는데, 당시 나는 아직 주의 종은 아니었다. 학업을 마친 뒤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버지니아로 직장이 옮겨가면서 버지니아 와싱톤중앙장로교회를 섬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내게 찾아온 질병으로 인해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2년 전에 출간한 책 <스올의 뱃속>에도 나와있듯, 1년에 걸친 신장이식 후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주의 종이 되기로 결심하고 신학교에 진학했다. 그리고 교역학 석사과정 이수 후 목사 안수를 받고 목회를 했다. 그간 살아오던 세속적인 삶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방향이 바뀌었고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눈 뜬 후 줄곧 목회를 해왔으니, 그걸로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하나님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었다.

첫 번째 신장이식 수술 뒤에 수차례의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며 극한 고난을 경험했고, 이때 깊고 어두운 ‘스올(죽음)의 뱃속’ 체험을 하게 됐다. 결국 15년간의 오랜 투병생활 끝에 기적적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병이 회복됐다.

- 투병생활 중 본인도 힘들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사모님의 마음이 더욱 힘들었을 것 같다.

▷김 사모: 예전에 기도 중 ‘십자가 아무리 무거워도 질 수 있겠느냐’고 말씀하시던 게 생각났다. ‘하나님이 결국 약속을 이루게 하시는 구나’ 고통 가운데 깨닫게 해주셨다. 힘들 때마다 하나님은 기도하게끔 날 이끌어 주셨고 기도 중에 항상 환상과 방언 대언으로 알려주셨기에 그 힘으로 견뎌낼 수 있었다.

첫 번째 신장이식 후 8년만에 다시 몸이 망가져서 기도원에서 기도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 세상에 많은 주의 종이 있지만 내 마음을 품고 고아와 병든 자를 불쌍히 여기고 목회하는 자는 드물다. 내 마음을 품고 목회하는 이 주의 종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지 않겠느냐?” 그러면서 하나님이 “내가 기적같이 낫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기도의 응답이었다.

▷김 목사: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 어둠의 긴 터널을 지나는 시간이 있었기에 신앙이 더욱 단련됐고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부활의 소망과 희망의 꽃을 피우게 된 것 같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시 118:17)”

아내는 결혼 전부터 사모가 되는 것을 놓고 기도해왔지만, 나는 목사가 되겠다는 생각 없이 결혼했다. 그러나 오랜 시련과 아픔을 겪으면서 하나님을 만나 목사가 됐고, 또 이것이 끝이 아니라 이번에 선교지에 나가게 됐다. 앞으로 남은 인생은 하나님이 가라 하신 땅, 이라크로 가서 크루드족을 위해 헌신하고 사역하며 살아갈 계획이다. 오는 10월 26일 토요일 오후 6시 버지니아주 센터빌 초대교회에서 파송예배 드리고 바로 일주일 내에 떠난다. 아내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면, 정확히 30년만에 이뤄주신 것이다.

- 아무리 선교지라지만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지역인데 두렵지는 않나.

▷김 목사: 선교지를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간 모든 환란과 고난 가운데 우리가 그분을 의지하는지 안 하는지 보셨다고 하시더라. 이 테스트에 패스했으니 너희는 이제 “레디 고(Ready Go)! 이제 가라!”고 하시면서 “어딜 가든지 너희와 함께 하겠다. 그곳에 가서 너희가 할 일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순종해야겠다고 생각하니 두려운 마음이 사라졌다.

▷김 사모: 하나님이 확신을 주시니 마음이 평안하다. 언제든지 안전하게 지켜주신다고 하셨다.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 중 밤중에 주님이 찾아오셔서 “이곳은 위험하니 떠나라”고 하셨던 것처럼 앞으로의 길을 그분이 하나하나 지시해 주시겠다고 하셨으니 전혀 두려움이 없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함 가운데 때와 모든 계획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선교협력 문의:
(703) 828-5556 /(213) 739-0403
▷이메일:jeongkim0211@gmail.com(김정호 목사)